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의 밤하늘을 아름답게만 바라보았던 나를 반성하다
사실 '대니쉬 걸'과 '동주' 사이에 '귀향'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봉 첫 날!
하지만 '귀향(鬼鄕, 많은 사람들이 歸鄕으로 생각하시고 리뷰를 남기시던데 혼이 돌아온다는 의미로 귀신 귀 자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꼭 아셨으면 해서...)' 리뷰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귀향'에 대해 내가 이래라저래라 말을 얹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동주'도 사실 쉽게 말을 얹을 수 있는 성격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귀향'보다는 윤동주의 삶 자체를 드러내는 측면이 강해 보였기 때문에 리뷰는 남길 수 있을 듯싶습니다.
다만 줄거리의 완성도를 논하는 일은 평론가가 하면 되는 일이라 생각하여, 부끄러운 마음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분의 삶을 그리는 일에 흠집을 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한 윤동주는 일본 제국이 패망하기 반 년 전에 옥사한-그것도 한국과 가장 가까운 일본의 도시인 후쿠오카에서-사실, 시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윤동주의 '서시'만큼은 많이들 외우고 있다는 사실, 생체실험이 유력하다는 사실 덕분에 영화화되기도 좋은 소재였음에 틀림없지요.
사실 윤동주 못지않게 이육사도 영화화될 가치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윤동주에 비해 대중적이지 않다는 점, 동생인 이원조가 북한에서 활동했다는 점, 그리고 저항의 면모가 윤동주보다 보다 직설적이었고 문체에도 드러나있다는 점 등이 영화화에 있어 윤동주가 먼저 낙점받은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동주'가 저에게도 좋았던 이유는 물론 윤동주를 좋아하기도 하기 때문이지만, 영화에는 몇 가지 우리가 간과했던 포인트들이 잘 드러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송몽규.
어렸을 때 읽었던 윤동주의 위인전에서 윤동주와 항상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다만 국어 교과서에는 송몽규라는 이름이 나올 이유가 그다지 없지요. 그래서 오랫동안 저의 뇌리에서도 잊혀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 전체에서 주인공이 송몽규, 관찰자가 윤동주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윤동주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북간도
사실 우리가 읽는 윤동주의 시는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 후배인 故 정병욱 서울대 교수에 의해 (표준어로) 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글말로는 표준어를 쓰지만, 각자 지내는 지역과 언중의 차이에 의해 사실은 많은 경우 입말로 이야기하고, 또 입말로 생각하지요. 윤동주는 함경도 사투리를 썼기 때문에 시의 많은 부분도 함경도 사투리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만약 '동주'에서 윤동주와 송몽규가 표준어로 이야기했다면 굉장히 어색했을 듯합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관객들의 이해를 위해 표준어로 개작된 작품을 읽고, 경성 생활 후의 윤동주는 서울말을 구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윤동주의 정체성 중 하나일 북간도 출신이라는 점이 영화에서 자연스레 드러난다는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혹자는 '함경도 사투리를 이렇게 맛깔나게 들을 수 있는 영화를 오랜만에 만났다'라고 하더군요.
유학생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인 쿠미 양은 가공의 인물이지만, 윤동주가 잘생겨서 인기가 많았다는 기록은 있지요.
사실 문화통치를 실시하던 1930년대, 그리고 해방 직전이던 1940년대의 조선 분위기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고 합니다.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이 사실상 지리멸렬해지고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이 오히려 활발했던 모습도 있었고, 1940년대에 이르면 어린 아이들은 '우리나라가 일본'이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하지요. 게다가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이 시점에 이르면 조선 출신 일본인 2세들도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 부모 세대가 일본의 식민통치 수단으로서 조선에 이민을 온 것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우리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사회였고 칼로 무 썰듯이 '일본은 가해자, 그러니까 일본인도 가해자'라고 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오히려 일본에도 전쟁을 반대했던 양심있는 학자들이 있었던 것을 본다면, 국가주의적인 집단광기에 의해 힘없는 민중들은 오히려 서로를 적대시한 채 싸우게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송몽규처럼 사회주의에 경도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그런 점에서 윤동주의 시, 윤동주가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조용하고 나지막하지만 힘있는 목소리에 끌린 쿠미가 '조선어를 하지 못해 안타깝다'라고 말하는 점은 굉장히 가슴울리는 대사였습니다.
(영화 '암살'에서 미츠코의 약혼자였던 카와구치가 조선어를 못해서 구박받는다고 이야기하는 장면과는 비슷한 말이지만 정반대로 들리는 말이기도 했지요.)
윤동주가 옥중에서 심문을 받으면서 시를 쓴 것에 대해 언급했던 장면이 찡합니다.
엄혹한 시대를 벗어나려 시를 쓰면서도 송몽규처럼 적극적이지는 못했던 탓이겠죠.
그 피 위에서 시를 따뜻하게 감상하며 읊조리는 우리가 시를 읊을 자격이 되는 것인지 반성하게 됩니다.
시대는 지났고 해방은 왔으나 윤동주의 고향 땅을 우리는 냉전이 끝나기 전까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기차만 타고는 갈 수는 없는 땅입니다.
그런 면에서 윤동주의 참회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조선의 사람들이 해야 할 참회이기도 할 것입니다.
게다가 저 또한 윤동주가 영화 속에서 시를 읊조리던 후쿠오카의 밤하늘을 여행지에서 너무도 당당하게 쳐다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후쿠오카뿐만 아니라 이우 공과 많은 조선인들이 원폭의 희생자가 되었던 장소인 나가사키, 히로시마, 그리고 오사카, 북해도, 그리고 많은 일본의 도시들에서 말이지요.
일본 하늘에서도 마음껏 웃을 수 있다는 점과, 너무 마음껏 웃어제꼈던 점이 감사와 죄송함을 같이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일을 원하는 세상에서 하기 위해
얼마나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나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지만, 부끄러움을 알려 하지 않는 것 같아 죄스런 마음이 듭니다.
글을 다 쓰고 나니,
너무 쉽게 쓰지 않았나 싶네요.
영화에 자주 나오는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를 나지막히 글과 함께 써내려가며 매듭짓고자 합니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은 최초의 악수.
- 쉽게 쓰여진 시 -
영화 감사하게 잘 보았습니다.
201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