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海遊覽> (一) 사람과 돈이 있는 곳에 시장이 있으니
자본주의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았지만, 사람이 농경을 시작하고 일의 분업이 생겨난 때부터 물물교환, 그리고 물물교환의 장소인 시장이 생겼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나타나는 공통점이 몇 있는데, 광장과 시장이 있고 그것을 관리하는 조직과 조직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건축물 또는 조형물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시장은 아마 이렇게 도시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 아닐까 한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라는 북한에도 시장은 있고 시장에서 사람들은 대화를 하며 물건을 사고 판다. 그것이 발보다 빠른 소문을 만들어내는 힘이고 그 힘은 권력을 만들기도, 없애기도, 바꾸기도 한다.
사실 상해 여행에서 시장에 이렇게 관심을 둘 생각은 원래 없었다. 4일의 짦은 여행이기도 하고, 이미 다른 곳의 시장도 질릴 만큼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크게 다를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 현지인들이 갈 곳 같은 분위기가 나는 사진들은 모두 다 계획 없이 발견한 곳이다.
첫날, 시간이 조금 남아 혹시나 상해에도 야시장이 있을까 싶어 검색했는데 랍스타와 새우를 파는 거리가 있었다. 쇼우닝루(壽寧路;수녕로)에 있는 롱샤거리. 우리가 보통 아는 그런 야시장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랍스터를 파는 식당이 잔뜩 모여 있는 곳에 가까웠는데, 이 곳에서 발걸음이 멈춘 곳은 다름아닌 과일가게였다.
망고와 두리안, 리치. 사실 모두 상해에서는 나지 않는 과일들이다.
둘째 날 들른 티엔즈팡 근처의 타이캉루 야채시장(泰康路菜市場), 야채만 팔 줄 알았는데 들어가 보니 다른 것들도 판다. 사실 이 곳이 특별했던 이유는 소위 '뜨는 동네'의 시장이었기 때문. 서촌에서 가는 통인시장보다야 규모도 작고 간식거리가 있는 시장은 아니었지만, 뜨는 동네 옆 중국 분위기 물씬 나는 시장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운, 티엔즈팡을 들렀다가 잠시 보기 좋은 그런 시장이었다.
중국이 넓은 나라라는 것이 여기서도 또 확실히 느껴진다. 한국이야 북위 30~40도의 위도 안에 모여 있고 그나마도 반쪽으로 뚝 잘려 서울과 부산, 서울과 제주도의 작물 차가 심하지 않지만 이 곳은 아래로는 거의 열대나 다름없는 하이난에 북쪽으로는 사막과 아무르 강의 침엽수림이 자리한 땅이라는 것을 여기서 실감할 수 있다.
상해에서 느끼기 쉽지 않은 중국의 거대함이 이 작은 시장 안에서 느껴진다.
왼쪽 아래, 보라색으로 가운데가 보이는 나물의 이름이 바로 비해(萆薢)이다. 한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약재인데 이 곳에서는 나물로 사용한다. 사실 이렇게 한국에서 한약재로 사용되는 것들 중에서는 다른 부분을 향신료, 혹은 나물, 심지어 과일로 먹는 것들이 꽤 있는데, 예를 들어 정향(丁香)이나 여지(荔枝;리치) 등이 있다. 비해는 '큰마'를 가리키는데, 약재로 쓸 경우 뿌리를 주로 사용한다. 그러니까 풀을 직접 본 건 아마도 인생에서 처음일 것이다. 어느 가게에 가도 비해가 저렇게 많이 있는 걸 보면 분명 많이 사용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외에도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데, 땅이 커서 그런지 오이도 크고 감자도 크고 모든 게 다 커 보인다. 중화권 시장에서 가장 놀랐던 것이 오이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다는 점인데,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오이는 소황과(小黃瓜)라 부르며, 소황과가 있으니 역시 대황과(!)도 있다. 애호박 같은 생김새에 오이 맛이 나는. 마치 오이의 진화과정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땅덩이가 넓은 게 여기서도 실감이 나게 하는.
바나나가 매달려 있는 게 아주 먹음직스럽다. 과일을 흥정하는 맨 뒤의 할머님은 이 바로 뒤에 흐뭇한 표정으로 체리를 몽땅 사가셨다. (그리고 나서 우리도 이 가게에서 과일을 샀는데, 사실 저기서 보이는 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용과는 여기서도 비싸다. 왜냐하면 상해는 용과를 재배할 수는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렇게 채소가게를 한참 지나다 보면 생선가게들이 나타난다.
