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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Oct 10. 2024

절대적인 맛과 상대적인 취향

나름 잘 요리된 <흑백요리사>, 저도 콘텐츠 '익힘'을 중요시 여깁니다만


결국 우승자는 결정되었고 넷플릭스를 뜨겁게 달궜던 화제의 콘텐츠도 마무리되었습니다. <흑백요리사>, 최근 넷플릭스가 내놓은 콘텐츠 중에서 장르를 막론하고 가장 핫했던 콘텐츠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처음 <흑백요리사>가 공개되었을 때는 어떤 기대감 따위 등 그냥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SNS에 꾸준히 올라온 콘텐츠 리뷰를 계속해서 보고 나니 '이거 꽤 화제가 되겠다' 싶었어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넷플릭스의) 뻔한 추천 알고리즘보다 먼저 다녀가신 분들의 리뷰를 곧잘 참고하기도 하는데 콘텐츠가 넘쳐나는 공간에서 그나마 선택의 폭을 좁히는데 아주 효과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흑백요리사>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흑백요리사>는 전체 12화로 구성된 콘텐츠였습니다. 이 콘텐츠의 재생 버튼을 누른 후 확인해 보니 (제가 본 시점에서는) 8편만 공개가 되었더군요. 아차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플레이는 시작되었고 '한 번에 정주행은 못하겠구나. 그래도 스포일러에 당할 일은 없겠네'라고 생각했죠. 역시 원영적 사고는 참 좋아. 12개의 에피소드가, 아니 모든 요리 경연이 끝난 후 예상했던 결과를 보게 됐습니다. 서사문학의 내용을 구성한다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에서 뭔가 빠진듯한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흑백요리사는 어쨌든 식문화 트렌드를 적절하게 반영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더불어 MZ 셰프들의 눈부신 활약과 마치 예술 작품 같은 요리 퍼포먼스는 감히 말해 빛이 날 정도였습니다. 건드리기 아까울 정도로 말이죠. 또한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 장르를 파괴하며 새로운 퓨전 요리가 탄생하는 것 또한 굉장히 흥미로운 요소였답니다. 어쩌면 이게 이 콘텐츠를 구성하는 메인 재료가 아닐까요?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  출처 :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는 충분히 이름이 알려진 스타 셰프들 20명이 백수저라는 옷을 입고 참가했습니다. 비록 자신의 이름을 가렸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별칭으로 80명의 '흑수저'들이 참여하기도 했죠. 어감상 '흙수저'처럼 들릴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흑'과 '백'입니다. 흑수저 셰프 중 파이널에 오른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꺼내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대다수 이름이 알려지긴 했죠. 인스타그램에서는 이들의 레스토랑 혹은 식당이 어디인지 좌표까지 친절하게 찍어 올린 포스팅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백수저든 흑수저든 자신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이 콘텐츠 중간중간 어렴풋이 나오기도 했는데 흑백요리사가 방영되기 이전부터 꽤 인기 있는 곳들도 있었습니다. 들어본 곳도 있고 전혀 새로운 곳도 있었으며 실제로 가본 곳도 있긴 했어요. 이미 가본 곳이 있었다는 건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정도네요. 이제는 웨이팅조차 어려운 수준이 되었으니까요. 참고로 어떤 중식당은 아침 8시에 이미 웨이팅 마감이라고 하기도. 특히 우승자의 레스토랑은 캐치테이블에서 오픈되자마자 무려 10만여 명 이상 몰려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했습니다. 특정 연예인이 다녀갔다고 해서 줄서는 식당이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던데 그게 맛집의 기준이 될 순 없잖아요? 하지만 이 콘텐츠에서 보여준 셰프들의 요리 솜씨를 눈여겨 봤다면 반드시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될겁니다. 없던 입맛도 되살아날 정도로 말이죠.  


