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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여읜 부모의 슬픔

허난설헌의 <곡자>

    

단장지애 (斷腸之哀)란 고사성어가 있다.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이라는 뜻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이르는 말이다

 새끼를 잃은 어미 원숭이가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이 말과 비슷한 말로 상명지통(喪明之痛)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는 자식이 죽자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고 밤낮으로 소리쳐 울다가 눈이 멀었다고 한다. 자식의 죽음은 눈이 머는 상명(喪明)의 고통이며, 창자가 끊어지는 단장(斷腸)의 비애다.

 옛말에 자식을 앞세우는 고통을 ‘참척(慘慽)’이라고 하는데, 이는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부모상보다 애끊는 슬 자식의 죽음은  평생 가슴에 새겨진다는 말이다.

 나는 지난해 <치유의 글쓰기> 수업에서 2년 전  6살 아이를 소아암으로  잃은 40대 중반의 cf감독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마흔 다섯에 선물처럼 찾아온 늦둥이 셋째  아들은 온가족의 행복이고 사랑이었다.

 아이가 4살 되던 해에 소아암에 걸려 1년 반의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는 지난 2년간 시시때따로 마주하는 막내의 아련한 추억을 마주할 때마다 넋이 나간 듯 주저 앉아 울었다고 했다.  그의 카카오툭 프로필 사진에는 아이의 신생아 때부터의 사진과 암 병동에서 투명 중에 찍은 아이의 동영상이 빼곡이 채워져 있다. 그는 그렇게 떠난 아이의 흔적을 보듬고 웃고 울면서 하루 하루를 보낸다.

 남은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떠나간 아이의 이름인 시환이를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을 시환이아빠라고 불러 달라는 부탓하는 그는 하루라도 빨리 눈을 감아서 아이를 만나게 소원이라고 다.  2년 동안 암병동에서 고통스런 치료를 받다 세상을 떠난 금쪽같은 새끼를 잃은 그의 심정은 새끼 원숭이를 읽고 창자가 토막토막 잘려 죽은 엄마 원숭이 같았다.

 그는 최근 우연한 기회에 유튜브에서 무료로 점을 봐준다는 보살님을 만나 상담을 했다. 보살은 “아이가 아빠를 데리고 왔네, 아주 이쁜 아가네. 아빠가 자기를 지 못하고 슬픔 속에 사는 걸 걱정하다 여기까지 아빠를 데리고  왔네.”라고 했다.

 아빠가 아이를 잊지 않고 저승으로 보내주지 않는다며 보살님은 이제 그만 아이와의 인연의 끈을 놓으라고 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남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만 아이를 보내주라고,

 “아이가 아빠가 나쁜 생각할까 봐 먼저 앞장을 서서 아빠를 저에게 데리고 왔어요. 제발 아빠 좀 잡아 달라고, 아빠가 자기를 가슴에 품고 있으니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날 수가 없다고”며 정신을 차리라고 아이 아빠를 혼냈다.

 나는 무속인인 보살님의 말을 온전히 믿지 않지만, 지난 1년 동안 내가 지켜본 그는 삶을 포기한 듯 살고 있었고, 아이를 보낼 맘이 전혀 없어 보였기에 혹시라도 그가 어리석은 선택을 할까봐 걱정스럽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땅에 묻고 어린 자식을 앞 세우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자식을 앞 세운 부모의 슬픔은 시공간을 넘어 이 세상 모든 부모의 가슴에 피멍으로 남아 있는 거 같다.  

  조선 시대 여류 시인 허난설헌은 1563년(명종 18) 당대 석학인 허엽의 셋째딸로 태어나 규방가사인 <규원가>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남동생인 허균은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다.

  허난설헌은 1577년(선조 10)에 김성립과 결혼했다. 과거 시험 공부를 핑계로 기방을 들나 들며, 허난설헌을 독수공방하게 한 못난 남자 김성립은 아내인 난설헌에게 심한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양반가의 여성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 8살 때부터 천재 시인이라 칭송이 자자하던 아내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였을 것 같다. 더구나 아들보다 학문이 뛰어나다고  칭송이 자자한데다가 시를 쓰고  유교경전을 읽는 며느리가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시어머니는 허난설헌이 자기 아들을 받들지 않아서 아들이 기를 못 펴고 밖으로 나돈다며 그녀를 구박하고   냉정하게  대정하게  대했다


 게다가 심각한 고부갈등을 나 몰라라한 남편 김성립은 과거공부를 핑계 삼아 바깥으로 돌며 가정을 등한시했고, 바늘 방석에 앉은 듯, 힘겨운 시집살이를 견디기 위해 그녀는 남성 중심 사회에 파문을 던지는 시를 지으며 현실의 불행을 잊으려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중종 때 평안도에서 창궐한 역병으로 그녀는 어린 딸과 아들을 여의고 아이들의 무덤가에서 만삭의 몸으로 통곡한다.


