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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venture Dec 17. 2016

둘째 주, 두려움과 설렘

네팔을 위해 사막을 달린 청년, 독일 원조기관 전문가로 네팔에 돌아오다.


네팔에서 맞은 두 번째 주는 조금 힘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파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이 아픈 것을 떠나 스트레스 받았던 것은 Consultant라는 fancy한 직책에 걸맞은 나의 명확한 역할 찾기였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몇 달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보건전문가나 개발협력사업 관리자가 아닌 'technical person'으로 내가 해야 할 일, 배워야 할 것들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2주 차의 기록이다.


2016. 12.12. (월)

- UNICEF, UNESCO, KOICA 등 한국인 전문가들과의 만남

    네팔에서 일하는 국제기구 직원 및 KOICA 전문가 출신 한국 분들을 만나 함께 식사했다. 한국 분들을 통해 네팔에서 생활하고 일하며 느낀 점 등을 공유하면서 그간의 긴장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장소는 터멜 가기 전 오른쪽으로 빠지면 나오는 Durbar Marg.라는 길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는데, '카트만두의 가로수길'로 불리는 이 거리의 화려한(물론 네팔 기준에서) 모습은 2010년 당시에도 카트만두 중심가의 급격한 발전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내게 큰 충격이었다. 커다란 몰은 물론, 나이키, 아디다스 등의 공식 매장, 애플 제품 셀러(한국보다 더 비싸다)가 있는 것도 놀라웠고, 이렇게 잘 꾸민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대지진, 정치적 혼란 및 물자 부족 속에서도 부자들을 위한 서비스는 급속도록 발전하고 있는 점은 조금은 불편하다. 심지어 대지진과 남부지역 국경 봉쇄 '덕분에' 돈을 엄청나게 번 네팔인들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파탄 남쪽 '태초'라는 촌동네에 살던 내게는 영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다.



2016. 12.13.-15. (화-목)   Field Trip to Nuwakot(누와꼿)

- Trishuli(Nuwakot) Hospital 방문 및 실태 브리핑

누와꼿 병원의 소담스런(?) 'Hospital Garden'

    누와꼿은 카트만두 북서쪽에 위치한 지역(district)으로 내가 앞으로 담당할 보건정보시스템(Health Information System/HIS)이 운영될 뜨리슐리 병원(이하 누와꼿 병원)이 있는 사업지다. 담당할 업무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는 있지만 최소 내년 1월 즈음에는 내가 직접 파견될 예정인 곳이기도 하다. 누와꼿의 주도인 Bidur(비두르)에는 우리 GIZ S2HSP의 Regional Office(지역사무소)가 있고, 필드 팀원들이 현지 보건인력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일하고 있다. 이번 필드트립은 필드를 직접 방문해 지역사무소 팀원들에게 우리를 소개하고, 함께 회의를 통해 앞으로의 계획 및 업무분담을 상의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아침 7시에 출발해 약 3시간 동안 좁은 산길을 굽이 굽이 달려 도착한 누와꼿의 주도 비두르는 비교적 깔끔하고 (카트만두보다) 공기도 좋은 작은 도시였다.

    누와꼿 지역의 district hospital에 해당하는 누와꼿 병원은 2015년 4월 대지진으로 건물 대부분이 부서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각 UNICEF 등 국제기구의 긴급지원으로 임시 텐트 시설을 설치해 진료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고, 많은 주민들이 고통과 불편을 겪어야 했다. 얼마 후 GIZ에서 'Recovery Nepal Programme (RNP)' 사업의 일환으로 Pre-fabricated facility(일종의 조립식 건물, 이하 Pre-fab)를 도입해 부족하지만 장기간 안정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을 제공했고, 현재는 한국의 KOICA가 병원 재건축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진 직후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DHO 사무실

    Pre-fab 병동과 지진 때 피해를 덜 입은 일부 시설로 유지되고 있는 누와꼿 병원은 비교적 잘 정돈되고 관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정원 꾸미기를 좋아하는 네팔 사람들답게 곳곳의 작은 부지를 'hospital garden'이라고 꾸미고 작은 나무들을 심어 놓은 것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뒤쪽으로 가자 잔뜩 쌓여있는 콘크리트와 철근 더미들. 바로 대지진으로 파괴된 원래 병원의 잔해였다. 또 과거 병동으로 사용하던 텐트들은 거의 전쟁터나 마찬가지. 지역 보건국(District Heath Office) 건물 상태도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그간 보유하고 있던 많은 기물들과 서류들이 정리되지도 않은 채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상태였다.

