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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SOOOP Aug 13. 2022

어느 날(Some Days) 섬에서

지성배 전시 _ 비평글

                                 

어느 (Some Days) 섬에서 어느 (Some Days) 섬에서                 

                                                                                         백기영(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2022년 7월 12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는 100억 달러(약 13조원)를 투자해 개발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가 찍은 사진들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별의 요람’이나 ‘은하들의 춤’등 우주의 경이로운 모습이 담겨 있었다. 멀리 떨어진 별에서 나온 빛은 우주를 가로질러 지구에 도달하는 데 몇 년이 걸릴 수 있기에, 이 망원경은 몇 년 전의 빛을 관측하게 된다. 따라서 초기 우주의 별에서 나온 빛은 수십억 년의 시간 후에 도달한 것이다. NASA는 이 망원경을 통하여 138억 년 전 빅뱅이 일어났던 초기 우주의 상태를 관측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사진을 통해서 관측된 ‘SMACS 0723’은 거대한 은하단으로 ‘중력 렌즈’ 역할을 하는데, 사진 속에 붉게 휘어진 빛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 망원경은 또한 ‘남쪽 고리 성운’, ‘스테판의 5중주 소은하군’, ‘용골자리 성운’등 그동안 허블 망원경을 통해서 30년간 보아왔던 것의 100배 더 선명한 사진들을 보내왔다. 요 며칠 천문학자들은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우주의 빛을 담은 사진이 도달할 때마다 경탄에 찬 분석 기사들을 써내고 있다.      


이처럼 인류는 흑암 속에서 오랜 시간을 달려온 빛을 카메라에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 빛은 기나긴 시간 이 망원경의 렌즈를 만나게 될 것으로 예측이나 했을까? 우주가 생겨나던 시기에 발생한 빛을 포착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최초에 사진을 발명했던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나 나다르(Nadar) 같은 사진가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어떤 날 유령처럼 갑자기 사진의 이미지가 인화지 표면에 등장하는 것을 목격했다. 다게르는 사진의 은도금 동판에 요오드 용액을 발라 감광막이 생긴 표면 위에 카메라로 촬영한 뒤 가열하여 수은에서 발생하는 증기에 쫴서 이미지를 얻었는데, 1839년에 만들어진 이 사진 기법은 그의 이름을 따라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이라 부른다. 미술사가 로잘린 클라우스(Rosalind Krauss)는 그녀의 미술비평서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에서 초기 사진가들이 이 사진의 자국을 심령학적 사건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임종 사진 이외에는 초상사진을 찍지 않았던 나다르는 사진을 찍으면 영혼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다고 믿었던 대표적인 사진가였다.      


이처럼 사진은 작가의 손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된 회화나 조각과 달리 기계적이고 화학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미지를 얻는다. 이 과정은 기다림의 시간이면서 동시에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막연한 암중모색을 감행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 때문에 모든 사진은 흑암의 하늘을 바라보며 아직, 미처 도래하지 못한 빛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제작된다. 이런 행동은 장 뤽 낭시(Jean-Luc Nancy)가 말한 것처럼 '동시대적'이다. 미술사가 테리 스미스(Terry Smith)가 『컨템포러리 아트란 무엇인가?』에서 '동시대성'의 문제에 대해서 내렸던 결론과도 연결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시간과 함께 하는 것'이고 동시에 '시간 바깥에 있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역사 이후나 너머의 상태에 유예된 것이면서 과거나 미래의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상황에 있는 상태를 주목하게 된다.      



여수 진섬으로 불리는 장도라는 섬이 있다. 2~3일을 주기로 물이 차고 빠지는 곳이라서 장도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미리 물 때를 확인하고 진섬다리를 건너야 한다. 섬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들어오는 물과 나가는 물을 기다리는 장치가 된다. 들어오고 나가는 빛을 기다리는 것이 카메라의 운명인 것처럼, 물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섬의 운명이다. 그런 장도에는 예울마루가 운영하는 창작스튜디오가 있다.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가 설계한 전시공간이기도 한 이곳에 지성배가 4개월간 입주하면서 작업하고 개인전《섬; 데이즈(Some Days)》를 열었다. 장도는 지성배의 사진을 많이 닮았다. 전시장을 둘러친 그의 사진들은 이곳에서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만난 것들이다. 작가는 이 섬에서 어떤 하루를 기다리고 기대했을까? 전시 기간 중 어떤 여름이 섬 언저리를 차고 올랐다 빠지고 있었다. 무더운 바람이 휘몰아치고 난 뒤에는 선선한 산들바람이 고요하고 어두운 밤을 몰고 올 것이었다.      


