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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May 27. 2024

우리 아이는 지구의 건강을 걱정합니다

우리가 조금씩 챙기면 언젠가 나아지겠죠?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재활용 쓰레기 분리배출일은 매주 화요일입니다. 전에 배달음식으로 얻어 마신 500ml 콜라 페트병부터 편의점에서 4캔에 만원 주고 샀던 캔맥주(이건 누가 다 마셨냐), 두부 한모 예쁘게 담겨있던 플라스틱 용기, 그저께 배송되었던 택배 상자까지 차곡차곡 모아뒀다가 화요일 아침에 싹 내놓습니다. 작은 플라스틱부터 큼지막한 상자 박스까지 일주일간 쌓이는 걸 보고 있으면 뭘 또 그렇게 주워 담았나 싶을 정도네요. 솔직히 말하면 '화요일만 분리배출'이라는 게 조금 야속하기도 합니다. 지방에 살고 있는 지인의 집에 놀러 갔다가...

"여기는 재활용 언제 해?"

"우린 매일 버리는데?"

"아, 좋겠다", 속마음이 입 밖으로 절로 나왔답니다.

최소한 집 한구석 가득 쌓아두는 일은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물론 그게 일상이 되어버리면 매일 버리는 것도 귀찮은 일이겠다 싶지만 일주일에 한 번 버리는걸 매주 경험하고 있으니 쓰레기를 쌓아둬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저 부러울 뿐이었죠. 별게 다 부럽죠? 아무튼 화요일이 되면 속이 다 시원합니다.   


어느 화요일 아침, 출근 준비에 바쁘긴 했지만 부지런히 옷을 차려입고서 양손 가득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매주 겪는 일이니 미리미리 잘 준비해 둬야 바쁜 아침 번거롭게 우왕좌왕할 일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답니다. 화요일 아침이면 엘리베이터도 바쁘게 움직입니다. 때때로 양손 가득 여러 봉지를 들고 나타나는 주민도 있고 대체 어떻게 쌓았는지 캠핑용 웨건에 테트리스 한 듯 가득 쌓아 올린 이웃도 본 적이 있습니다. 여기 사는 모두가 일주일 동안 아주 한가득 채우고 살았네요. 사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면 경비원 아저씨들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가장 고생하십니다. 거대한 포대에 쓰레기가 가득 쌓이면 이를 꽁꽁 묶어 한쪽에 쌓아두기도 하고 사람들이 그냥 던져둔 박스에서는 스티커와 테이프를 뜯어내 가지런히 쌓아두곤 하십니다.  


출처 : Atlanta real estate forum


언젠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아이가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이유와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다 마시고 버린 커피 컵이 길거리 한구석에 있는걸 보고서는 "아니 누가 이렇게 버린 거야. 이러면 지구가 아프단 말이야"라고 말한 적도 있었어요. "그럼 우리가 버릴까?"라면서 집어간 적도 있습니다. 일종의 플로깅 같은 개념이었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하나 일어났습니다. 아이가 냉장고를 열더니 손이 닿지 않는 곳을 향해 손을 뻗으며 요구르트를 꺼내달라고 했습니다. 요구르트를 꺼내 빨대를 꽂아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다 마신 요구르트 병을 들고서 저도 모르게 휴지통에 슬쩍 던져 버리고 말았네요.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아이가 티슈 하나를 뽑아 손에 묻은 먼지 따위를 닦아낸 뒤 휴지통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아니 요구르트 병이 왜 여기 있는 거야?"

(난 아주 태연하게) "응? 뭐라고?"

"아니 여기다가 버리면 안 되잖아"

"뭐가? 아... 아, 그렇지!"


진짜 무의식 중에 던진 쓰레기였는데 그날 아이에게 딱 걸리고 말았네요. 그리곤 요구르트 병을 다시 꺼내 플라스틱이 담겨있는 재활용 통에 넣어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와 제가 경험하고 있는 이 재활용 쓰레기 분리배출이 과연 이 지구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길거리에는 그렇게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 쓰레기를 볼 때면 아이는 지구를 걱정합니다. 우리의 작은 실천과 행동이 앞으로 아이가 살아가게 될 지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겠죠.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을 버려도 군말 없이 제대로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봅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화요일입니다. 지금도 베란다에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는데요. 오늘 저녁에는 지구를 걱정하고 있는 아이와 함께 재활용쓰레기 정리를 하면서 지구 환경에 대해 아주 심도 있는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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