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싸움, 그 대서사시 by 믹서
시작은 복숭아였다.
밤 9시에 간단히 와인 한 잔을 하고 잘 계획이었다. 오빠는 주섬주섬 술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이 식사가 아닌 술자리의 안주는 아몬드 호두 같은 견과류, 플레인 요거트, 치즈 정도다. 근데 희한하게 어젠, 식탁에 복숭아가 올라왔다.
우린 원래 과일 관리를 잘 못한다. 손질해서 먹기가 어찌나 번거로운지 그 귀찮음 때문에 먹기를 미루고 미루다 상해 버려진 과일이 한 박스는 될 거다. 그만큼 과일 깎기는 우리 집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올여름에는 오빠가 복숭아를 버리지 않고 제때 깎아 먹고 있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사달이 난다. 복숭아를 보고 며칠 전 포털에 뜬 의학 관련 기사가 생각났다. 과일에 당이 많으니 주의해서 먹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오빠는 작년 말에 뇌경색과 함께 당뇨 판정을 받은지라 '당'이란 단어에 예민했다. 다행히 오빠는 당 관리를 열심히 해서 한 3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정상 수치로 회복하였다. 그래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음식을 조심하고 있던 터였다. 복숭아를 보고 나는 무심히 말했다.
"밤에 과일 먹으면 당이 확 올라갈 수도 있는데, 다음부터는 가급적 밤에 복숭아 먹지 말자"
오빠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받아쳤다.
"마지막 남은 한 개 깎은 거야. 괜찮아!"
난 복숭아가 한 개 남든 두 개 남든 그걸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과일에 든 당이 염려스러워 던진 말이었을 뿐이었다. 이미 깎아놓은 복숭아를 먹지 말자는 것도 아니었고, 다음부터 주의하자는 의미였다. 그런데 오빠는 동문서답을 한 것이다. 마지막 한 개 남은 복숭아라고 해서 당을 높이지 않는 건 아니지 않은가. 대체 오빠는 뭐가 괜찮다는 걸까.
말을 제대로 바로 잡아주고 싶었다. 마지막 남은 복숭아가 문제가 아니라, 과일 먹는 시간에 대한 얘기를 한 거였다고.
오빠는 나의 조곤조곤한 설명에 버럭 화를 냈다. 나의 해명은 내가 느낀 것만큼 조곤조곤하지 않았고, 말투와 표정에서 짜증이 짙게 묻어났다는 것이다. 난 화를 낸 게 아니고, 그저 당신이 걱정되어 하는 말이었다고 했지만, 이미 나의 목소리 톤도 찢어지게 높아진 상태였다. 늦었다. 이 분위기를 되돌리기엔 오빠도 나도 얼굴이 너무 벌게졌다.
"네가 말한 대로 그렇게 몸에 안 좋은 복숭아 내가 다 먹겠다"며 오빠는 우걱우걱 복숭아 한 개를 해치우고, 와인을 소주처럼 들이켰다. 나는 온몸에 힘이 다 빠져서 침묵했다. 식탁 위에 음식들을 하나도 먹지 않고 식탁 모서리만 뚫어지게 째려봤다.
계속 그렇게 말 안 할 거냐고 묻는 오빠에게, 나도 모르게 툭 한 마디가 흘러 나왔다.
우리 그냥 이혼할까
사실 복숭아 사건 같은 싸움은 거의 매일 일어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사 문제, 차 문제, 사업 문제 등으로 2주 넘게 초예민 상태로 지냈다. 가까스로 큰 싸움은 일으키지 않고, 소소하게 티격태격하는 수준으로 평행선을 유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혼 얘길 들은 오빠의 반응은 이랬다.
"그럼 별거를 하든가! 복숭아 때문에 이혼하는 건 좀 웃기잖아"
별거라니. 순간 실소가 나올 뻔했다. 우리에겐 집이 하나이므로 별거는 불가능하다. 오빠나 나나, 부모님 걱정 끼쳐드리는 일은 조금도 하고 싶지 않아 하니 부모님 집에 가는 것도 안 된다. 하여튼 좀 웃겼지만, 내 감정은 퍽 심각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웃음을 참았다.
그 후로도 얼마간 험한 말들이 오고 갔다. 도무지 내 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오빠가 원망스럽기만 했고, 오빠는 오빠대로 나의 잔소리에 지친 것 같았다. 결국 오빠는 "이혼 해, 이혼! 루프탑은 무슨 루프탑이야! 취소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내지르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실에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혼이 문제가 아니라, 갑자기 웬 루프탑 타령인가.
사연을 살짝 늘어놓자면 이렇다. 3일 전에 우리는 이사갈 집을 가계약했다. 장장 3주간의 집을 쫓는 모험 끝에 선택한 그 집의 최고 매력은 프라이빗한 루프탑이었다. 탁 트인 도시 뷰에 오빠와 나는 눈이 하트가 되어, 여러 단점을 뒤로한 채 집을 결정했다.