이제는 그냥 방치되어 버린 누와꼿 병원의 텐트 임시 진료소


- Nuwakot Regional Team과의 미팅 #1

    병원 방문 후 비두르 지역사무소에서 회의를 통해 필드 관점에서 사업 브리핑을 듣고 이슈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날 회의 주제는 hospital management가 중점이었는데, 보건 분야와 병원 경영(?)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모든 것이 새로운 주제였음이 분명하다. 전문 의료인력의 부족, 전문경영인의 부재, 직원들의 낮은 보건 및 위생지식 등이 배경으로 지적되었고, 특히 의료 폐기물에 대한 규정이나 방침 없이 (보통 네팔 사람들이 쓰레기를 처리하듯이) 구덩이를 파고 폐기물을 소각하는 관행이 상당히 심각하다고 느껴졌다.

    

- 살기 좋아 보이는 누와꼿, 그러나 숙소에서 겪은 최악의 밤

이런 풍경은 카트만두, 파탄 등 수도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퇴근 후 팀원들 모두 누와꼿 안쪽으로 들어가 현지인들이 주로 생활하는 거리를 걸었다. 사방이 허름한 건물과 시끄러운 차, 매연과 먼지로 가득한 카트만두에 비하면 누와꼿은 조용하고 깨끗했다. 특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높은 언덕들('산' 취급도 받지 못하지만 3,000m가 넘는다)과 저 멀리 랑탕 계곡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되게 했다. 또 이 곳이라면 (카트만두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러닝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런데 저녁을 먹을 때부터 영 오한이 드는 게 몸이 좋지 않아 일찍 숙소에 들어와 보니, 바로 건너편에서 현지인의 웨딩 파티가 열리고 있었고, 엄청난 소리의 음악 소리가 방을 울리고 있었다. Nepali EDM은 정말 당혹스러운 하모니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불편한 침대에 베개, 거기에 제대로 나오지 않는 온수,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엄청난 향의 모기 스프레이(?) 냄새. 몸이 안 좋고 추워서 7시에 침대에 들었지만, 약 3시간 동안 두통이 올 듯한 소음과 냄새에 지옥을 맛보았고, 결국 이 날 나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 Nuwakot Regional Team과의 미팅 #2

    누와꼿에서의 둘째 날은 전날의 '오감 고문'으로 증폭된 감기몸살 + 두통 + 소화불량 증상이 종합적으로 폭발했고, 이런 몸 상태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HIS 분야 미팅에 참가해야 했다. 아픈데 더해 아직 열정만 앞섰지 실제로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technical part에 대한 설명을 듣고 3-4년 이 분야에 종사한 프로그래머의 질문을 받으려니 눈 앞이 캄캄했던 것 같다. 특히 내가 가진 프로그래밍 실력이 정확히 어떤지에 대해 IT 분야 팀원들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역할 분담에 대한 논의 자체가 약간 엇나가는 느낌이 들었는데, 가만히 있다가는 과거 KOICA에서 하던 관리 및 보고서 작성 등, 내가 결코 원하지 않는 generalist의 역할로 밀려나버리는 것이 아닌지 걱정도 들었다. (generalist가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해당 기술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덜컥 '이건 내가 맡아서 하겠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고, 내가 6개월간 공부한 프로그래밍이 이 곳 실무에 비하면 너무나 좁고 또 하찮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앞으로의 막연한 업무가 문득 두려워졌다.

    아픈 몸이지만 다시 머릿속을 정리하고 의견을 전달했다. '당연히 나는 development, database management를 포함한 technical role을 맡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난 KOICA의 관리직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다만 지금 당장은 필요한 기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특히 조만간 당신들과 약속을 잡아 내가 그간 배운 프로그래밍 기술에 대해 소개할 테니, 프로그래머인 당신들이 내 멘토로서 해당 업무에 기여하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할지(where to start) 조언해주면 고맙겠다.'

    다행히 나와 함께 일하게 될 프로그래머 2인이 꽤 괜찮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게 그나마 다행 ㅎㅎㅎ



2016.12.16. (금)

- 계속되는 두통

    출장을 다녀와서도 두통은 가시지 않았고, 나는 결국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금요일은 상사의 배려로 늦게 출근해 일찍 퇴근했고, 출장 가서 얻어온 부담을 내려놓고 머리와 마음을 쉬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오늘(토요일)은 상태가 훨씬 나아진 것 같다. 


    주말 동안에는 내가 지금껏 배웠던 것들에 대한 정리와, 업무 관련되어 무엇을 미리 준비해야 할지 고민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너무 조급해하지는 말자. 이제 시작하는 거니까. 


잘 먹고 회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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