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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말하는 우리 아이 대응법

"공룡거북이깜찍이니글이 걸지게 욕을 배우다  

"한입만 그냥 꿀떡하면 된다니까, 니글이 이리 안 올래!” 이제 다섯 살 니글이가 감기약을 안 먹겠다고 입을 앙 다물고 섰다. 이렇게 나온다면 힘으로 제압해서 약을 한입에 털어놓을밖에 달아나는 아이 뒷목을 나꿔챘다. 아이 겨드랑이에 한 손을 두르고 턱을 찍어 눌러 약을 먹였다. '앙!'하고 터진 울음과 함께 아이가 숨을 들이키자 입안에서 가글하듯 가르릉거리던 시럽이 펌프질하던 마중말 가라앉듯 아이의 목젖밑으로 사라졌다

"유레카!" 역시 나는 아이 약 먹이기에 고수다, 쓰디쓴 약을 강제로 삼키다 사레가 들은 니글이는 캑캑거리며 울다가 나를 돌아보며 "엄마, 찐빤 년이"하고 독을 잔뜩 품고 소리를 지렀다. 헉!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지만, 벌겋게 상기 된 아이 얼굴을 보니, 잘못 들은 건 아니었다. 무슨 18년이란 비속어가 분명했다.

니글이는 자기도 모르게 입밖으로 튀어나온 미운 말에 엄마가 당황해하자,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가며 배시시 웃는데 묘한 쾌감을 느끼는 듯 의기양양했다. 얼마 후 상황을 파악하느라 표정 관리를 하는 엄마의 안색을 살피다, 이거 큰일났다 싶었는지 맨발의 찰진 발자국 소리를 내며 후닥닥 자기 방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간다.

지난번에도 오줌을 함바지게 패브릭 소파 위에 싸놓고 얼결에 기어들어간 침대 밑에서 몸을 돌려 기어 나오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서 남편 나 큰딸 셋이 침대를 통째로 들어 꺼낸 적이 있다. 큰딸 미니 토끼 키울 때도 장롱밑으로 숨는다고 들어간 토끼가 니글이처럼 뒷걸음질을 치지 못하고 장롱밑에서 울어서 고양이를 침투시켜 꺼낸 적이 있다. 토끼는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길어 후진이 안된다 치고 니글이가 후진을 못하는 건 암만 생각해도 웃기다.

오늘은 남편도 퇴근 전이고 큰 딸도 없으니 침대를 들어서 꺼낼 수는 없다. 낯패다 싶어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업드려 니글이와 눈 높이를 맞추어 사아살 유인했다. "니글이 뭐하니? 거긴 왜 들어갔는데? 이리 나와. 거기 먼지 많이 지지야.” "그러자 "씨쩌! 씨져, 엄마 화나면 무서워 앙가 안가."

아마도 아까 나한테 한 말이 나쁜 말인지 알기는 하는 거 같은데, 오늘 이 순간을 어떻게 넘기냐에 따라 내 아이의 순수한 언어 생활을 오염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니 흥분을 가라앉히고, 꼼수를 써야 한단 무지하게 이성적인 판단이 섰다.

“3세 5세 유아는 언어의 다양한 역할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비속어, 반어법, 비유 거짓말등을 접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는 과정에서 언어뿐 아니라 다양한 감정과 표현이 담긴 언어적 수사를 받아 들인다”고 한다. 또한 이러는 과정에 기억에 저장된 단어들을 마치 공굴리기 놀이하듯 반복해 자기 언어화한다.”는 유아 심리 이론을 떠올리고, 내가 오늘 아이의 욕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나쁜 말을 주워 맛있게 곱씹을 니글이의 언화 예절을 위해 참고 달래기로 했다.

최대한 부드럽고 달근달근하게 마릉 건넸다. “니글이가 엄마한테 무슨 나쁜 말을 했는데? 엄마 못 들었는데? 아까 뭐라고 했는데." 열 살이 된 지금은 엄마의 화나지 않은 척하는 연기를 간파하지만 그땐 통했다.

니글이가 개미만한 목소리로 " 아까... 엄마, 찌인...빨년"이라고" "아하,그 말 나쁜 말 아닌데 어디서 그런 말 나쁜 말이고 들었어?”하자, "천사 놀이방....." 이라고 한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놀이방에서 일곱 살 언니, 오빠들이 하는 말을 흉내낸 거 같다. 난 다섯 살 니글이가 뭔지 의미는 몰라도 비속어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인 된소리와 거센소리를 섞어 조합한 욕설에 매력에 빠질까 봐 늘 조심스러웠다. 사춘기 큰 딸이 니글이가 세 살 때 엄마에게 반항하느라고, 엄지 손가락을 들면 엄마를 향해 “됐거던!”. 두번째 손가락은 “헐!”, 세 번째는 “대박!” 이렇게 연습시킨 뒤 내가 뭐라고 하면, 둘 만의 수신호로 자신을 대신해 니글이가 나에게 덤비게(?) 했던 적이 있다. 그 후로 한 동안 “니글아 우유 먹자! 하면 배실배실 웃으면 “됐거던!”하는 걸 못하게 하느라 난감했는데, 이번에 제법 찰진 비속어를 습득한 듯.....