이중 우승자가 있습니다. 출처 :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의 각 미션은 거의 절반씩 탈락자가 생겨났고 그중 아주 소수에 해당하는 인원만 패자부활을 거쳐 남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죠. 여기에는 딱히 설명할 필요 없는 요리연구가이자 더본코리아의 대표이사 백종원, 미슐랭 3 스타에 빛나는 레스토랑 모수의 안성재 셰프 등 두 사람의 심사위원이 있습니다. 기존 요리 경연 프로그램인 마스터셰프에는 3명, 한식대첩에도 3명의 심사위원이 있었죠. 백수저 참가자인 에드워드 리가 아이언셰프(Iron Chef)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심사위원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은 딱 2명이었습니다. 그래도 중간 미션에서는 백종원, 안성재 셰프 이외 얼굴을 가린 98명의 평가단이 참석한 적도 있죠. 그렇다고 심사위원 2명을 제외하고 98명의 평가단 분들이 절대미각을 갖고 자리에 앉은 건 아닐 테지만 이들의 평가가 곧 '대중의 입맛'이었다는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맛이라는 것은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백종원과 안성재의 입맛 혹은 취향도 때론 비슷, 하지만 때때로 전혀 다른 색깔을 보여주기도 했죠. 인터뷰 중에서도 백종원은 "맛을 평가할 때 그래도 (안성재보다는) 폭이 넓은 편"이라고 했어요. 평소 방송을 통해 알려진 백종원의 취향을 아주 세밀하게 공략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파고들 수 있다는 셈이죠. 그렇다고 그게 쉽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안성재는 정말 완벽주의자에 가까웠습니다. 맛을 평가할 때 쓸데없는 가니쉬(Garnish :일종의 고명) 라든가 고작 소금의 사용'량' 정도 혹은 채소의 '익힘', 아무리 맛있는 요리가 있어도 이를 완벽에 가까운 수준으로 전체를 만들어줄 수 있는 '밥'의 존재여부 같은 경우도 안성재 셰프에게는 굉장히 절대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참가자들의 애티튜드까지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 과거 K팝스타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박진영 심사위원은 '오디션에서는 절대로 100점이라는 점수가 나올 수 없다'고 했지만 당시 참가자였던 이진아에게 100점을 준 적도 있긴 했었는데요. 여기에서 안성재 셰프는 맛을 구현하는 데 있어 100점이라는 점수는 나올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러면서도 90점을 준 적이 있었는데 이는 그에게 100점과도 같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안성재의 90점 = 100점'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는 전혀 수학적이지 않은 결론. 어찌 됐든 절대적인 맛과 상대적인 취향이 백수저와 흑수저가 내놓은 수많은 요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던 것이죠. 그들의 입맛이, 그들의 취향이 이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입맛 그리고 취향과 어느 정도 비슷하거나 또 전혀 다를 수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는 죽었다고 깨어나도 알 수 없을 것 같네요. 아마도 그 때문에 참가자들이 빚어낸 요리를 경험해 보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랜 시간 웨이팅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 콘텐츠를 구성하는 전체 12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부전승으로 파이널에 올라간 한 사람은 인생요리라는 컨셉으로 주어진 미션을 매우 정교하게 수행했습니다. 이건 마치 프로야구에서 정규리그 1위를 하고 한국시리즈에 먼저 올라간 팀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건 야구가 아니잖아요? 나머지 참가자들은 두부라는 한 가지 재료로 서바이벌을 거치게 됩니다. 두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할테지만 한식은 물론 일식, 중식, 양식 등에도 적절하게 어울릴법한 재료이긴 하죠. 다만 탈락자가 생겨도 재료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시간 내에 요리를 해야 했고 무엇보다 주 재료인 두부라는 존재가 완벽하게 드러나야 하며 조금이라도 심사위원의 심사 기준에 맞지 않으면 바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물론 두 심사위원의 의견이 서로 맞아야 한다는 기준도 있죠. 흑백요리사의 수많은 미션들을 거쳐왔고 꽤 유명한 맛집을 운영하는 셰프들이 멀리서 보기에는 탄탄한 나뭇가지인 줄 알았는데 두부 미션에서는 아주 가벼운 미풍에도 떨어지는 낙엽 같았네요. 말 그대로 추풍낙엽인거죠. 결국 이들이 두부를 가지고 요리하던 서바이벌 시간 동안 쟁쟁했던 백수저와 흑수저가 하나둘씩 안녕을 고하며 현장을 떠나야 했답니다. 패자부활도 없었고 그 이상의 반전도 없었어요. 결국 한 사람이 남았고 먼저 파이널에 올라간 분과 단 한 번의 요리 경연을 펼쳐 마침내 우승자를 가려냈습니다. 심사위원들의 절대적인 미각(?)과 어쩌면 상대적일 수 있는 취향 그리고 무한에 가까운 경쟁 끝에서 우승 상금 3억 원을 거머쥐게 된 것이죠. 그게 흑백요리사 제작진이 설계한 경연 방식이었던 것이고 그 방식을 통해 우승자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 정도로 이슈가 되고 화제가 된 콘텐츠라면 시즌2도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흥행 여부에 관계없이 말이죠. 이 콘텐츠를 바라본 수많은 시청자들 역시 콘텐츠의 '익힘' 정도를 중요시 여기고 있을 겁니다. 본래 속편이 원작을 뛰어넘기는 힘들다고 하는데 시즌2가 나온다면 시즌1보다 잘 익혀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굳이 우승자 이름을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 내용이 다소 장황해졌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담은 콘텐츠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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