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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Apr 12. 2021

40년을 살아도 그대는 타인이구려

부모님의 부부 싸움을 보며 by 믹서

간밤에 위경련으로 고생을 했다. 오늘은 죽을 먹으며 속을 달래야 할 텐데, 우리집은 산골이라 배달이 안 되고 집에서 죽 가게까지는 너무 멀다. 남편은 집에서 죽 쑤는 게 어렵다며 장모님에게 SOS를 치자고 했다. 위경련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엄마는 “닭죽 만들어줄 테니 냉큼 집으로 와라”는 말을 남기고 급히 전화를 끊었다.


두어 시간 후에 집에 갔더니 뜨끈뜨끈한 영양 닭죽이 거짓말처럼 식탁에 놓여 있었다. “엄마는 짱!”이라 외치곤 맛있게 죽을 먹었다. 엄마와 나는 “위경련은 다 스트레스 때문이니 무조건 편안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죽을 나르던 엄마는 두통이 심하다고 했다. 어젯밤에도 자다가 몇 번 깼을 때 어지러움을 느꼈단다. 평소에도 빈혈이 좀 있던 엄마는 “이번 두통은 좀 오래 가네”라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머리가 아픈 걸까?”
“몰라, 아빠 때문인가...”
“아빠랑 또 싸웠어?”
“몰라”


작년에 엄마 아빠는 결혼 40주년을 맞았다. ‘40년을 함께 살았으면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도 남지 않았을까? 싸울 일이 아직도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엄마 아빠는 나의 의문을 늘 후려친다.


두 사람은 아직도 허구한 날 싸운다. 며느리, 사위가 옆에 있어도 거침없이 말다툼을 한다. 부모의 싸움은 40년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이불속에서 숨 죽이며 빨리 싸움이 끝나기만을 바랐고, 지금은 “아유, 그만 좀 해”라는 말 한마디 겨우 할 뿐이다.


엄마 아빠의 신혼여행 스냅. 이런 달달한 사진을 보며 씁쓸해지는 건 왜인가. 결혼 생활이 달달하지만은 않다는 걸 이제 알아서인가.


엄마 아빠의 부부 싸움은 역사가 깊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엄마는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고, 교회를 싫어하던 아빠는 엄마가 교회 가는 게 못마땅했다. 엄마 아빠의 불화의 대부분은 교회 때문에 일어났다. 그 당시엔 교회 다니는 부모를 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부모가 종교가 같으면 부부 싸움 따위는 절대 없을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 흘러 수많은 사건들을 겪은 후, 결국 아빠는 현실을 인정하고 엄마와 교회를 다니게 됐다. 그게 벌써 근 20년 전 일이다. 내 소원이 이루어진 거다. 이제 엄마 아빠는 더 이상 싸우지 않겠구나 안도했다. 과연 엄마 아빠의 싸움은 멈추어졌을까? NO. 안타깝게도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결혼 9년 차인 나도, 이제 부부 싸움의 근본적인 원인이 교회나 종교가 아니란 것쯤은 잘 안다. 각자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맞추면서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부부 싸움이다. 그 과정에서 각자 자신의 바닥을 보기도 하면서, 반복되는 화해와 싸움을 통해 서로의 모서리가 깎여 나가기도 하는 거다. 나와 남편도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고, 엄마 아빠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이 ‘끝이 없다 ‘는 것이다. 40년 정도 같이 살면 좀 끝나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나와 남편도 9년째 비슷한 이유로 부부 싸움을 한다. 부딪히는 지점이 분명히 정해져 있다. ‘사람의 힘으로 사람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두 사람은 절대 같아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인간이 어디 그런가.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게 바로 인간이다. 머리로는 ‘저 인간과 나는 다르니까 이해해야지’라고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는 ‘왜 저러는 걸까!? 왜 반복해서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는 것인가!?’ 하는 분노가 뜨겁게 인다.   

   

위경련 때문에 닭죽 먹으러 친정에 갔다가 엄마의 두통을 옮아 왔다. 엄마 아빠의 부부 싸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머리가 지끈거렸다. 싸움의 배경은 매번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원인은 하나다. 두 사람의 생각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40년, 50년, 60년을 살아도 그걸 맞춰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마흔이 넘었어도 부모의 불화는 속상한 일이라 “계속 싸울 거면 따로 살라”는 모진 말까지 던진 내게, 엄마는 마지막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겼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엄마의 두통은 옅어졌고 나의 두통은 점점 심해졌다.


“걱정 말고 네 할 일이나 잘하고 살아. 아빠를 사랑하니까 걱정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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