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회사 후배가 나더러 '라부부 아시냐'라고 했다. '라부부? 어느 집 부부냐'라며 무심코 내뱉은 뒤 아차 싶었다. 여기서 이렇게 세대 차이가 드러나는 것인가. 어떤 사람들이 가방에 키링으로 달고 다닌 걸 그나마 본 적이 있어서 "에이 농담이었어. 당연히 알지"라며 어색하게 상황을 수습했지만 라부부의 정체와 존재 의미는 내게 여전히 미스터리다. 라씨 부부도 아니고 진짜로 '부부'도 아닌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라부부의 캐릭터 이름을 영문으로 하면 'Labubu'가 된다. 갑자기 부부젤라가 떠오르는 건 한글이 같아서겠지. 심지어 부부젤라는 'vuvu(zela)'다. 라부부는 길거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단순한 캐릭터 인형도 아니었고 별거 아닌 유행 정도도 아니었다. 과도하게 말하면 세대를 초월한 문화 아이콘이라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문화의 아이콘 수준이라니, 이건 진짜 대놓고 과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작금의 AI 시대를 관통하며 SNS 피드는 물론이요, 리셀 플랫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핫한 아이템이라는 사실. 일부 리미티드 에디션은 정가의 수십 배를 넘는 프리미엄을 기록하기도 했단다. 퍼렐 윌리엄스의 경매 플랫폼인 주피터(Joopiter)에서는 케이팝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 세븐틴과 사카이(Sacai)의 협업 모델로 올라가 무려 4천만 원이 넘는 낙찰가를 기록하기도 했단다. 이 정도면 새로운 소비문화의 상징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 퍼렐 윌리엄스는 잘 알려진 것처럼 뮤지션이기도 하지만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이기도 하다.
** 주피터는 퍼렐 윌리엄스가 2022년 설립한 글로벌 아트 콘텐츠 플랫폼이다.
라부부는 홍콩 출신의 아티스트 카싱 룽(Kasing Lung)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한다. 북유럽 요정 혹은 동화 속에서나 툭 튀어나올법한 엘프 혹은 어느 애니메이션 속 (귀염뽀짝) 몬스터에서 영감을 얻은 존재라고 하는데 가만 보면 뾰족한 이빨도 보이고 은근 반항적인듯한 눈빛도 가졌다. 그래봤자 솜뭉치 같은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작은 이빨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는 모습에 불과한 마냥 귀여운 느낌이긴 하다. 어딘가 완벽해 보이지 않은 외모에서 은근히 소유욕구를 뽑아낸다는데 어떤 이는 'ugly cute'라고도 한단다. 하긴 이 또한 일종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바비 인형이라던가 디즈니 캐릭터의 완성형 아름다움의 반대편에서 탄생한 유니크함이 있다. 완벽을 강요받는 사회 속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은 불완전한 대상에서 오히려 해방과 위안을 얻기도 한다는데 인공지능이 점점 더 완벽함을 추구할수록 인간은 오히려 불완전한 것에 매혹되기도 한다. 라부부의 매력은 그런 '언밸런스'에 숨어있을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언제선가부터 주렁주렁 키링을 달고 다닌다. 단순한 '열쇠고리' 수준이 아니라 자기표현의 도구이자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진짜 쇠 냄새나는 실물 열쇠의 효용이 완전히 사라진 시대 속에서 가방에 달고 다니는 키링은 그 소유자의 취향을 오롯이 드러내는 하나의 선언처럼 되어버렸다. 나도 그렇다. 가방이 위아래로 출렁거릴 때마다 달그락 소리가 난다. 그런 트렌디함 속에 라부부는 꽤 적합한 주인공이 아닐까. 밋밋한 가방 하나에 달려있는 작은 인형 하나가 '나는 이런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시그널이 되어버렸고 알고 보면 인공지능이 만연한 시대 속에 지극히 '비(非) 디지털 아이콘'이지 않은가. 이 흐름에 부채질한 것도 단연 셀럽들이다. 가수이면서 글로벌 인플루언서인 블랙핑크의 리사도 자신의 SNS에 라부부를 올리기도 했다. (하츄핑 그립톡도 올렸다) 어쩌면 패션 아이템 중 하나였을 라부부를 뭔가 문화의 상징처럼 격상시킨 셈이 아닌가. 참고로 리사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무려 1억 명에 달한다. 셀럽의 사진 한 장이라면 충분히 파급효과가 있으리라고 본다.
라부부를 공식 유통하는 팝마트(Pop mart)는 사람들의 소비를 하나의 놀이처럼 설계했다. 흔히 '랜덤박스'라고 하는데 언박싱할 때의 설렘이라던가 희귀한 시크릿 모델(이른바 레어템)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와 불확실성을 결합한 심리적 장치 여기에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교환하거나 거래하는 일련의 익숙해져 버린 과정까지 하나의 생태계로 이어졌다. 소비가 놀이가 되고 놀이가 콘텐츠가 되어버린 셈이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을 하고 예측을 한다. 라부부는 예측 불가능성과 우연의 즐거움을 소비하게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이 효율을 극대화하는 마당에 인간은 비효율의 즐거움을 소비하고 있다. 라부부가 바로 그 모순의 중심에 있다. 이렇게 작은 인형 하나가 수십조 원이 넘는 한 기업의 상징이 될 수 있다니. 하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뭐 이런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