내가 아는 한 중국요리들 중 바다에 접해 있지 않은 곳에는 생선요리가 많지 않다. 생선회는 더욱 그렇고. 한족이 사는 영역들 중에서 생선회를 많이 먹는 곳이라고는 일본의 영향으로 생선회를 즐겨먹게 된 섬인 대만정도? 상해는 바다에 접해 있는데다 게 요리가 유명한 곳이라 생선이 없지는 않으나, 이 곳에서도 생선회를 찾기는 쉽지 않다. (대만의 비슷한 시장에는 생선회를 파는 곳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다만 생선회를 즐기지는 않더라도, 생선의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자주 먹지 않는 커다란 멸치와 이런저런 향신료로 잠시 간해놓은 생선들이 많이 보인다. 이 역시 한국과는 조금은 다른 점.
가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이 시장에서 이렇게나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시장이 접근성이 정말 좋기 때문이다. 티엔즈팡을 가려고 전철을 내린 후 길을 무작정 걷지 말고, 주변을 꼭 둘러보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 본다면 생각지 못한 보물들이 어디선가는 꼭 나타나게 마련이다.
계획대로 진행하는 여행이라 하여, 계획만 보고 주위를 바라보지 못하면 결국 가이드북 다시읽기 이상도 이하도 아닐 터이니.
셋째 날 오후에는 예원(豫園)에 들렀는데, 사실 예원에 대한 나의 인상은 그닥 좋게 남아있지 않다. 다른 편에서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상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고 가장 시끄러웠던 곳이 예원 밖 식당거리였다. 물론 명동도, 서면도, 타이페이의 많고 많은 야시장도 그런 모습이지만 3일 내내 나름 조용하게 둘러볼 수 있었던 상해였기에 더 그랬다. 아무래도 접근성이 좋은 시내의 정원이라 더 그랬겠지 싶으면서도.
그런데, 예원 입구를 찾느니라 예원 벽을 한바퀴 빙 돌다가 이런 곳을 발견했다. 그야말로 사람이 사는 곳.
시장이라기보다는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옛날에는 이렇게 장사를 하고 음식을 팔았겠구나 싶은 곳이다.
이 곳엔 예원을 들어갈 입구를 찾지 못한 관광객이 굉장히 많이 드나든다. 그 중 일부는 나처럼 사진을 찍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하고. 아마 더 예전의 상해는 이 모습에 보다 가까웠을 것이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고 '중국스러움'이라고 좋아했다. 사실 이 말은 반만 맞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이 현대 중국의 모든 중국스러움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활 수준이 한국과 거의 비슷한 대만의 보통 사람들은 이것보다 조금 더 괜찮은 곳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처럼 여전히 이러한 모습은 중국의 식문화를 상당 부분 대표하기도 한다. 그냥 식문화 자체가 한국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생식과 절임이 꽤 많이 있는 한국과 달리 중화권의 음식은 익혀 먹는 음식이 대부분이고, 게다가 강남 지방은 습하고 더워 실내에서 음식을 하기 적합하지 않다. (벌레가 엄청나게 끼고 곰팡이 등 균이 실내에서는 보다 더 잘 번식하기 때문이다)
야시장이 남쪽으로 갈수록 번성하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들도 있을 것이다.
여행을 하게 되면 서점과 함께 꼭 들러 보려 노력하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풍류와 문화, 해학과 풍자가 섞이게 마련이다. 한국에서 야시장이 번성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느 순간부터 더위를 피해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맥주와 치킨이 돌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더 모이고 장사꾼은 더 모이며, 결국 그것을 관리하는 곳에서도 관리의 편의와 돈의 순환을 위해 이를 체계화하게 된다.
시장이 마트와 다른 점이 바로 이러한 형성과정 때문이 아닐까.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입지좋은 곳에 2차적으로 들어서는 마트와 달리, 시장은 적은 자본을 가진 상인들, 혹은 1차 생산자들이 직접 물건을 가지고 모여들어 형성하게 마련이다. 내가 예전에 살던 광주의 학교 앞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단지 농협과 은행, 버스 정류장과 사거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이 전혀 될 수 없는 4거리의 인도변에 많은 노점들이 모여앉아 시장이라 불리지 않지만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갔더니 여전히 그 곳은 시장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