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황진이가 벽계수를 유혹한  시조창 4분 20초

선비들과 기녀들의 풍류 언어 정가

조선시대 중종 때  기녀 황진이는 말하는 꽃이 아니라, 시와 서, 그리고 가무에 능한 예인이다.  미모가 뛰어난 기녀도 많았을 터인데  유독 그녀의 연애사가 화려한 것은 짐작컨데 시조창이나 가곡창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학 교과서 어디에도 그녀가 노래를 잘 불렀다는 기록은 없다.

 나는 최근 퓨전 국악 오디션 프로그램 <풍류대장>을 시청하면서. 양반들과 기녀들이 즐겨 불렀다는 <정가>에 매력에 푹 빠졌다.

아름다운 여성 출연자가,  한복을 곱게 입고 정가 발성으로 가요를 부르면 막 설렌다.

드라마에서 황진이 역할을 맡은 '송혜교'가 휘영청 보름달이 뜬 누각에 앉아서

"벽계수 나으리 달도 밝은데. 랑 술 한잔해요!"

하고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노래 부르면 무조건 무조건일 거 같다. 이 시조가 창작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유혹을 뿌리치려는 남자와 유혹을 하려는 여자의 기싸움같은 이야기다


종실(宗室) 벽계수는 스스로 절조(節操)가 굳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황진이에게 유혹을 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를 쫓아버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은 진이가 걸인 분장을 한 하인을 시켜서 벽계수를 자신이 있는 누각 근처로 유인해 오도록 했다.

조선 최대의 군자로 자칭하는 벽계수는  평시조  44자에 무릎을 꿇는다

 유혹 당하지 않으려는 철벽남과 "이러구도 니가 나의 덫을 피해?"라는 잔머리 싸움은 황진이의 승!!


"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 할제 쉬어감이 어떠하리


ㅡㅡㅡ평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황진이"

 청산리에 맑는 시냇물더러  부지런히 흘러가 바다에 당도하면 다시 이곳에 못 오니, 밝은 달(명월 '황진이) 하늘 중천에 떴을 때 놀다 가라는 이 시조의 벽계수는 맑은 시냇물이기도 하고 왕실 종친 벽계수를 지칭하기도  한다.  


"선생님  말이 안되는 거 같아요.

이 시조는 모두 44자로 쓰였는데. 아무리 천천히 읽는다 해도 2분이 안되잖아요, 벽계수가 말을 타고 천천히 간다 해도 초장 15자를 읽기도 전에 500m는 더 갈 텐데.

종장까지 벽계수 귀에 들렸을까요?"


국어 시간에 왜 산수를 하냐고 혼을 내고 뒤돌아 생각하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조에 가락을 얹어 부르는 시조창이나 한시를  음률에 맞춰 부르는 정가 창법을 몰랐다.

그런데 <풍류대장>에서 거친 목으로 토해내는 판소리나 구성지게 흐드러지는 민요와는 전혀 다른 신비하고 단단한 소리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청아하고 구성진 창법으로 “조선시대 양반들이 내면 수양을 하듯 부른 스토리텔링이  메인인 가곡이다

“차분하게 소리를 내기 위해 단전에서부터 나오는 길을 열다보면 정신과 몸이 하나로 합쳐진 내면에서 울림이 전해진다는 럭셔리한 정가는 단전을 울려 두성으로 끌어올린 정제된 소리통의 메아리다

연정을 품은 노랫말에 담은 희노애락은 45자 내외의 메시지로 남정네들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한치의 흩어짐도 없이 단아한 자태로 고요하게 울리는 여인네의 모습은 마치 조지훈의 시 <승무>의 어여쁜 비구니의 복사꽃 두뺨에 흐르는 눈물처럼 애잔하다.

고운 여인네의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시조창의 백미는 비애감을 온전히 전해준다

영혼이 맑아지는 노래, 가슴이 뭉클해지는 가락에 실린 관노비 기녀의 비루한 정회는 누구의 여자도 될 수 없는 계약 연애의 노류장화인 기녀 가객들의 애절한 사랑가다

정가는 특권 계급인 사대부들의 연희 장르다

대놓고 지르지고 못하고 감정을 절제하며 부르는 시조창은 '흥'의 가락이 아닌 '한'의 멜로디가 주조를 이룬다

정가는 국악 장르 중에 상류층이 즐겨 부르던 고품격 노래라고 한다


 “판소리가 희로애락 감정을 분출하며 부르는 데 비해 정가는 절제하고  창법우로 차분하고 담담하게 정서를 녹여내는 가창이다.

 짧게는 4분에서 5분 내외의 시조창으로 황진이가 벽계수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고 가정한다면 청풍명월에 실린 그녀의 시조창은  왕족 벽계수의 심사를 흔들고도 남았으리라, 이렇게

명월이란 황진이의 기명과 벽계수란 이종숙의 별호가 밝은 달밤에 맑게 흐르는 시냇물이란 중의적 표현과 어우러져 조선 최고의 세레나데 <청산리 벽계수>가 탄생한다.

이효리의 < 텐미닛 >에서  10분만에 남자를 유혹하겠다는 강렬하고 도발적인 메시지는

"겁먹지는 마 너도 날 원해

지루했던 순간이

날 보는 순간 달라졌어

오래된 연인 그게 아니던

중요한 사실은

넌 내게 더 끌리는 걸

Just one 10 Minutes

내 것이 되는 시간"

이란 노랫말이다

뇌세적인 이효리의 춤과 매혹적인 노랫말처럼 이 시조 역시 송도 일패 기생 황진이의 기녀로서의 자신감을 직설화법으로 전하는 노래다.

시조창 4분 20초에 달리던 말머리를 돌려 황진이에게 달려간 왕족 벽계수는 10분도 못 참고 황진이의 치마폭에 얼굴을 묻었다.

노래 한 곡으로 넘어간 벽계수의 변심을 통해서  황진이는 부조리한 신분 제도에 저항한다.

진심은 진심으로 통한다. 여인의 마음을 기녀라고 얕잡아 보고, 허튼 소리하던  벽계수나  "여색에 혹함은 남자가 아니다. 듣건대 개성에 절색 진이가 있다 하나, 나 같으면 30일을 같이 살면 능히 헤어질 수 있으며, 추호도 미련을 갖지 않겠다.”라고 호언장담하였다가 그녀가 지은 <판서소세양에게 부쳐>라는 한시에 감동해서 "난 남자가 아닌거벼."하며 30일을 넘기고 버틴 소세양은 <기녀 여담>의 인물로 고전문학사에 이름을 새겼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그녀의  정가 부르는 실력이 뛰어났는지 타임머신이 있다면 조선 중종 임금 때로 한번 가 보고 싶다.

황진이는 진정한 싱어송라이터임이 분명하다. 










거문고를 타고 있던 벽계수가 명월을 처다보지 않고 말을 타고 떠나려 하는데 황진이는 시 한수로 구애를 한다. " 심중을 흔드는 시 한 수에 선비의 자존심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 사건이 화류계를 통해 퍼져나가자 황진이의 명성은 높아졌다.

작가의 이전글 싱어송라이터 김종현의 <한숨>이 주는 치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