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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venture Nov 11. 2015

Prologue : 용사의 탄생

히말라야에서 아타카마까지, '용사'를 꿈꾸는 청년백수의 쌩고생 어드벤처

Es irrt der Mensch, solang er strebt.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 <파우스트> 中


Prologue : 방향과 방황


때론, 이정표가 있음에도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한다. / Grand Désert, Valais Alps, Switzerland (2015)


희미한 바람이 불어 목덜미를 스친다. 나는 걱정스럽게 하늘을 보던 눈을 돌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겨울빛을 띤 어두운 녹색의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하얀 눈이  바위틈마다 쌓인 날카로운 진회색 바위 봉우리들이 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1초 정도의 짧은 순간이었을까. 아주 잠깐, 마음이 평안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발걸음을 떼려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300m쯤, 내려온 언덕의 높이가 꽤나 높아 보였다. 비록 '언덕'이라고 표현했지만 해발 2,900m에 달하는 고지나 다름없다. 새하얀 눈이 채 녹지 않은 언덕 꼭대기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27kg의 엄청난 무게의 배낭을 지고 아침 내내 저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생각해보니 정신이 아찔했다. 나는 다시 앞을 보고 멈춰있던 두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각거리는 눈과 급경사의 돌 무더기뿐이던 언덕이 끝나고 어느새 눈이 녹아 습지처럼 변해버린 진녹색의 초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몇 시간째 게이터 사이로 들어온 눈과 차디찬 물웅덩이 사이를 걸으며 완전히 젖어버린 등산화는 걸을 때마다 속에서 철벅철벅 소리가 났다. 습기가 많아 진흙처럼 미끄럽게 변한 구간에서는 몇 번씩 위태롭게 비틀거려야 했다. 비틀거리며 허우적댈 때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았지만, 눈 쌓인 고원 위로 내린 적막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누군가에게 헤매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듯 점점 걷는 속도를 높였다. 저 멀리 길이 보였고 그 길에 트레커용 이정표가 있었다. 나는 이정표에서 '프라플뢰리(Prafleuri)'라는 지명을 확인해야 했으며, 이정표를 따라 같은 이름을 가진 산장(Cabane de Prafleuri)을 찾아가 아침 7시부터 초콜릿바 하나 먹으면서 7시간 넘게 설원을 헤맨 지친 몸을 쉬어야 했다. 2015년 6월 말. 알프스에 온지 약 3주째, 프랑스를 지나 스위스 알프스에 혼자 들어온 지 5일째 되는 날이었고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20분 후, 난 이정표에서 Prafleuri라는 글자를 볼 수 있었다. 다만 그 이정표는 정반대 방향, 즉 내가 지금껏 온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을 뿐. 심장이 내려앉는다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하산을 해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는, 약 5분 간 이정표와 가이드북을 번갈아보며 멍하니 서있었을 수밖에 없었다. 2,900m 지점에서 정상 표지석을 찾지 못해 주위를 방황했을 때, 내려오는 길이 생각보다 너무 험했을 때, 무엇보다 주위 풍경이 가이드북에 묘사된 것과 달랐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50m, 100m, 200m를 내려올 때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이 길이 맞을 수도 있다는 기대 역시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내가 내려온 곳은 전혀 엉뚱한 장소였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하나만 남은 등산스틱을 집어던지고 27kg에 달하는 식량, 취사 및 야영장비로 울퉁불퉁한 배낭을 벗어 그대로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이정표의 방향대로 내가 내려온 고지를 바라보았다. 온통 젖어있는 습지, 험하기  그지없는 바위, 그리고 흐린 날씨 속에서도 새하얗게 빛나는 눈. 저 위험한 언덕을 다시 오르다 가는 도토리처럼 굴러 떨어져 다리가 부러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저 산을 아무 이유 없이 내려왔고 또 아무 이유 없이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고, 어딘가 눈에 덮여 있었을 표지석을 찾지 못하고 방향을 잃어버린 내가 한심하다 못해 미웠다. 나는 축축한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으려다 엉덩이를 감싸는 한기에 화들짝 놀소심하게 작은 바위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 나서 더러운 두 손으로 새카매진 얼굴을 감싸 쥐고 울기 시작했다. 과연 다시 올라갈 수 있을까,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나는 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또다시 포기해야 하는 걸까. 나는 꺽꺽 대며 눈물을 흘렸다. 춥고 축축한 알프스 고산지대에 홀로 앉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갑자기 모든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나는 길을 '잃고 있었던 중'이었다.


