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에도 우리는 뛴다
얼마 전 일요일에 신청해 둔 자격증 시험이 있었다. 인공지능 시대라고 하니 이와 관련한 자격증 시험을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준비했고 무슨 고시라도 보는 듯 부랴부랴 고사장을 향했는데, 맙소사! 곳곳에 교통경찰부터 자원봉사자들까지 길거리로 나와 북적이는 모습이었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마라톤 대회로 인한 통제였던 것이다. 그걸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택시에 달린 내비는 종일 통제된 구간으로 직진하라고 말한다. (그래도 시험장소에는 늦지 않게 도착했다)
생각해 보면 2025년은 그야말로 '뜀박질'의 해였던 것 같다. 주말마다 도심 곳곳이 러너들로 붐볐고 이렇게 교통 통제 안내가 거의 매주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자리 잡은 러닝 문화가 올해 들어 폭발적인 열풍으로 번진 셈이다. 마라톤 대회를 여는 주최 측이 급격하게 늘면서 '1회 차'를 맞이한 대회도 다수였다. jtbc 서울마라톤이나 춘천마라톤 같은 '네임드'는 물론이고 미니언즈나 마블, 디즈니까지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대회도 있을 정도였다. 이름만 잘 붙이면 그냥 하나의 대회가 되는 꼴이었다. 조기 마감이 되는 경우도 종종 보였다. 참가비는 대회마다, 그리고 거리별로 조금씩 다르다. 대회 상품 중 하나인 '굿즈'도 참가자 모집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저 이번에 xx 마라톤 대회 나가요. 굿즈가 좋거든요"
러너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달린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기록(PB)을 이루기 위함일 수도 있고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한 사람도 있을 것이며 단순히 크루 활동을 통해 즐기는 사람도 있고 '나도 빠질 수 없지'라며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터. 앞서 언급했듯 치열해진 굿즈 경쟁도 참가의 이유가 됐다. 완주도 중요하지만 기념 메달과 티셔츠도 중요한 법. 이게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이 없다. 인증샷에도 메달은 필수 아니던가.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뛰는 경험은 굉장히 남다르다. 더더욱 중요한 건 내가 정한 목표를 의지만 있다면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굿즈도 메달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완주'라는 걸 해낸다는 게 더욱 빛이 나는 거니까. 잔뜩 긴장한 상태로 스타트 라인에 서서 출발신호와 함께 박차고 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틈 사이에서 땀 질질 흘리고 헐떡이며 1시간 남짓(10km 기준) 달렸다가 결승선에 골인하는 그 뿌듯함과 벅참과 안도감과 행복감에서 나오는 도파민은 주체할 수가 없단 말이다.
달리기의 긍정적인 점은 생각한 것처럼 다양하다.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이면서 대회가 아니어도 어디서든 달릴 수 있으니 딱히 제약도 없거니와 돈도 별로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집에 있는 낡아빠진 운동화, 대충 무릎 나온 트레이닝 복 걸쳐 입고 스마트 워치 따위 없어도 어디든 달릴 수 있다면 돈이 아예 들지 않는다. 더구나 유산소 운동이니 심폐 기능 강화는 물론이요, 혈액 순환 개선에 체지방 연소 효과도 있으니 다이어트에 '짱'이라는 점 더구나 우울감도 완화시킬 수 있고 수면도 개선할 수 있으니 정신건강에도 긍정적이란다. 꾸준하게 뛰는 사람들은 고혈압에 당뇨에 심장병 위험도 감소한다는 연구도 많다고 한다. 이 정도만 해도 러닝이 주는 효과는 상당히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다. 과하면 다친다. 무리한 훈련은 오히려 무릎통증에 발바닥 염증, 아킬레스건염도 초래할 수 있단다. 체중이 많이 나가거나 착지 충격이 클 수 있는 콘크리트 지면 위에서 오랜 시간 달리면 확실히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다. 그래서 달리기에도 올바른 방법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준비운동은 당연히 필수고 훈련하는 양도 조절할 줄 알아야 하며 신발도 발에 잘 맞도록 잘 선택해야 한다. 단점이 있다기보다 올바르게 하지 않거나 과해지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걸음 수 추적 애플리케이션 '위워드(Weward)'에서 AI 모델 샘(Sam)이 말하길, "운동 부족이 지속될 경우 2050년 미래의 인류 모습이라며 경고라도 하는 듯 하나의 (충격적인) 이미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복부 비만은 물론이고 거북목에 탈모와 부종과 피부 탄력 저하에 관절 경직, 충혈까지 뭔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보였다. 이는 세계보건기구 WHO와 질병통제예방센터 CDC의 자료를 기반으로 생성되었다고 한다. '움직이지 않는 삶'이 얼마나 빠르게 건강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시각화한 것이다.
실제로 WHO는 전 세계 청소년의 80%가 권장 신체활동량에 미달한다고 밝혔다. 심혈관 질환과 당뇨와 치매, 암 등 주요 질환이 운동 부족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경고할 정도다. '샘'의 모습은 결국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계속 앉아서 생활하고 그 편안함을 즐긴다면 현실이 될 수도 있는 미래의 모습이라는 점이니 저 모습이 매력적이라면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는 것이고 죽었다 깨어나도 싫다면 지금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에서는 자칭 '트민남' 전현무가 러닝 열품에 합류한다고도 했는데 소셜에서도 방송에서도 자주 등장했던 것처럼 지금의 러닝 열풍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문명의 방어 반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상 대부분을 모니터 앞에서 보내는 시대에서도 스스로 몸을 움직여야만 삶이 밸런스를 되찾을 수 있다. 물론 마라톤 대회의 과열과 지나친 상업화 그로 인한 교통 혼잡 같은 부작용도 존재하고 있으니 개선의 여지도 분명하게 있다. 지금의 '뜀박질' 문화가 결국 멈춰 있던 인류가 다시 움직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면 올바른 러닝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
꼭 대회가 아니어도 뛸 수 있으니 어서 움직여봅시다. 굿즈나 인증샷이 전부가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