오빠는 격렬한 부부 싸움 와중에도, 그 집을 '루프탑'이라 명명했다. 이 또한 웃기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관계가 틀어지면 아름다운 루프탑에 갈 수 없겠다는 상상을 했다는 게 귀여웠다.
하지만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거실에, 오빠는 방에 한 시간 정도 분리되어 있었다. 복숭아로 시작된 싸움이 꽤 커졌으니 늘 그랬듯이 눈물 한 바가지를 흘리는 중이었다. 갑자기 거실로 나온 오빠는, 울고 있던 내게 한 마디 던졌다.
"왜 울어? 이혼하면 루프탑 못 가니까 아쉬워서 울어?"
아... 너무 재미지다. 루프탑 2연타는 정말 웃겼다. 그러나 전쟁 중에 표정 관리는 기본. 난 정말 어이없다는 얼굴로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분위기로 몰고 갔다. 이렇게는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선언을 하고 자리를 피했다. 오빠도 더는 말하지 않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난 영화 보면서 울던 거나 마저 다 울자는 심정으로 아이패드를 켰다. 오빠랑 같이 보고 싶었던 영화였지만, 취향 차이로 끝끝내 같이 보지 않았던 영화를 골랐다.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영화인데, 결혼의 권태를 맞은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린 수작이다. 예상대로 역시 난 영화를 보며 감정이 폭발했고 폭풍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새벽 두 시까지 영화를 보고 방에 들어가니 오빠는 대자로 뻗어서 쿨쿨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또 어찌나 웃기던지. 그러나 휴전했을 뿐 전쟁은 진행 중이었으니 다시 표정 관리를 하고 꼿꼿한 자세로 누워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오전부터 촬영 일정이 있었다. 싸울 땐 싸워도 일은 같이 해야 하니 이성적으로 행동했다. 둘 다 침묵했지만, 일은 진행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너무 힘들겠다"며 안타까운 눈으로 우릴 본다. 하지만 이것도 여러 번 반복되면 익숙해진다. 미친 듯이 싸우고도 우린 태연하게 외부 미팅도 하고, 가끔은 전쟁 중에 친구들을 만나기도 한다. 잠시 휴전을 선언한 뒤, 촬영도 같이 하고 회의도 하면서 편집도 한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나는 어제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부은 상태였지만 무사히 일을 잘 끝냈다. 사적인 대화는 하지 않았지만 일 얘기는 간간히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부부 싸움이 이혼으로 가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먼저 사과를 해야 한다. 그 몫은 늘 오빠였다. 이번에도 결국 오빠가 내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미안하다고. 자기가 좀 더 변화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성난 아내답게 품위를 지키기 위해 "이혼하자며!"라고 싸늘한 한 마디를 던졌다.
"어차피 이혼 못 해, 우리는"
"왜?"
"사랑하니까"
이따위 쏘스윗한 멘트들을 날리고 우린 결국 하루 만에 종전을 선언했다. 사실, 이런 일은 9년 살면서 자주 있었다. 싸움과 화해가 반복되면서 서로 지친 것도 사실이다. 사람은 그리 잘 변하지 않기에 싸움의 꼭짓점은 무한 반복되는 것도 진리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아무리 싸워도 진짜 이혼할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는 것이 말이다.
혹자는 이혼을 너무 쉽게 얘기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다가 진짜 이혼할 수 있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미래는 우리도 알 수 없다. 우리들 입에서 나온 이혼이라는 말이 그저 농담인 것도 아니다. 그 말에 우리의 처절한 심정이 들어있다.
'당신과 함께 사는 일이 정말 쉽지 않군요. 뼈를 깎는 고통이네요. 이 고난에서 빠져나가야 우리 둘 다 죽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대략 이런 마음이었던 것이다. 부부 싸움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동반하므로 때때로 두통과 위경련 같은 육체적 고통이 뒤따르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이혼을 선택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끈질기게 우리를 붙잡을지 나도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그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화해 후, 오빠는 이런 말을 했다. 아이도 없는 우리에게 이혼은 차라리 쉽지, 함께 살아나가는 게 더 힘들지 않겠냐고. 그래도 우리는 사랑하니까 그 길을 가는 거 아니겠냐고. 나도 동의했다. 오래간만에 의견이 일치했다. 그리고 오빠는 한 마디 덧붙였다.
"루프탑에 1년 정도 살아보고 이혼 결정해도 늦진 않겠지?"
루프탑 3연타에 결국 난 폭소를 터트렸다. 이 귀여운 농담꾼과 걸어갈 가시밭길에 피가 낭자하겠지만 그 피 또 누가 닦아주랴. 서로서로 약 발라주고 호호 불어가며 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