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유히유영 Aug 05. 2021

세트로 사는 기분

결혼, 같이 산다는 것에 대하여 by 믹서

어느덧 결혼 9년. 오빠랑 나는 세트가 됐다. (*남편이라는 말이 싫어서 이번 글에서는 그냥 오빠라 칭하겠다.)


오빠랑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세트 인생은 시작됐다. 연애 기간 8개월 동안 우리는 매일 만났다. 결혼과 동시에 피디-작가로 일도 같이 하게 됐다. 그리고 미국에서 1년간 지내며 완벽한 세트로 거듭났다. 같은 직장에서 기자로 일했으니 가족이자 동료였다. 미국에서의 생존을 위해 산전수전 겪으며 전우애까지 생겼다.


게다가 한 해 한 해 지나며 인생에 대한 방향성이 비슷해졌다. 가치관, 하고 싶은 일 등등. 몇 년 동안 손발 맞추며 일을 해 온 탓에, 이제 오빠 없으면 영상도 못 만든다. 피디로서 평가할 때, 오빠는 뛰어난 기획자이고 작가다. 난 기획을 못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못 내는데 오빠는 그런 걸 잘도 한다. 대신, 난 빠릿빠릿하게 촬영을 잘하고 편집도 곧잘 한다. 같이 일해야 시너지가 나는 걸 이제 어쩐담.


둘이 힘을 합해 척박한 땅 미국에서 살아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아예 같은 직장에 입사를 했다. 그리고 2019년, 둘 다 퇴사를 하고 창업을 하기로 했다.


2년이 흘렀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영상 외주 일을 하며 준비해 온 사업 아이템에 변화도 많았고, 오빠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좀 아팠고, 몇 달에 걸쳐 투병을 했다. 거의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했고, 다양한 종류의 집에 대한 고민도 꽤 세게 했다. 그러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가끔은 해체가 임박한 아이돌 그룹 같지만...


오빠와 나는 박 터지게 싸우고 지금도 물론 싸우는 중이다. 너무 심하게 싸울 때는 '이러다 둘 중 하나는 쓰러지겠다'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그래도 대체적으로는 '사랑'으로 잘 견디고 잘 버티고 있다. 의외로 각자 맡은 일도 잘 수행하며 유유히 살고 있다. 집안 일도, 먹고사는 일도 같이 해야 하는 우리에겐 역할 분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한편 이런 생각도 든다. '나도 나 자체로 잘 서야 함께도 잘 설 수 있을 텐데...' 오빠와 나, 각자가 개인으로도 발전을 해야 세트로서도 유의미한 진화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가수들도 그룹으로서 내는 매력과 각각의 아티스트가 개성을 살려 솔로 활동을 할 때의 느낌이 다르듯이,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인생이란 무대에서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그룹사운드로, 개인의 유니크함으로도 빛을 발하는 솔로로, 그렇게 유연한 모듈로 살아가고 싶다.


결혼으로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게 좋은 걸까. No. 그럴 수도 없을 뿐더러, 그게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개인으로도 완벽한 인격체이지만 함께 했을 때 무언가가 시너지가 나는 것이 결혼이었으면 좋겠다. 세트가 되기 위한 결혼이 아닌, 함께 있을 때 또 다른 인생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결혼의 이유가 된다면 참 좋겠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든지, 아이가 두 사람을 진정한 가족으로 만들어주는 끈이라든지, 아이가 결혼의 열매라든지, 그런 말이 없어지면 홀가분해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결혼은 하나의 제도일 뿐이지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 그래서 개인을 결혼이라는 용광로에 녹여버리는 것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요즘 새로 이사 갈 집을 찾고 있는데, 오빠와 집에 대한 생각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주말 부부처럼 각자 취향에 맞는 집에 살다가 일주일에 한 번만 만나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는 그런 상황은 못 되어 같이 살 공간이 필요하다.


어쨌든 최대한 두 사람이 만족할 선택을 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그동안은 이사를 자주 다녔지만, 이번엔 좀 오래 머물 집을 찾다 보니 더 신중해진다. 근 2주간 집 고민을 집중적으로 하면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이 바뀌면서 요동을 쳤다. 두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합치면 하루에 스물네 번 왔다 갔다 하는 마음들이 존재하는 거다.


얼마나 싸웠는지 설명 않겠다. 말해 뭐해. '오빠는 왜 나한테 맞춰주지 않는 거지', '집에 대해 그렇게 관심 없던 사람이 언제 이렇게 자기주장이 강해졌나', '결혼 안 한 사람들은 이런 고민 안 해도 되겠다' 뭐 이런 별별 생각들이 다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실은 이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 각자가 원하는 집,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에 대해 알게 되면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양보를 경험하고, 협상이란 걸 배운다.


이제 슬슬 고민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내일은 결정할 수 있을까. 세트로 사는 기분 참 다채롭다.

매거진의 이전글 40년을 살아도 그대는 타인이구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