나는 이렇게 뜻은 모르지만 어감이 쎄고 듣기에 불쾌한 비속어의 속성을 내 딸이 영혼을 다해 흡입하기 전에 더 강렬한 언어를 기억 창고에 저장하기로 했다. "이리 나와, 엄마가 손 뻗으면 엄마 손 꼬옥 잡아 거기서 꺼내 줄게. 괜찮아, 니글이 한 말 미운 말 아니야. 엄마 화 안 났어“. 그러자 니글이가 "아냐 아니야 지민이가 그 말해서 원장 선생님 얼굴 빨개지고 언니 울었어." "아니라구 엄마가 더 나쁜 말 가르쳐 줄까? 공룡, 깜찍이, 거북이토끼 이런 말이 나쁜 말이거든" , “진짜? 아까 한 말 나쁜 말 아이야?" 어느틈에 경계를 낮추고 되묻는다. "진짜라니깐 그 말보다 나쁜 말이 공룡, 깜찍이, 토끼야 그런 말 하면 그땐 맴맴한다고.

“엄마 거짓말쟁이 그림책엔 온통 토끼 공룡 이야긴데?” 헉, 이제 니글이도 생각을 한다 싶어, 잠시 당황했지만, “그니깐, 사람에게 하면 안 돼지, 사람한테 하면 나쁜 말이잖아, 절대로 하면 인된다니깐" 순간 니글이 눈빛에 호기심과 장난끼가 절반쯤 버무려지면서 아까 찐빨년 할때보다 자신있는 목소리로 "엄마 공룡"한다.

나는 니글이가 내가 던진 미끼를 물었다 싶어 속으로 기뻐하며, 안 그런 척 "니글이 안돼! 미운 말 엄마 공룡이라고 사람한테 하면 안 된다 그랬지!"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인상을 썼다. 그러자 니글이가 다시 아까보다 큰 톤으로 " 엄마는 깜찍이야!" 한다, 나는 이때다 싶어

"너 이놈! 이리 나와 맴매하자, 엄마가 그런 말 하면 안된다 했는데," 아까와 달리 정색을 하고 화를 내자 아이는 겁이 나서 “와앙”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깜짝 놀란 나는 여자 헐크처럼 킹사이즈 침대를 번쩍 들어 아이를 구조(?)해 냈고 아이는 자면서도 ‘공룡, 깜찍이’란 낱말을 웅얼거리며 잘못했다고 잠꼬대를 했다.

한달쯤 지났을까, 놀이방 원장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어머니 요즘 채영이(니글이 원래 이름)가 아이들에게 화를 낼 때, 이상한 말을 하네요. 지켜 보다 걱정이 돼서 전화를 드렸어요.”

안 그래도 요 며칠 놀이방 가기 싫다고 떼를 쓰던 게 생각나, 니글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물었다. 원장임은 “그게, 아이들하고 놀다가 자기 맘대로 안되면 벌떡 일어나, 허리에 뒷짐을 지고 배를 쑥 내민 다음 얼굴이 시벌개지도록 소리를 지르는데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다 피하고 울어요. 혹시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걱정돼서 전화드려요."

" 아니요, 아무 일도 없는데요, 근데 채영이가 뭐라고 하면서 화를 내는데요?"

원장선생님은 깔깔거리고 웃으며 " 별말은 아니고 공룡, 거북이, 깜찍이, 토끼란 단어를 어금니에 힘주고 어찌나 옴팡지게 뱉어내는지 애들이 다 무섭다고 피해서 요즘 놀이방에서 바깥 놀이 못 내보내고 원장실에서 낮잠을 재워요.” .~

나는 전화를 끊고 눈물이 쏙 빠지게 웃다가 옆구리에 담이 들어 한동안 방바닥을 굴렀다.

늦동이 니글이는 일곱 살까지 자기만의 비속어를 즐기며 스스로 고립을 자처한 정신적 승리법 으로 친구 없이 놀이방을 졸업하고 유치원으로 진학했다. 물론 그 후론 엄마의 거짓말을 알아챈 듯, 다시는 자신만의 비속어를 포기했다. 요즘은 복화술을 하는 듯 화가 나면 혼자서 중얼거리는데, 강한 비트의 된소리와 거센소리가 섞인 언어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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