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4호를 맞이하며, 유산한 아이를 생각하다(1) by 유자까
조카 4호가 탄생했다. 36주 만에 나온 성미 급한 녀석이다. 아, 오해 없기를 바란다. 한집에서 넷을 낳은 건 아니다. 처남과 동생 가정에 각각 2명씩 조카를 낳았다. 하여튼, 신생아와 만남이 네 번째인데도 참으로 큰 감동이 있었다. 진짜 쏟아지려는 눈물을 겨우 참았다.
조카 4호와 첫 만남은 신생아실 유리벽을 두고 이뤄졌다. 보자마자 웃음이 절로 났다. 그 자리에서 어깨춤이라도 들썩이지 않으면 이 기쁨을 표현할 길이 없어, 혼자 신나게 춤을 췄다. 작은 얼굴, 붉은 피부, 예정일보다 한 달 빨리 나와 작은 체구까지. 어디를 봐도 다 사랑스러웠다.
우리가 앞에 있는지 아직 모를 텐데, 조카 4호가 배냇짓을 한다. 혀를 짧게 내밀기도 하고,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나는 아내 S를 잡고 환호성을 지르며 자지러졌다. 함께 둘째 손주를 보러 온 어머니를 볼 때면 연신 입을 틀어막고 함께 터져 나오는 비명을 눌렀다.
"조카가 그렇게 좋아?"
S는 신기해하며 물었다. 나는 웃으며, 그렇다고 답했다. 아, 물론 ‘조카’라는 존재만 좋아한다는 말은 아니다. 아기를 정말 좋아한다. 나도 신기할 정도다. 가끔 조카들을 만날 때면 내 체력이 다할 때까지 함께 논다. 친구 아이들과도 쉴 새 없이 떠든다. 교회에서나 주변 지인들 아기를 만나면 친해지고 함께 놀 수 있는 관계가 되려고 노력한다. 아기를 돌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왜 이리 즐거운지 나도 모르겠다.
친구들은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아서'라고 답해 준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집에는 아이가 없으니, 늘 신기하고 감격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을 테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조카들에게 그렇게 시간과 애정, 선물을 쏟아 부울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첫 조카가 태어나던 날, 처남과 부모님에게도 이야기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같이 키운다는 마음으로 이 아이를 사랑하겠다고. 물론 모두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너희 부부 아이를 낳아야지. 무슨 소리야.”
그리고 이 이야기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다. 결혼 8년 차가 얼마 남지 않은 우리 부부는 아직 아이가 없다. 양가 부모님은 여전히 걱정하는 눈으로 우리 부부를 바라본다. 처남 부부와 친구 부부들은 안쓰럽게 보기도 하고, 부럽게 보기도 한다. 다양한 시선이 우리를 지나치지만, 지금 우리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말이다.
돌이켜 보면, 결혼 전부터 아이를 낳는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은 없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는 의미를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지금도 이 세상이 아이를 위한, 아이에게 그다지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혹자는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지나친 경쟁과 성공을 위한 혹사를 강요하는 사회는 사람에게 좋지 않다고 여긴다. 특히 아이에게는 더 말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나쁘다. 물론, 인구와 생태 환경을 생각해도 인구 증산은 좋을 게 없다.(이와 관련된 내 생각은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여러 이유를 들어, 나는 결혼 전부터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20대 후반에 한 결정이었다.
물론, 이건 단순한 내 결정일뿐이다. 오히려 결혼할 여성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은가. 부부가 대화로 풀어야 할 중요한 사안이긴 했다. 그리고 S가 딱 그런 여성이었다. 일과 성취, 자아실현이 중요했지만, 결혼했으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여겼다. 1년 간 여러 대화를 나눴지만,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아내는 아이를 바랐고, 나는 아니었다.
결국 아내 바람대로 아이가 생겼다. 테스터를 통해 먼저 이 사실을 확인한 아내는 출산에 회의적이었던 내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둘은 당장 산부인과로 향했다. 초음파로 임신 사실을 확인했다. 그 순간 나는 너무 감격해 울고 말았다. S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말했다. 부모님과 형제들 모두 기뻐했다.
지금 아이가 없다는 사실에서 눈치챈 분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유산을 경험했다. 아이 심장 소리를 듣고 바로 다음번 검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11주 만에 유산했다.) 아이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S는 망연자실했다. 산부인과 두 곳을 더 돌았다. S가 검사가 잘못된 것 같다고, 내게 다른 병원으로 가자고 계속 독촉했다. 결과는 모두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아이를 떠나보냈다.
유산한 아이를 몸에서 덜어내는 수술을 했던 날, 우리 부부는 종일 오열했다. 아내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촬영 현장에서 힘들어 잠시 주저앉았던 날을 생각하며, 그날 때문인가 마음 쓰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죄책감이라 사람들은 말했지만, 아내는 쉽게 덜어내지 못했다. 나는 우울감으로 오랜 기간 고생했다. 상담을 전공한 친구에 미칠 것 같다고 울며 전화하기도 했다. 정말 ‘이래서 미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를 바라지 않았지만, 아이가 생긴 순간부터 내 마음에는 그 아이를 품는 큰 공간이 생겼다. 아이가 생긴 걸 안 순간부터, 아이를 기다리며 매일 일기를 썼다.(당시나 지금이나 일기와 여러 기록은 모두 에버노트 앱을 이용해 남긴다.)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이를 위한 어떤 부모가 되겠다는 마음도 그곳에 가득 담았다. 아내와 나는 증거를 남기자며, 서로의 다짐을 음성으로 기록해 일기장에 담아두기도 했다.
유산을 경험하고, 벌써 6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날의 일기는 아직 내 에버노트 한편에 남아 있다. 그날 이후, 당시 기록을 다시 펼쳐본 기억은 없다. 아니 펼쳐볼 용기를 아직 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날의 기억을 지울 비겁함도, 결단력도 부족하다. 아내와 가끔 그 이야기를 할 때면 여전히 눈물을 짓는다. 남들은 별 거 아닌데 유별나게 행동한다고 지적하지만, 우리는 보지도 못한 아이를 떠난 부모 심정이라고 여기며 넘긴다.
이후, 우리는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의미를 깊이 고민했다. 태어날 아이를 위해 아이를 낳는 경우는 몇이나 될까 논의하기도 한다. 아마, 우리 부부가 아이를 낳는 일은 없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꿈을 꾼다. ‘우리’라는 말이 더 넓어지기를 말이다. 우리 부부가 낳은 아이, 우리 조카만을 상징하던 아이와의 관계를, 세상 모든 아이로 넓힐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영상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