알프스 깊은 산 속으로 올 때까지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스위스 제네바행 비행기를 타기 며칠 전, 나는 2년 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사직서를 냈다. 대학시절 내내 꿈꿔왔던 '꿈의 직장'이었고 졸업 후 첫 직장이었다. 그러나 신입직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이 곳이 나의 미래를 설계할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불행하게도, 수당도 없는 야근을 했고 주말에도 사무실에 출근해야 했던 적도 많았다. 출근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는 게,  밤늦게 오지 않는 야근 택시를 기다리는 게 너무나 괴로웠다.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이해도 할 수 없는 업무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가며, 비합리성과 비효율성에 끊임없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몸이 부서져라 일했지만 그럴수록 난 점점 불행해졌다. 하지만 나는 2년 간 버텼다. 어렵게 뚫고 들어간 취업문을 박차고 나와 다시 도전할 용기가 부족했던 것도 있었지만, 내가 20대 청춘 대부분을 쏟아가며 믿어왔던 가치와 최고의 직장이라 믿었던 회사가 나를 배신했다는 사실을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나는 나와 맞지 않은 길, 잘못된 길을 택했으나 방향을 바꿀 용기가 없어 방황했고 불행했다. 오히려 지독한 두려움에 힘들어도 그 길이 맞는 길이라고 자위하며 2년간 많은 것을 포기한 채 같은 방향으로만 헐레벌떡 뛰어갔다. 검게 탄 피부가 하얗게 일어난 손등에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며, 비로소 나는 한국에서의 지난 2년과 그 날 알프스에서의 두 시간이 어떤 비슷한 내러티브를 가졌는지 문득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길을 잃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길을 '잃고 있었던 중'이었다. 나는 잘못된 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를 인정하고 멈춰 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더욱 최악인 것은 내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조금만 더'를 외치며 흙탕물 속에 발을 첨벙거리며 실성한 사람처럼 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 명백한 이정표가 나올 때까지. 혹시나 맞는 길이 아닐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알고 2년 간의 첫 직장생활을 마쳤을 때 나는 20대의 열정과 희망, 그리고 자존감을 너무도 많이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리하여 인생 최대의 용기를 내어 퇴사를 감행하고 '나 자신을 찾는 극한의 모험'에 도전하겠다고 호기롭게 떠난 알프스. 나는 당초 목표했던 도전 중 이미 하나를 실패한 상태였고 이 날 최악의 하산 실수로 인해 다른 하나조차 포기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었다. 3일 동안 씻지 못해 땀과 진흙으로 더러워진 옷과 배낭을 맨 나는 고작, 처량하게 울고 있었다.


Bon courage!


"무슈, 도움이 필요한가요?"

20분쯤 되었을까. 추위에 떨며 한창 머리를 박고 울고 있는데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2명의 아주머니가 가벼운 하이킹 차림새를 하고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행복을 찾기 위해 회사를 때려치우고 알프스에 왔다가 멍청하게 반대방향으로 산을 내려와 버린 나의 신세를 유려한 불어로 설명하려 했으나, 3초 후 '길을...... 잃은 것 같은데요.'라는 말을 버벅거리며 토해내는데 그치고 말았다. 아주머니들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고, 잠시 후 처음 말을 건 키 작은 아주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많이 힘들어 보이는군요. 여기 샛길을 따라 10분쯤 올라가면 산장이 하나 있어요. 난로와 음식이 있고 산장지기(cabanier)가 필요한 정보를 알려줄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나의 비참함을 조금 더 즐기고자 하는 마음에 대충 감사하다고 말하며 두 분의 시선을 회피했다. 아주머니는 나의 우울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보고 내가 혹시 근처 절벽에 가서 등산화를 가지런히 벗어둔 채 뛰어내릴 예정은 아닌지 걱정하는 듯 보였다.

"힘내요(Bon courage)!" 키가 크고 마른 다른 아주머니가 보낸 격려의 메시지에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젖은 눈으로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고, 아주머니들은 그제야 안도하듯 웃어 보이며 발걸음을 돌렸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이 곳에 가이드북에도 없는 산장이 있다니? 최소한 이 곳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길을 물어볼 산장이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과 서러움이 약간이나마 잦아드는 듯했다. 'courage'(불어로 '용기'라는 뜻). 나는 눈가를 문지르며 이 말을 몇 번 되뇌었다. 그리고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천천히 일어나 배낭을 메고 스틱을 주웠다. 배낭의 가공할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며 이정표 앞에 서서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해가 늦게 지는 유럽의 여름을 생각했을 때 아직 6시간 정도가 남아있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다시 뒤를 돌아보자 흐려진 날씨를 배경으로 눈 쌓인 2,900m 고지가 보였다. 저 곳을 다시 오르려면 얼마나 힘들까.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포기할 수 없었다. 잘못된 방향이라면 일단 멈추고, 다시 돌아가 맞는 길을 찾으면 된다는 간단한 진리.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힘들게 들어간 직장까지 '그만둘 용기'를 내었던 게 아닌가, 비록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용감한 사람이야.


