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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Sep 12. 2019

엄마의 명절은 괜찮지 않았다

키워드(명절, 여행, 엄마) 에세이  by 믹서

명절 연휴는 보통 당일 앞뒤로 빨간 날이 붙어 3일이다. 주말이라도 끼면 거의 일주일간 노동을 쉴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명절 노동'이 없는 사람 얘기다. 


(아이와 노인을 제외한) 노동 인구로 분류되는 사람은 누구나 일반 노동을 하지만, 명절 노동은 좀 다르다. 평소보다 특별한 음식들, 그것도 굉장히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명절 노동이다. 성인 남성은 그것을 거의 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본 우리 집 명절의 풍경은 그랬다. TV 드라마를 봐도 그렇고, 주위 얘기를 들어봐도 "남성이 명절 노동한다"는 말은 별로 못 들어 봤다. 


대학교 2학년 때, 비교정치론 강의를 했던 여성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추석 연휴 후 수업에서, 자신이 얼마나 과도한 명절 노동에 시달렸는지 한참 설명했다. 밖에서나 교수지, 시댁에서는 그냥 며느리일 뿐이라고. 그래도 자신은 사회생활도 잘하고, 집에서는 착실한 며느리이자 가사 노동자로 산다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는 걸 은근히 자랑하는 듯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도 한국 여성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밖에서나 교수지, 시댁에서는 그냥 며느리일 뿐이야." 18년 전, 강의했던 여성 교수의 이야기가 여전히 생생하다. 

교수님의 설명이 어찌나 강렬했는지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때였던 것 같다. 처음으로 ‘그럼 우리 엄마는 명절에 어떨까’라고 스스로 질문했던 날이.


우리 가족은 명절에 무조건 친가에 갔다. 시골 큰어머니가 미리 음식 재료를 다 준비해 놓으면, 서울에서 올라온 막내며느리인 우리 엄마가 부랴부랴 앞치마를 하고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평생 할아버지·할머니를 모시며 고생한 큰어머니에게 엄마는 늘 죄송한 마음을 가졌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연휴 3일 내내 친가에서 치르는 모든 명절 노동에 ‘초’ 집중했다.  


엄마는 친가 식구들과 함께 음식을 하면서, 안부를 묻고 이야기 나누는 걸 즐겼다.(진짜 즐겼는지는 모른다.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다.) 사촌 형제들도 우리 엄마를 매우 편안하게 대했고, 실제로 친했다. 해마다 만났으니, 나 또한 성장하면서 친가 식구들의 크고 작은 일들을 다 알았다.




설과 추석, 1년에 딱 두 번뿐인 명절인데, 자주 돌아온다고 느껴진다. 나이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명절이 부담스러워진 걸까. 올해로 결혼 7년 차, 명절을 맞는 나의 상황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연휴 3일을 온전히 쉬려면, 명절 전에 과도한 노동을 해야 한다. 방송국 PD로 일했을 때는 명절 전에 미치도록 바빴다.(직장인은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래서 그 짧은 연휴 기간을 쪼개서 휴식도 취해야 한다. 나 같은 기혼자들은 양가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한다. 제사도 없어서, 명절 노동도 없는 프리한 집에 시집왔는데도, 명절은 그 자체로 부담스럽다. 그렇다. 나는 명절이 더 피곤한 ‘현대 어른’이다.


세월이 흘러 나의 명절 풍경은 이렇게 변했지만, 엄마의 명절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이제 제사도 지내지 않고 음식도 안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연휴를 친가 식구들과 보낸다. 나는 명절에 친정이나 시댁이나 똑같이 가지만, 엄마는 친정에 가지 못한다. 결혼하고 40년 동안 엄마가 명절에 친정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난 엄마가 엄마의 엄마가 있는 집에 안 간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친가 식구들의 대소사를 챙기고 그들과 가까운 사이로 지내는 동안, 외가 식구들이 어떻게 그 긴 세월을 보냈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리고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온 가족이 함께 친가에 어울려 지내느라, 엄마 홀로 외가 식구들과 근근이 소통해 왔다는 걸 잊었다. 지금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가령 친정 식구나 시댁 식구나 똑같은 비중으로 챙기는 게 엄마한테는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시댁에 묶여 산 엄마는 명절에 단 한 번도 엄마의 엄마에게 가 본 적이 없다. 

사실, 이런 의문들을 아빠에게 물어본 적은 없다. 어렸을 때 가끔 들은 엄마 아빠의 대화로 유추할 뿐이다. ‘짧은 연휴 기간에 친가와 외가를 둘 다 가기는 어렵다’, ‘외가가 너무 멀어서 못 간다’, ‘외할머니는 외삼촌들이 많이 있으니 잘 모실 거다’ 등등의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묻어두었다. 


우리 남편은 이런 상황을 답답해한다. 장인어른께 말씀드려 이제라도 명절에 외할머니를 찾아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아빠도 친가 가족 모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큰아버지 눈치 보느라 고충이 많다고. 당신은 모르는 우리 집만의 사정이 있다고. 그 사정은 아마 최대한 가족과의 갈등을 피하고 싶은 나의 변명 정도 되겠다.


얼마 전, 엄마에게 물었다. 이제는 바꿔야 하지 않겠냐고. 엄마는 괜찮다며,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 된다고 했다. 엄마의 인생은 지금 내 글, 문장과 문장 사이사이에 촘촘히 존재한다. 딸인 나의 문장으로 엄마의 사정을 모두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실은 엄마는 괜찮지 않다는 거다. 엄마의 표정과 말투에 명확히 묻어났기 때문이다. 엄마가 괜찮다며 지내 온 명절의 풍경은, 이 시대에서는 괜찮지 않은 것이 되었다. 명절에 본가에만 가고, 처가에는 가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시대다. 


오랜 세월 친가에 집중하며 살아온 엄마에게, 갑자기 무조건 명절에 외갓집을 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요한 건, 내가 이제 엄마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젠가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나서 대화하고 싶다. 같은 여성으로서, 명절에 친정에 가지 못한 엄마의 ‘괜찮지 않았음’을 너무나 잘 알지만 갈등을 피해 공론화하지 못했던 나의 비겁함을 그 여행이 숨겨줄 수 있을까. 여행에서 나눌 엄마와의 대화가, 40년 묵은 명절 실타래를 풀어낼 고리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상상한다. 엄마에게 묻고 싶은 첫 질문은 이것이다. 


“엄마는 추석에 엄마 안 보고 싶었어?”




*notice 
유유히유영은 유자까, 믹서, 멸종각 세 작가가 함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최근 세 작가는 한 주에 하루, 시간을 정해놓고(약 1시간 반) 같이 글쓰기를 합니다. 무작위로 적은 16개 단어 중 3개를 뽑아 관련 글을 작성해요. 형식은 자유입니다. 같은 키워드가 주어지지만, 각자 다른 느낌으로 글을 쓰기에 다양한 글이 나옵니다. 앞으로 매주 키워드 단편집에 이날 쓴 글들을 올리겠습니다. 이번 키워드는 '명절', '여행', '엄마'입니다. 일로 인정받기에 자기를 모두 갈아 넣어 왔던 작가 '믹서'의 에세이가 첫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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