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풀기 힘들어 하는 아이를 위한 그림책
<코딱지 코지>
작가 허정윤 /출판주니어
코딱지를 의인화한 코믹한 내용이 재미있는 그림책이다. 아이들이 똥 이야기 다음으로 좋아하는 코딱지 코지를 클레이로 만들었는데, 언뜻 보면 애니메이션 캐릭터 애벌레 ‘라바’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 코딱지 ‘코지’는 콧구멍 깊은 곳, 코 털 숲에 살고 있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국에 작은 인간 걸리버처럼 주인공 코딱지는 끈적이는 콧물과 코털의 정글 속에 살고 있다. 콧구멍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바깥세상 불빛만 바라보면서 호기심만 키워온 코지.
어느 날 코지는 오른쪽 콧구멍에서 코지가 사는 왼쪽 콧구멍으로 놀러온 코딱지 친구 코비에게 바깥세상 이야기를 듣는다. 코비에 증언에 따르면, 콧구멍 밖은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고 달콤한 사탕과 아이스크림이 산처럼 쌓여 있는 환상적인 곳이다. 코지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보금자리인 콧구멍을 떠나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기란 마음처럼 쉽지 않다. 코지와 코비는 서영이의 손가락을 불러 콧구멍을 탈출하기 위해 코털을 힘껏 잡아당기고, 콧속을 간질이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계속해서 노력하는 코지와 코비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인상적으로 다가갈 듯싶다.
코지가 음식 냄새를 맡고 킁킁대거나 밖으로 나가기 전에 깨끗이 목욕하는 장면 등의 익살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종이를 하나하나 오려 거대한 코털 숲을 완성했다. 그림책의 실감이 한 편의 애니메이션과 흡사하다.
엄마 코딱지 맛 젤리 사주셔요.
“너 자꾸 코를 후빌래?” 이렇게 아이를 혼낸 경험이 부모라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도대체 아이들은 왜 아무 데서나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는 것일까?
연세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가 펴낸 “0세부터 6세 부모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부제를 단 <신의진의 아이 심리백과>를 읽다 보면, 2세 아이들의 주요한 발달 과제는 ‘자아 발달’이라고 한다. 이 시기 아이들은 자기의 인식을 바탕으로 주변 사물을 탐색하고 그것이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지 아닌지를 늘 실험한다. 이 탐색을 주변 사물뿐 아니라 자기 몸에 모든 것을 만지고, 핥고, 빨고, 먹기까지 한다.
여기서 아이들에게 자아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인데, 이때부터 아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일상어가 “싫어”, “아니야”다.
니글이도 2살 무렵 “아니야”란 말을 자주 했다. 더러운 거를 만지거나 주워 먹으려 하면, 평상시엔 “에비! 그럼 안돼요”하면 움직임을 멈췄는데, 내가 뭐라 거나 말거나 진행 중이던 말썽을 멈추지 않았다. 살아있는 시한폭탄 같은 26개월 니글이.
내가 뭐 라든 만져 보고, 먹어 보고, 뛰어 내리고 마구 씹고 뱉고 싸고, 말 그대로 살아 잇는 폭탄 같았다. 짭쪼름하고 달짝 달짝 비릿한 2살 우리 채영이 영양 간식인 코딱지 파기는 주로 엄마의 시야를 등진 소파와 냉장고 틈새나 뒷 베란다 세탁기 옆 등지에서 시술(?)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환절기에 비염 끝에 건조해진 딸아이에 콧구멍에 둥지를 틀은 코딱지 중에 제법 크기가 실한 것은 횟집 서비스 ‘스키다시’로 나오는 퍼러둥둥한 소라 똥 딱지만하다. 그날도 니글이는 제 코딱지를 파서 먹는 재미에 푹 빠져 무아지경이다.
10살인 현재도 코딱지 먹는 재미를 포기하지 못한 니글이는 <코딱지 코지>란 그림책을 함께 읽다가 이번 여름 방학에 일본에 가서 ‘슈퍼맨이 돌아왔다’란 예능프로에서 추 사랑이 먹은 ‘코딱지 맛 젤리’와 ‘귀지 맛 사탕’을 꼭 먹어 보고 싶다고 조른다.
코딱지를 잘 파려면 기술이 필요하거든. 콧구멍 가까운데 있는 코딱지는 딱딱하게 굳어서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긁어서 천천히 떼어 내야 해. 엄마, 근데 콧구멍 깊숙이 있는 코는 딱지가 아니라 콧물하고 코가 덩어리로 뭉쳐 있어서 이거 이 두 번째 손가락 검지로 깊숙이 천천히 밀어 넣고 손가락 끈에 힘을 빼고 끈끈한 부분을 낙지 빨판처럼 척 처억 붙여 당겨야해, 이 때 숨을 쉬면 안 돼, 움직여도 안 되고, 잘못하면 쏙 중간에서 끊어지거든.
