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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어송라이터 김종현의 <한숨>이 주는 치유

작자 미상 사설시조 <한숨아 세한숨아>

             

 어릴 때 나는 구박덩어리였다. 엄마는 고된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어디든 풀 대상이 필요했고 그 때마다 나는 엄마가 싫어하는 <복나간다 3종 세트>를 하다가 매를 벌었다. 어떤 날은  다리 떨기, 문지방 밟고 다니기, 한숨 쉬기를 도합 3가지를 한꺼번에 하다 김치를 버무리던 시뻘건 고무장갑으로 죽탱이를 맞은 일도 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게 된다. 다리야 발바닥을 바닥에 딱 붙이고 힘을 주고 있으면 견딜만하다. 문지방도 방안에만 있으면 안 밟고 다닐 수 있다. 근데 이 한숨은 숨 쉬는 동작 중에 하나라, 숨을 참아야 참아지는 거다.  한숨이 나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숨을 쪼개서 찔끔 거리다 쉬다가 죽을 뻔한 적도 있다.

 여자가 한숨을 쉬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관용어가 있단다. 한숨은 “근심이나 설움이 있을 때, 또는 긴장하였다가 안도할 때 길게 몰아서 내쉬는 숨”을 말한다. 하긴 8살 여자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한숨을 내쉬는 게 이뻐 보이진 않았을 거다. 엄마 입장에서 보면 안 그래도 사는 게 녹록치 않은데, 8살 기집애가 한숨을 땅이 꺼져라 쉬니 억장이 무너졌을 거 같다.

 “한숨이 나와서 한숨을 쉬는데, 너는 왜 한숨을 쉬냐고 하면 저는 어쩌라구요!”하고 야무지게 말대구도 못하고, 엄마 눈에 안 띄게 숨을 고르던 내 유년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사설시조 <한숨아 세한숨아>를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우면서 시적화자의 정서에 나는 격하게 공감했다.     

 한숨아 세한숨아 네 어느 틈으로 드러온다

고미장지 세살장지 가로닫이 여닫이에 암돌쩌귀 수돌쩌귀 배목걸쇠 뚝닥 박고 용거북 자물쇠로 수기수기 채웠는데, 병풍(屛風)이라 덜걱 접은 족자(簇子)이라 데데굴 만다 네 어느 틈으로 드러온다

어인지 너 온 날 밤이면 잠 못 들어 하노라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 <한숨아 세한숨아>는 한숨이란 생리현상을 의인화해서 한숨에게 뭐라 뭐라 투덜댄다. 한숨 너 제발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한숨 너 온 날 밤이면 심란스러워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원망을 하는 이 사설시조를 배우고 엄마가 왜 그렇게 한숨을 쉬지 말라고 닦달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사설시조의 화자는 한숨을 막아 보려고 병풍도 치고 족자도 걸어 철통같은 바리케이트를 쳤단다. 그런데 한숨은 그 병풍을 접어 버리고 족자도 돌돌 말아 버린 다음 뻔뻔스럽게 가슴 한 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시적 화자의 애를 끓인다. 이 노래의 압권은 한숨은 원래 몸 안에서 밖으로 내보내는 건데, 이 사설시조는 한숨이 외부에서 몸 안으로 들어온다고 노래한다.

 인력으로 불가능한 근심과 걱정에서 생기는 한숨을 의인화해서 여러 가지 잠금 장치로 잠글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이 노래를 통해 슬픔마저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우리 조상들의 긍정 마인드를 엿볼 수 있어 좋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한숨을 쉬던 내 습관은 지금으로 치면 최고의 유산소 운동이다. 한숨을 쉬려면 명치 끝에서 호흡을 끌어 아주 크게 뿜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하루에 5끼를 먹고도 날씬했던 거 같다. “엄마, 그 때 나는 걱정 근심이 있어서 한숨을 쉰 게 아니라구요. 유산소 운동의 일부인 숨쉬기 운동을 한 건데, 에이 그 때 등짝에 불나도록 맞은 거 억울하다고요!”     

     




  <아름다운 청년 김종현이 우리들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   >

  


   "내가 안아 줄게요. 정말 수고했어요.  "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대학 후배가 불면증과 공황을 호소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이 저한테 정신차리고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우울증도 마음 먹기 따라서 극복할 수 있다고 그만 징징거리라고 하네요.”

 최근들어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부른다. 그만큼  흔한 질병이고 쉬 치료되지 않는 병이기에 감기에 비유한 거 같다. 감기는 극복되지 않는 질병이라고 한다. 약 먹으면 최소 일주일, 약을 안 먹으면 적어도 15일은 아파야  낫는 병이라는 감기.

  우울증과 공황이 함께 올 경우에 극도의 불안감과 호흡 곤란을 경험한다고 한다.

어릴 때 한숨 자주 쉰다고 구사리를 먹다보면 엄마 앞에서 숨을 참게 된다

침을 꼴깍 꼴깍 삼키며 숨을 참다 보면 눈 앞이 오렌지빛으로 번쩍 번쩍하고 어질거린다. 3분도 안되는 무호흡이 주는 공포도 끔찍한데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공황장애는 상상도 안 된다.

 2017년 12월 17일 유명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김종현(27) 씨가 친누나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보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때가 27세 꽃다운 청춘을 스스로 마감한 질병은 공황장애라는 질병이다.

 김종현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남긴 노래 중에 <한숨>이란 노랫말이 사설시조 <한숨아 세한숨아>와 많이 닮아있다. 샤이니의 보컬로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싱어송라이터 김종현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유언처럼 만든 노래 <한숨>을 부른 가수 이하니는 샤이니 종현의 죽음을 추모하며 인스타그램에

 “어쩌면 이 노래는 종현씨가 다른 사람들에게 듣고 싶었던 말들을 가사로 적은 곡인가봐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으며 고인을 추모했다.


 숨을 크게 쉬어봐요 당신의 가슴 양쪽이 저리게 조금은 아파올 때까지

 숨을 더 뱉어봐요 당신의 안에 남은 게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숨이 벅차올라도 괜찮아요

 아무도 그댈 탓하진 않아 가끔은 실수해도 돼

 누구든 그랬으니까

 괜찮다는 말, 말뿐인 위로지만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중략--

 당신의 한숨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정말 수고했어요     

 <한숨> 이하니  -김종현 작사/작곡


생전에 종현이 쓴 유서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나는 속에서부터 고장이 났다. 그리고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나를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가 없었다. 나는 나를 미워했다.”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그의 우울증을 성격 탓으로 돌렸고, 눈치채주기를 바랬지만 외면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된다고 애원하는 아름다운 청년 김종현은 타고난 아티스트고 싱어송라이터다. 살아 생전 가까운 이들의 위로를 받지 못한 싱어송라이터는 그의 노래로 한숨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이들을 위로해준다.      

 나는 알고 있죠

작은 한숨 내뱉기도 어려운

하루를 보냈다는 걸

--중략--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이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 줄게요.

정말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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