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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Aug 23. 2019

30년 만의 가족 여행

아버님 칠순을 맞아 떠난 '제주도 푸른 밤' by 유자까

“한 30년 만에 애들이랑 이렇게 해수욕하는 것 같은데.”


해변에서 발만 담그고 선 아버님이 애잔한 눈으로 말씀했다. 그날따라 제주도 함덕해수욕장 파도가 세 보였다. 일본을 지난다던 태풍의 영향일까. 그런 파도에 몸을 맡기고 해수욕을 즐기는 어머님과 아내 S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버님은 사위인 내게 말하고 있었지만, 시선을 모녀를 향했다. 바닷가에 오니 무언가 많은 생각이 드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즐기는 해수욕에 신난 어머님과 아내

30년, 아내 가족이 모두 모여 바닷가에 온 햇수가 그리 오래되었다. 아내 S와 처남 D를 데리고 어딘가 많이 다녔다고 하셨는데, 며칠씩 바다로 여행한 건 아내가 9살 때 이후로는 없었다는 의미다. 한국 산업화 시대에 열심히 노동을 갈아 넣으면서, 그 시대 많은 아버지처럼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남성이 가장으로 내세워지며 가족 생계를 책임졌어야 했던 시대 아니었던가.


함께 감상에 젖으려는 찰나, 아버님은 내게 “고맙다”라고 말을 이었다. 내년에 칠순을 맞이하는 아버님을 위해 가족 여행을 가자고, S와 D에게 이야기한 게 나라는 사실을 모르실 텐데. 그냥 아버님은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드셨던 것 같다. 가족이 된 지 7년, 여러 일이 있었지만 무슨 일만 있으면 아버님은 내게 꼭 고맙다고 말씀했다. 그간 가족 사이에서 있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면 가족에 편입된 나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나는 가족이 함께 바닷가에서 즐기는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고 싶었다. 아버님에게 모녀와 바닷물에 몸을 담그라고 권했다. 아쉽게도 아내(어머님)와 딸 근처까지만 걸어갈 뿐, 끝끝내 함께 놀지는 못했다. 평소처럼, 두 사람을 향해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다그치듯 이야기할 뿐이었다.

아빠, 같이 놀아요!!! 30년 전에도 같은 이야기를 했겠지???

2019년 8월 14일, 암사동 식구(S가 나고 자란 동네 이름을 따 그렇게 부른다) 전체가 함께 떠난 휴가의 첫 장면이다. 부모님, 처남 가족, 우리 부부 8명이 함께 1박 이상으로 어디를 다녀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결혼 7년 만의 일이다.) 부모님은 무척 기대가 컸고, 아이가 둘이나 있는 처남 부부는 기대 반 걱정 반, 우리 부부는 이 여행을 어떻게 콘텐츠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딱히 일정을 짜지는 않았다. 바다가 보이는 적절한 숙소에서 쉼을 추구하는, 진짜 휴가를 한 번 떠나 보자는 의미였다. D는 “아버지가 다른 것 안 하고 쉬고 싶다”고 말씀했다고 이야기했다. 휴양지로 놀러 가도 어딘가 다녀와야 직성이 풀리는 S와 D의 성향이 아버님과 닮았기에,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같이 놀러 가는 게 중요하니까.


여행 이야기는 작년부터 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와 처남 가족만 베트남 다낭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후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섭섭해하는 모습에 죄송하기도 했고, 2020년 아버님 칠순을 맞아 선물로 가족 여행을 준비해 보자는 의미가 컸다. 일본 북해도와 제주도가 유력한 후보였다. 하지만 가족 전체가 움직이는 첫 여행을 해외로 가면 힘들지 않겠냐는 S와 D의 우려가 일치해 ‘제주도’로 여행지를 선정했다.


아버님이 앞서 말한 쉬고 싶은 여행도 결정에 중요한 요인이었다. "북해도를 가면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할 텐데, 그럼 쉴 수 없지 않겠나. 제주도에서는 휴양과 관광을 복합적으로 할 수 있으니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는 D의 프레젠테이션이 모두를 설득했다.

우리 제주도 여행은 처남 D(왼쪽)의 프레젠테이션이 크게 작용했다. 여행지에서 찍었지만, 가족회의 느낌이 나서 올리는 사진.

장소를 정했는데, 진짜 문제가 등장했다. 날짜였다. 모두 휴가를 맞출 수 있을까 모두 걱정했다. 장애인 활동 보조하는 어머님, 유치원과 학원 아이들을 위해 차량 운전을 하는 아버님, 북한 주민들을 위해 활동하는 D, 유치원에서 일하는 D의 아내 Y, 영상 제작자로 일정이 불투명한 아내까지 휴가 날짜를 모두 맞추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물론, 처음에만 말이다.


부모님은 아버님이 쉬는 8월 중순에 시간을 맞추었고, 어머님은 아버님에 맞춰 휴가를 냈다. Y는 방학 기간이라 아버님과 휴가 기간이 잘 맞았고, D도 의외로 휴가를 낼 수 있었다. 우리 부부도 다행히 그 기간 큰일이 없었고, 외주로 일을 부탁한 이들과도 이야기가 잘 진행되었다. 휴가 두 달 전, 모두의 일정이 갑자기 맞춰졌다.


휴가 일정만 맞춰졌는데도 부모님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휴가 일정을 정한 주간에 아내 생일이 있었다.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아버님은 “진짜 함께 휴가를 갈 수 있느냐”고 몇 번이고 물었다. 아내는 웃으며 “정말 같이 갈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계속 답해야 했다. 무더위가 찾아오기 전이었지만, 우리 가족 마음은 모두 푸른 바닷가, 제주도 푸른 밤을 향하고 있었다. (여행 Vlog는 이곳에서 확인하세요.)


요즘 '제주도 푸른 밤'은 밝아서 푸르게 보여서 그렇게 불리는 듯하다. 푸르다 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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