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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May 24. 2022

반백 년 정도만 더 사랑하지 뭐

사소한 부부 싸움 넘기는 현명한 방법

오후에 오빠와 살짝 다투었다. 이유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하루 종일 붙어살다 보니(일도 같이 해서) 투닥투닥하는  일상이다. 오늘 다툼은 ··하로 따지면,  '중하' 정도? 내가 설거지하면서 짜증을  쏟아냈으니 강도가 아주 약한 다툼은 아니었다. 오빠도 "이씨! 이씨" 하면서 툴툴댔으니 짜증이  오른 상태였다. 그런데  상황에서 오빠가 씩씩대며 이러는 것이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너만 바라볼 줄 알아?"
"언제까지?"
"뭐 아마 반백 년 정도까지만 그럴 거 아니겠어! 흥!"


반백 년이라고? 아! 진짜 너무 웃겼다. 그러면 거의 백 살이 다 될 때까지 나만 바라보고 있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이런 사랑 고백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복숭아 사건 이후로 가장 웃긴 싸움이었다. 진짜 너무 웃겨서 완전히 깔깔대고 싸움은 바로 종료됐다. 그래서 아마 다툰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 것 같다.  


오늘 만난 친구와 나눈 대화가 생각이 난다. 아이 없는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눴는데,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 없이 살려면 부부 사이가 엄청 좋아야 하는 것 같아. 내 주변에 애 없이 사는 부부들은 다 사이가 좋더라고"


친구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와 내가 일상에서의 숱한 싸움들 속에서 오늘처럼 유쾌하게 화해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어른들 말처럼 아이도 없으니 쉽게 이혼으로 갔으려나. 글쎄. 잘 모르겠다.


지금은 결혼 10년 차라 능글능글하게 크고 작은 갈등들을 잘도 넘어가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싸움은 꽤나 심각했다. 법원 앞에서 만나자며 몇 날 며칠을 말 한마디 안 했을 때도 있었다. 그 시기도 잘 넘기고 왔기 때문에(물론 백 번쯤 죽이네 살리네 했었다.) 지금의 우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아이가 없었기에, 자잘한 다툼에도 똑바로 직면하고 화해하는 데에 에너지를 쓸 수 있었을까?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성격도 성향도 극단적으로 다른 오빠와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헤어지지 않고 잘 살 수 있었을까. 다른 건 몰라도,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던 건 인정한다. 지금만 같으면 반백 년 정도는 더 사랑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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