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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Sep 17. 2019

어제, 자살한 사람의 시신을 처음 접했다

옆집 부부의 가정 폭력을 무심히 넘긴 대가 by 유자까

복도 쪽 창밖으로 들리는 다급한 비명. 옆집 여성 A가 집 밖으로 뛰어나오며 내지른 소리다. 옆집 부부의 잦은 싸움 때 들었던 소리와 다른 느낌이었다. 순간, '남편이 큰 사고를 쳤구나'라고 직감했다. 다급히 문을 열고 나갔다. 나를 본 아주머니는 도와달라며, 내 팔을 붙잡고 마냥 울기 시작했다. 


황급히 옆집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는 장롱에 기댄 채 앉아 있는 듯 보였다. 목에 감긴 줄을 보자, 내 손도 떨리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119에 신고했다. 119 대원은 전화를 끊지 말라고 하더니, 목에 감긴 줄을 풀고 CPR을 하라고 했다. 아저씨 목을 만지니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벌써 차가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라고 말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가위를 찾아 줄을 자르고, 심장 마사지를 시작했다. 울면서, 몇 번 시도하고는 119 대원에게 "더는 못 하겠다"고 말했다. 통화 중이던 구급대원은 진정하고, 출동한 대원들이 올 때까지 상황을 잘 지켜보라고 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하지만, 구급대원들은 아저씨의 사망을 확인하고 바로 돌아갔다. 곧 경찰이 올 것이라고 했다. 사망 사건은 경찰 소관으로 넘어간다고 설명했다. 




A는 복도에 주저앉아 남편(B)을 원망하며 울고 있었다. A는 일주일 전 집을 나갔다. B의 가정 폭력이 심해져서다. 아들과 함께 B를 피해 도망쳐 모텔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러다 B의 회사 상사에게 전화가 왔다. 상사는 B가 출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은 A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A는 방에 앉은 B를 보았다. B를 본 순간,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오라고 대화하기 위해 기다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불러도 B는 대답이 없었다. 그제야 목에 맨 줄을 보였다. 그리고 너무 놀라 도움을 청하기 위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온 것이다. 




B의 자살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주 월요일에도 자살하려고 했다. 그날도 심한 부부싸움이 있었다. B는 술에 잔뜩 취해, 집에서 난동을 부렸다. 평소에도 알코올 의존이 심했던 터라, 비슷한 일을 한 달에 네다섯 번 정도 경험했다. 옆집에 가서 말려도 보고 경찰에 신고도 해 보았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그날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내 생각은 달랐다. 평소보다 더욱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 같으니 나가 보라고 했다. 


나가 보니, 옆집 문이 열려 있었다. 살짝 고개만 넣어 상황을 살폈다. 어항을 부쉈는지 마루와 신발장은 유리 천지였고, 7살 난 아들과 A의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뛰어들어가 아저씨 손목을 잡았다. 머그컵을 벽에 던지려 했기 때문이다. 


A는 그대로 아들과 함께 집을 나갔다. B는 술에 취해 실패한 자기 인생과 A, A 가족을 원망했다. B는 나를 밀치며 복도 창문을 향해 달려 나갔다. 뛰어내리겠다고 미친 듯이 소리쳤다. 나는 뛰어내리겠다는 B를 붙들었고, 윗집에 사는 집주인이 내려와 경찰에 신고했다. 


B는 울고 있었다. 경찰이 오고, 그를 인계할 때도 그는 울었다. 내게 미안하다 말했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훈방 조치됐다. 집주인과 나는 그 집 바닥을 쓸어주었다. 취한 상태로 그대로 눕기라도 한다면 B가 크게 다칠 수도 있었고, 집에 돌아올 A와 어린아이가 쉴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들을 위한 적절한 도움은 아니었지만. 