다시 걸음을 뗐다. 진흙이 잔뜩 묻은 등산화에서는 여전히 철벅철벅 소리가 났다. 우선은 발이라도 말리고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아주머니들이 알려준 산장을 향해 샛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난 대단한 사람이야, 강한 사람이야, 그리고 용감한 사람이야.' 그러다 한 달 전 회사 동기들에게 퇴사 결심을 밝혔을 때, 진로를 함께 고민했던 친구 SW와 나누던 실없는 농담 하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이를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나는 백수지만, 용사(勇士)야.'




그래서 난 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용사는 어릴 적 만화에서만 보던 유아적인 판타지 캐릭터가 아니다. 말 그대로 '용감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특히 나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거침없이 험난한 모험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용사'다. 내가 2년간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괴로워했던 것은, 끊임없는 내면의 충돌과 그럼에도 다른 대안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인생의 모험을 감행할 용기가 생겼을 때,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를 위해, 그동안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아름다운 세상의 산과 들과 강, 바다와 사막을 두 다리로 직접 모험하기로 결심했다. 그럼으로써 미래를 향해 새롭게 분투할 에너지를 얻었다. 이 글은 바로 그 '모험'들에 관한 이야기다. 뉴스에 나올 만큼 대단한 모험은 아니지만, 정체된 삶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무언가를 계획하고 준비해서 도전한 꽤나 멋진 실패와 성공기다. 비록 백수지만, 모험을 통해서 비로소 스스로에게 떳떳한 '용사'가 되고자 하는 서른을 앞둔 청년의 이야기다.


190km를 걸어 마터호른에 도착했을 때의 그 희열. / Schwarzsee, Zermatt, Switzerland (2015)


5년 전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으로 시작된 산과 자연을 향한 열병은, 퇴사 직후 나를 파리뉴욕, 방콕 아닌 험한 알프스 산 속으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서유럽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 정상(4,807m) 등반에 도전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전한 '샤모니-체어마트' 트레킹. 알프스를 관통하는 190km '오트루트(Haute Route)'의 5번째 날. 나는 극한의 피로 속에서도 해발 2,900m 고지를 다시 올랐고, 4시간 여만에 그렇게 간절히 찾아 헤매던 프라플뢰리 고개(Col de Prafleuri, 2,987m)를 넘었다. 물론 그 뒤로도 나는 수십 번은 더 길을 잘못 들거나, 방향을 잃거나, (또다시) 하산을 잘못해서 산을 다시 올라야 했음을 미리 일러둔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 체어마트에 도착해 마터호른(Matterhorn)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사막에서의 250km 울트라마라톤은 그 자체가 인생이다. / Valle de la Muerte, Atacama, Chile (2015)


7월 중순, 알프스에서 귀국한 나는 세계 최고의 극한 레이스 중 하나인 칠레 'Atacama Crossing(아타카마 크로싱)' 사막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오랜 꿈이었던 사막 마라톤 완주를 대학 시절 봉사단원으로 1년 남짓 활동했던 네팔의 비극적인 대지진과 연계해 지진 피해 재건 기금을 조성하자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혼자만의 아이디어로 시작했지만, 전 직장동료들과 공정무역 브랜드 '아름다운 커피', 그 밖에 여러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고민하면서 소셜펀딩 프로젝트 '#I'M GOING TO NEPAL(아임고잉투네팔)'생시켰다. 8월 한 달 간은 매일같이 체력 및 러닝 훈련을 하며 틈틈이 프로젝트 구체화와 홍보를 위해 노력했고, 9월 초에는 '현지 적응훈련'을 목표로 바람의 땅이라 불리는 남미 파타고니아로 떠나 혼자서 총 200km를 걷거나 달렸다. 10월, 아타카마 크로싱에 한국 대표 선수로 참가하여 세계에서 가장 건조하다는 아타카마 사막 250km를 일주일간 달려 완주하였고, 소셜펀딩 및 커피 판매를 통해 기금 1,000만 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의 취직과 진로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계획한 모든 모험을 마치고 지금 다시 구직 전선에 복귀한 나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퇴사 후 5개월간의 모험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지 진솔하게 알려주었고, 새로운 삶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후회는 없다. 마크 트웨인이 썼듯이, 용기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대한 저항이며 극복이다. 이에 난 나름의 방식으로 두려움에 저항하고 이를 극복하려 노력했던 것뿐이다.


지금 이 순간도 학교와, 직장, 사회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멋지게 저항하고 있는 수많은 '용사'들이여. 허락한다면 깊은 산 속 작은 산장에서 산객들이 화로 주위에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듯, 그대들과 소소한 모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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