너무 딱딱한 코딱지는 물을 살살 바르거나 침을 발라서 말랑말랑하게 해야 잘 팔 수 있어,
나는 왜 더럽게 코딱지를 손가락으로 후벼 파는데,
간질간질하고 답답하니깐 파야지
그냥 휴지로 코를 풀면 되잖아
아이 참, 엄마 그게 얼마나 답답한데, 손가락을 넣어 파야 시원하고 손가락에 동굴동굴 말아서 소파 옆이나 침대 모서리에 붙이면 그거 알아 뿌듯뿌듯 농부가 추수하고 쌀알을 바라보는 기분 같잖아.
<코딱지 코지>란 책을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우리 니글이 말고도 많은 아이들이 코딱지 파기를 즐기는 게 이해가 됐다. 최근 오스트리아의 폐 전문의 프리드리히 비스친거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코딱지를 먹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건강하고 행복할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는 “손가락으로 코를 파는 행동은 손수건으로는 닦을 수 없는 곳까지 들어갈 수 있어 콧속을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서 “코는 박테리아를 거르는 필터 역할을 하며 이물질들이 소화기관이나 장에 들어올 경우 면역 강화제와 같은 작용을 하기 때문에 코에서 빼낸 마른 코딱지를 먹는 것은 인체의 면역 체계가 자연적으로 강화되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코를 파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이를 더럽다고 여기게 되는 것은 어렸을 적 부모가 그렇게 교육했기 때문”이라면서 “코를 파는 것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 한다.
<코딱지 코지>를 읽히며, 코 풀기 놀이 완성
흥! 흥 해요. 콧물 팡! 달리기 시합해볼까
나는 비위가 약한 편이다. 비린내 나는 음식은 질색이고, 노린내 나는 고기도 못 먹는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내 새끼 몸에서 나는 냄새나 분비물은 전혀 더럽지 않다.
신생아 때 콧물감기로 누런 것이 콧구멍을 막으니 답답하다고 칭얼거리는데, 너무 어려서 스스로 코를 풀지 못 했다. 보드라운 가제 수건으로 연신 콧물을 닦아 코끝이 헐었다. 빨갛게 헐어서 딱지까지 앉은 면봉머리 크기의 콧구멍에서 콧물은 물처럼 흘렀다. 스스로 코를 풀지 못할 땐 코가 막혀 입으로 거친 숨을 쉬었다. 코가 막히면 여지없어 39도 이상의 고열이 나면 응급실을 가야 한다. 남들은 비위 상한다고 하지만 그럴 때 난 콧물 흡입기를 쓰는 대신 아이의 콧물을 입으로 빨아 뱉는다.
처음엔 질색을 하지만 콧속이 시원해지면 방실방실 웃으며 옹알이도 한다. 니글이가 8살 때 장염에 걸려 자면서도 토한 적이 있다. 누워서 토하면 기도가 막혀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재우는데, 잠결에 맑은 토사물을 내 얼굴에 왈칵 토한 적이 있다. 뜨끈한 액체가 내 얼굴을 덮었다. 아이가 미안해하며 울었다. 원체 보리차밖에 먹은 게 없어서 토사물은 그냥 물과 같았다. 난 그때도 지금도 내 새끼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이 더럽지 않다. 난 정말이지 늦둥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똥도 이쁘고 방구 냄새도 고소하고 가히 병적이다. 유아들은 코를 스스로 푸는 것을 못 한다.
“자 우리 코 팡하자~”
“시러 시러 코 아야해”
“엄마 따라 해봐”
나는 검지 손가락을 오른쪽 콧구멍에 대고 왼쪽 코를 세게 푸는 척한다. 올해 세 살인 딸은 못 본 척하며 샴푸를 부어 바가지에 거품 셰이크를 만들고 뒤통수를 보이며 고개를 젓는다.
“자 봐봐. 코를 세게 풀어서 코딱지를 욕실 거울에 한쪽씩 붙여. 그럼 엄마가 샤워기로 물을 뿌릴게. 자 발사!”
니글이가 신이 나서 요이땅하며 내가 엄지 손가락으로 왼쪽 콧구멍을 막고 니글이 오른쪽 귀를 막는다. 아이는 안면근육을 고슴도치 가시 세우듯 똘똘 뭉쳐 콧구멍 주위로 모았다. 냅다 힘을 모아 팽
초록색으로 응고된 코딱지가 휙 날아 누우렇고 찐득한 콧물주머니를 달고 희뿌옇게 김 서린 욕실 유리창에 착 붙는다. 이번 건 제법 알찬 코탱아리다
반대편 코딱지 장전 발사
살짝 핏기 비친 퍼런 코딱지가 신데렐라 스티커 위로 척 붙고
엄마 빨리, 소리와 함께,
“채영이는 누구 할래”
“신데렐라!”
“그럼 엄마는 백설공주다”
건조한 코딱지는 샤워기 물을 가볍게 뿌려주자 순식간에 흘러내린다.
거울을 타고 하얀 타일 다섯 칸을 지나 욕조 바깥타일을 건너고 미끄러진다. 채영이 이겨라 채영이 이겨라, 코딱지 꼬리는 빛의 속도로 미끄러져 하수구로 미끌, 풍덩.
오늘도 코팡 놀이 한판은 채영이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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