자살하기 전날 저녁, 그와 복도에서 마주치고도 그냥 지나친 일이 지금도 죄책감으로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두 시간 후, 경찰은 B의 시신을 밖으로 날랐다. 그 장면을 보니, B가 자살하기 전날 저녁에 쓸쓸히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와 장을 보고 집에 들어오던 중, 복도에 선 그와 마주쳤다. 하지만 경찰에 신고했던 일이 왠지 미안해서 간단한 목례조차 할 수 없었다. 가정 폭력을 행사한 이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상황이 더 이상하단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자살하고 나니, 인사하고 안부를 물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알코올 의존이 심한 사람이었지만, '술이라도 한잔하자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죽은 게 왠지 내 탓은 아닐까 하는 자책으로도 이어졌다.




시신을, 자살을 접한 여파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시 그 감정을 풀어낼 사람도 없었다. 아내가 걱정하고 힘들어할까, 퇴근해서 집에 올 때까지 이런 심경을 나누지 못했다. 나눌 사람이 없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어쩌면 B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그가 알코올 의존이 심해진 것도 이 때문은 아닐까. 10년 동안 그를 지켜본 집주인 말로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그날 저녁, EBS에서는 자살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그중 심리적 상처가 주는 고통이 뇌에 끼치는 영향이 눈에 들어왔다. 뇌는 심리적 상처로 인한 고통을 물리적 상처와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많은 생각을 했다. 어쩌면 B도 그런 고통을 너무 많이 느껴왔는지 모르겠다. 군인 출신 경비회사 직원, 마흔 살이 되어서야 중국동포 여성과 한 결혼, 성공하지 못하고 많이 벌지 못한다는 자책 등 그가 부부싸움을 할 때면 A에게 소리쳤던 말이 생각났다. 군인으로서도, 남자로서도 모두 실패했다 느낀다고 했다. 


그가 속한 세계에서 그가 느꼈을 무기력함은 그와 그의 가족 모두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무척 잔인하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파국을 보니, 너무 씁쓸했다. 그리고 그의 가족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은 나도, 이 파국에 일정 부분을 감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저 시끄러운 이웃으로만 여겼을 뿐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 적도 없으니, 당연히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방법을 함께 찾은 적도 없다. 물론 누군가는 오지랖이라고 비난할 일이겠지만, 나는 이 부분에 큰 죄책감을 느낀다. 


좋은 이웃이 되어야겠다고 자주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결국 좋은 이웃은커녕, 그저 그런 이웃도 못 되었다. 드러나는 아픔에 공감하지 못했다. 가정 폭력과 심리적 우울감이 심각한 상태에 있던 A에게 제대로 관심도 보이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분노를 품고 살아갔던 B의 말을 들어줄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자살을 보고 느끼는 게 선한 이웃이라는 사실이 참 슬픈 일이다. 폭력 속에 지내던 사람을 도울 방법이 112 신고 밖에 없었던 안타까움, 죽은 사람을 살릴 마지막 순간을 접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미안함, 이런 마음이 내 안에 죄책감이 되어 날 짓누른다. 옆집 사람을 돌아보지 않은 냉정함이 나를 슬프게 한다. 




p.s. 1
페이스북이 상기해 준 5년 전 오늘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감정이 과격하게 페이스북에 포스팅되어 있더군요. 여러 표현을 다듬고, 당시 상황을 조금 더 정확하게 기록한 일기를 확인해 추가했습니다. 며칠 지난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기억하며 글을 남깁니다.

p.s. 2
현재 A와 그의 아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지 못합니다. 장례 일정을 마치고, 바로 이사를 간 후로는 소식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p.s. 3
B는 형제들과도 사이가 좋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휴대전화 주소록에서 찾은 '큰형'에게도 바로 연락했는데, 큰형은 자살했다는 이야기에도 퉁명스럽게 반응한 기억이 납니다. 실제, 그의 시신을 보면서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아 조금 놀라기도 했고요. A에게 엄청 잔소리를 하더니, 결국 싸우는 듯 보였습니다. 장례 후, B가 남긴 전셋집 보증금을 두고 A와 다투기도 했습니다. 

p.s. 4
저는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립니다. 그렇다고 현재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에서도 옆집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아니니, 크게 오지랖을 펴고 있지도 않네요. 개신교인이라 당시 이웃 사랑에 대해 생각했었는데, 입으로만 떠드는 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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