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海遊覽> (序)
중국 해안가의 도시들, 그 중에서도 개항을 일찍 한 항구들은 다들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 중국 본토와는 별개의 행정지위를 갖지만 홍콩(香港)이 그렇고, 한국과 가까운 청도(靑島), 대련(大連)도 그러하며, 북경(北京)의 외항인 천진(天津) 역시도 그러한 조차지로서의 역사를 가졌던 곳이다.
상해(上海)는 그 중에서도 홍콩만큼이나 특별한 곳이다.
1854년부터 거의 100여 년 동안 프랑스, 영국, 미국, 그리고 일본까지 조계지를 가지고 있던 이 도시의 가장 화려한 곳에는 프랑스와 중국이 같이 존재하고, 파리에 떼다 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건물이 도시 가운데 숨어 있다. 이래서 상해를 동양의 파리라고 하는구나 싶은 느낌이 든다.
이런저런 일로 홍콩을 방문하거나 경유한 일은 잦았지만, 상해는 중국의 타 도시를 몇 번 다녀온 나에게도 이상하게 인연이 없던 도시였다. 사실 이런저런 일을 통해 상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고 음식도 많이 접하였으며 심지어 상해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이 지근거리에 있는 친구임에도 어째 발이 쉬이 가지는 못하는 지역이었던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홍콩은 중국과는 뭔가 다른 게 있다고 이야기함에도, 상해는 너무 확실히 중국이기에 그런 말을 자주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녀온 후 상해에 대해 가진 인상은 '아, 이게 해파(海派)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다녀왔던 중국의 어느 도시와도 달랐다. 굳이 따지자면 '음? 대만인가?'싶을 정도로 대만 분위기가 나면서 묘하게 홍콩 분위기도 났던. 그러면서 그 둘과도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진 도시가 상해가 아닐까 싶다.
나름대로 중국의 몇몇 도시를 다녀 보았던 나에게 가장 쇼킹했던 것은 바로 저 '메이드 인 상하이'라는 글자였다. 분명 Made in Shanghai는 Made in China의 부분집합일 텐데 후자와는 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것이 아마 중국에서 상해가 갖는 위치를 대표하는 듯하다. '나는 다른 중국의 도시와는 달라!' 라고 외치는 듯한 'Made in Shanghai', '상해제조'라는 단어. 모던레이디가 한국 관광객들의 필수 쇼핑 품목으로 자리잡은 데는 이러한 특별함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상해가 사실 이렇게 중국의 여타 지방과 다른 분위기를 가지는 데는 상해의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많은 도시들이 한대, 혹은 송명대 이후에 성장한 것과 달리, 상해는 홍콩처럼 개항을 통해 성장한 도시이다. 원래 이 지역의 주요 항구는 항주(杭州)였으나, 열강의 조차지로 상해가 선정되면서 지금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는 홍콩과 닮아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후 상해의 조차지는 중국 본토로 되돌아감에 따라 홍콩과 상해의 차이 또한 생겨났다.
상해의 과거를 상징하는 와이탄(좌)과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푸동지구(우). 와이탄의 고풍스러운 건물은 단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양인들이 설계한 건물이다. 사진에서만 본 부다페스트의 건물과도 조명 때문인지 약간 닮아보였다.
하지만 중국이면서 중국아닌 중국같은 홍콩과는 달리, 상해는 세련된 중국의 모습이다. 아마 개항 이후 근현대 중국의 사회운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면이 있어서일 수도 있고,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북경과의 경쟁관계 때문에 부각되어 보이는 것일 수도 있을 듯하다.
와이탄, 동방명주 모두 좋았지만 나에게 상해가 가장 상해다운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티엔즈팡을 꼽을 것 같다.
어디서나 있는 모던레이디 매장도 위의 사진에서 보듯 티엔즈팡 특유의 건물과는 유독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고, 오래된 석고 모양의 건물들이 어딘지 모르게 20세기 초반의 정동길에 흔히 있었을 듯한 양식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밀조밀한 중국 거리 특유의 리농(里弄; 북경의 후통과 같은 골목길)같은 모습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보이는 세련된 모습은 서촌을 거닐 때의 느낌과도 비슷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중국을 다녀오고, 그리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깨끗하고 세련된 상해를 좋아한다.
어쩌면 상해를 통해 중국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나처럼 돌아돌아 상해를 다녀온 사람들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그분들만큼 상해를 잘 돌아봤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 중국의 많은 부분을 경험한 나에게 어떤 도시보다 새로웠던 상해를 앞으로 써 나가고자 한다.
옛날, 중국의 타 지방에서 살던 사람들이 개항기 상해의 모습을 보고 마법처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해서 상해를 마도(魔都)라고 했다 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조차도 그들이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상상이 된다.
상해, 4일동안 불가능한 것이라고는 없을 것만 같던 마법의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