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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로 쌓은 이별 보탑시

운초 부용에 <부용상사곡>

조선시대 기녀 운초 김부용이 쓴 한자를 피라미드처럼 쌓은 보탑시가 있다.

<부용상사곡>이다.

오지 않는 남친 기다리며 성냥탑을 쌓다가 열폭해서 다방 탁자 위에 쌓은 성냥탑에 불 붙였다 불 낼 뻔한 적은 있지만 보탑시는 써 본 적은 없다.

 옛날 성천(成川)에 한 기생이 있었는데

 

미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워 사람들은 그녀를

'부용'(芙容)이라 불렀다.그녀가 16세 되던 해 성천군에서 백일장이 열렸다.

그녀는 그 백일장에 참가하여 장원(壯元)을 차지했다.

그 당시 부사(府使)는 김이양(金履陽)으로 시를 몹시 사랑했다.   

김이양의 문학에 심취한 그녀는 백발인 그와 인연을 맺고,

15년 동안이 동고동락하며 시가(詩歌)를 나누었다.  

김이양이 늙어서 세상을 떠나자 3년상을 정성껏 치른 부용은  

세월이 흘러 죽을 때가 된 그녀는 몸을 씻은 다음,

가까운 사람을 불러서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천안 광덕리(廣德里)에 묻어 달라."

그녀가 숨을 거두자

사람들은 그녀를 천안 광덕리에 있는

김이양의 무덤 옆에 묻어 주었다.


 김이양대감이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간 뒤 그녀를 면천 시켜 소실로 삼기까지 기약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다.

그 당시 그녀가 쓴 상사의 슬픔으로

 일생 일대의 보탑시(寶塔詩) 한 편을 짓는다.

부용은 피를 토하는 듯한 애절한 시를 써서 인편으로 보낸다.

2행마다 한 글자씩 늘어나 18자 까지 되는 36행의 문자탑이다.

그녀가 김이양과

이별하고 첫 번째 쓴 글귀는 헤어짐을 뜻하는 나눌 별(別)이다. 두 번 째 글귀는 생각 사(思), 이태가 지나고 서러움이 짙어져서 님과의 길이 멀다는 로원(路遠) 두 글자로  탑을 쌓는다. 한 글자부터 밑으로 차곡 차곡 쌓아 피라미드 모양에 시탑이 완성된다

 

감당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님의 맘은 거기 있고 라는 뜻의 세 번째 탑인 ’염재피(念在彼)‘와 자신의 몸은 여기 있다는 신류자(身留玆)로 네 번째 탑을 쌓는다.  

님을 그리며 짓는 노래가락은 슬픔을 머금고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 마음에 은장도로 애간장을 끊어 죽는 건 어렵지 않은데, 비단신 끌며 언제고 데리러 오마고 기약한 님의 말을 믿고 기다리는데 의심이 깊어지니 죄스럽다는 내용을 담으며, 그녀는 18행의 노래 탑을 쌓는다.  

보고 지고 보고 지고 그리운 아버지 뻘의 정인 김이양대감과 그녀의 버거운 인연, 관노비 소속 기녀는 국가 재산이라 기적에서 빼내 김이양의 소실이 되길 바라는 건 천만부당한 일이라, 그녀는 이별시의 쓰며, 미련을 떨궈 내려고 하나 맘대로 안된 듯.


기다리는 것도 잊는 것도 그리움을 멈추는 것도 불가항력인 상사의 심회거 늘어나는 자획마다 핏방울이 되어 탑을 이룬다.

 대학 신입생 때. 첫번째 미팅에서 내 마음에 꽂힌 독서 서클 선배에게 손편지 보내고 무작정 다방에서 기다렸다. 성냥개피로 탑을 쌓다가 입김에 훅 주저 앉은 탑을 보던 망연함, 그도 아니면 다방 창가에 월계수 화분에서 잎사귀를 똑똑 떼어내며 "온다." "안 온다." "오온~. . ."하다 새빨간 하이힐 신은  다방 레지 언니한테 혼난 기억도 난다.

 운초 부용이 쓴 보탑시를 정가로 들으니 <부용상사곡>에 실은 그녀의 애절한 그리움이 물씬 내 맘 속에 스며든다.

https://youtu.be/NX5WX0Ucq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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