이 전시에 출품한 지성배의 작업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 첫 번째 작업은 진섬다리를 건너다보면 다리 표면 위에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서 파놓은 동그란 시멘트 바닥 홈을 만나게 되는데, 이 둥근 홈을 촬영한 사진이다. 시멘트 홈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에 닳기도 하고 바닷물에 쓸려서 마모된다. 사진을 보면, 마치 우주에 떠 있는 행성의 모습처럼 보인다. 사진을 찍은 시기에 따라 어떤 행성은 소금 결정이 찍히기도 하고 어떤 행성의 분화구는 여기저기 심하게 떨어져 나가 형체를 분간하기 어렵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1609년 네덜란드에서 발명되었던 3배율짜리 망원경을 개조하여 훗날 30배율 정도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그 수준이 오늘날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사용하는 망원경만도 못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 낮은 배율의 망원경으로 목성을 관측했고 목성 주의를 도는 위성들도 찾아냈다. 이를 통해서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일 수도 있다는 가설이 생겨난 것이다. 마모된 시멘트 홀의 흔적은 아이러니하게도 갈릴레이가 매일 관측했던 천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갈릴레이의 천체관측이 인류에게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초래했다면, 지금 이 섬에서 사진가가 목도하고 있는 이 흔적 사진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두 번째 작업 시리즈는 오래된 필름을 가지고 태양 빛에 일정 기간 노출해서 만든 흑백 사진이다. 디지털카메라의 발명과 함께 이제는 거의 사라져 버린 필름 카메라를 활용해서 찍은 사진이다. 필름이 오래되면 장시간 빛의 노출에도 반응이 약해진다고 한다. 이 필름은 더 시간이 지나면 어떤 빛에도 반응하지 못하는 별의 죽음과 같은 상태에 도달한다. 사진의 표면에는 어렴풋하게 'KODAK'이라는 상표가 보인다. 흑암의 상태에서 필름이 만났던 흔적은 자기가 제조된 회사의 상품로고라는 것이 의아했다. 사진의 표면은 거칠고 군데군데 검버섯처럼 얼룩져 있다. 고르게 형성되었던 감광막은 시간이 지나면서 불규칙한 상태로 뒤섞여 빛을 마주할 때 굴절되고 왜곡된 상에 간여한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의 사진 일부에서 나타나는 일부 은하들이 휘어져 보이는 현상이 중력 렌즈에 의해서 나타난다고 하는데, 수 억 년 멀리 떨어진 별에서 오는 빛이 만나게 되는 우여곡절을 우리가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알 수 없기로 치면 이 오래된 필름 뭉치 안에서 지난 20여 년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마찬가지다. 이 필름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화학적 변형이 발생했다. 나다르가 초기 사진의 발명에서 경험했던 신비적이고 심령학적인 유령의 장난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찍은 사진은 장도와 여수 주변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섬들을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들은 유난히 고요하고 한적해 보인다. 섬들은 묵묵히 바다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표정이 하도 무심해서 섬인지 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고 있으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또 그것들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하나씩 설명하는 방식으로 나의 인식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 바다 사진들은 여러 개로 나뉘어 있지만, 마치 하나로 연결된 것 같고 섬에 있는 전시장 안에 있지만 마치 섬 바깥의 바다와 연결된 것 같다. 한반도 남도의 다도해 연안에는 이렇게 크고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모여서 산다. 어느 날 또 다른 누군가가 이곳에 머물며 작업하고 커피를 마시며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고 또 그것들을 기억하면서 글을 남기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만남이 차올랐다가 빠져나가듯이 이 섬은 그렇게 세월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작가가 남도의 자연에서 배우고 기록하며 우연의 순간들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와 신비로운 사건을 남기고 사라질 것을 기다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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