5언 고시인 한시 <곡자>는 아이들 잃은 엄마의 피끓는 심회를 처절하게 노래하고 있다.


 <곡자(哭子)>     

지난 해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거년상애녀(去年喪愛女)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금년상애자( 今年喪愛子)            

슬프고 슬픈 광릉 땅이여.              애애광릉토(哀哀廣陵土)             

두 무덤이 마주 보고 있구나.           쌍분상대기(雙墳相對起)      

백양나무에는 으스스 바람이 일어나고   소소백양풍(蕭蕭白楊風)      

도깨비불은 숲속에서 번쩍인다.          귀화명송추(鬼火明松楸)        

지전으로 너의 혼을 부르고,              지전초여혼(紙錢招汝魂)      

너희 무덤에 술잔을 따르네.              현주존여구(玄酒存汝丘)      

아아, 너희들 남매의 혼은                응지제형혼(應知第兄魂)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으리.            야야상추유(夜夜相追遊)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종유복중해(縱有服中孩)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라리오.           안가분장성(安可糞長成)      

황대 노래를 부질없이 부르며              낭음황대사(浪吟黃坮詞)      

피눈물로 울다가 목이 메이도다.           혈읍비탄성(血泣悲呑聲)            

[출처] 허난설헌 곡자         

 


 이 노래는 허난설헌이 젊어서 일년 사이로 딸과 아들을 연이어 잃고, 아이들의의 무덤 앞에서 자식들의 명복을 빌면서 그 슬픔을 노래한 한시다. 그녀는 아이들의 무덤 앞에서 종이돈을 태우며 명복을 빌며 지은 한시다

 두 아이가 혼백만이라도 꼭 붙어 다니며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정을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해지는 한시는 극한의 슬픔과 안타까운 모정을 그렸다.

 그녀는 먼저 보낸 자식에 대한 슬픔으로 아직 낳지 않은 복중의 아기의 운명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라겠냐며 자책하는 <곡자>의 시 구절처럼 얼마 뒤에 뱃속에 아이를 유산하고 스물 일곱 살의 꽃다운 나이에  운명을 달리했다


,조선 시대에 여자로 태어나서 시 쓰기를 사랑한 그녀의 운명은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시를 짓는 며느리를 좋아하지 않는 시어머니 밑에서 고독하게 살다가 역병에 남매를 잃고, 복중 태아까지 잃은 비운의 삶을 살다가 허난설헌은 자신이 죽은 뒤 그녀가 쓴 시들을 불로 태워달라고 남동생 허균에게 부탁한 뒤 세상을 떠난다. 허균은 불행하게 살다가 누이의 유언에 따라 일부 작품은 모두 소각했지만 그녀가 친정에 보관된 누이의 시편들을 명나라 사신에게 주어 1606년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간행되었다.          자식 떠나 보낸 부모는, 망각의 두려움 때문에 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부모의 수심은 깊고 깊어 간다. 해맑게 웃는 아이의 모습과 집안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생전의 아이의 흔적을 볼 때마다 소리죽여 운다


  그렇게 떠난 아이의 빈자리를 지키는 부모에게 아이는  영원한 '부재의 형태'로 존재한다

 1930년대 모더니즘시의 대가인 김광균은 돌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아이를 그리며 <은수저>란 시를 썼다. 짐작컨대 아이는 백일 선물로 은수저를 받은 듯하다. 옛부터 아기의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백일잔치 또는 돌잔치 선물로 은수저를 주는 전통이 있어 왔다.

 이 시에서 아이가 없는 밥상 위에 은수저가 놓여 있고 아이의 방석이 있는 것을 보면, 아이는 돌잔치를 치른 뒤에 세상을 떠닌 것  같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라는 뜻으로  은수저는, 아이의 부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김광균은 저녁밥상에 주인 잃은 은수저를 통해, 아이를 그리워한다.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린다. 한밤중 들창을 오가는 바람과 들길 위에 맨발에 아기가 울면서 떠난다.

 해가 지고 산이 어둠 속에 저무는데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그리고 애기가 앉아 있던 방석엔 한쌍의 은수저가 놓여 있다. 아이를 잃은 시인의 눈물이 은수저 끝에 고인다. 먼 들길을 애기가 울면서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가는데 목 메여 불러 봐도 아이는 대답이 없고 그림자만 어른거린다는 이 시처럼 소아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린 아들을 보내지도 못하고 가슴에 품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슬픔은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너무 짧은 시간 세상에 살면서 아프다가 떠난 아이를 잊지 못하는 아니, 잊을 수 없는 그 남자는  하루 10알이 넘는 우울증 약으로   시간을 죽이며 죽지 못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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