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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도망시>와 임영웅의 <사랑은늘 도망가>

추사 김정희의 <사처곡>"유배지에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결혼식 주례사에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 하라" 라는  구절이 있다.

 의술에  발달로  오십 전에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는 요즘 시대에 부부로 100세까지 사는 게 망령된 일이 아니다.  검은 머리카락이 하얀 파뿌리가 될라치면 새까맣게 염색을 하는 세상에  부부의 연을 끊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50세만 넘으면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는 선 시대에에 염색을 하는 게 흔치 않은 일이라  대개는 검은 머리 파뿌리처럼 하얗게 세도록 50년 해로 했을 것이다

 서울대 의대 황상익 교수는 조선시대 왕 27명의 평균 수명이 46. 1세고 조선시대 여성들의  평균 수명이 35세 정도라고 추정한다. 그래서 부부가 반백이 함께 사는 게  혼인 미션이었던 거 같다.

 현대 사회 부부는  검은 머리가 하얗게 파뿌리가 될 틈이 없다.  새치 몇 가닥만 들켜도 염색으로 새까맣게 회춘하는 요즘 세태에  파뿌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미 흰 머리가 성성한 친구들은 “드디어 파뿌리가 됐으니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며  우스개 소리를 한다. 월하노인이 자신과 남편 발목에 묶은 붉은 실을 가위로 싸뚝 자르고 혼자서 늙어 죽고 싶다는 고령의 부부도 늘어나는 추세다


 죽음이 갈라 놓을 때까지 부부의 연을 함께 하리라던 주례사가 사라진 지 오래인 요즘 '황혼 이혼'이니 '졸혼'이니 하는 새로운 결혼 트렌드도  어색하지 않고 흉이 안 된다. 


 추사 김정희가  쓴  한시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홀로 된 자신의 설움을 노래한 시다 . 이런 스타일의 한시를  <도망시>라고  한다.  <도망시>들을  읽다 보면 부부유별을 강조하던 가부장적 사회에서도   "아내 바라기'로  평생을 살던 남장네들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유배지에서 아내의 죽음이란 비보를 전해들은 들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년)는  자기를 두고 먼저 떠난 아내에 대한 슬픔을 한시로 적는다

다.

 추사 김정희의 <완당전집>권10에 실린  그의 시 ‘도망(悼亡)’이란 작품은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읊은 한시다.

 추사 김정희는   

18세기 말에 태어나서 19세기 외척 세도 정치기에 활동한 조선 예원의 마지막 불꽃 같은 존재다. 조선이 고유 문화를 꽃피운 진경시대의 세계화에 성공한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진경시대의 학문 조류인 북학 사상을 본궤도에 진입시킴으로써 조선 사회의 변화 논리에 힘을 실어준 장본인이다.


그는  극한오지의 섬인 제주도에  유배 갔을때  가시 나무(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둘 러  사면을 막고 햇빛도 들어오지 읺는 가시나무 울타리 집에서 8년 동안의   위리안치  형을 받는다. 밀폐공포증이나 공황장애가 있는 경우 심한 우울증과 정신질환으로 죽는다는 끔찍한 유배형  <위리안치>를 버티게 한 건 그의 아내의 외조다.

 열악한   유배지의 환경에서 아내의 도움으로 근근히 견디던 시절에 그린 <세한도>는극한 환경에도 절망하지 않고  선비의 덕목을 고수한 문인으로서의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으로  유명하다.

그는 제주도 유배 시기인 1842년 11월 18일 예안 이씨인 아내의 병을 걱정하며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추사가 편지를 보내기 전 아내는 그보다 5일 앞선 11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그 사실도 모르고 편지를 쓴 것이다. 추사가 아내의 부음을 들은 것은 한 달 더 지난 12월 15일이었다.



配所輓妻喪(배소만처상)​​​

귀양지에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라는 내용의 이 시는  구절을 보면 그가 얼마나 아내를 의지하고 연모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추사는 부음을 듣고 오열하며 피를 토하는 심경으로 시를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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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월하노인을 시켜 저승에 하소연하여.        

(那將月姥訟冥司 나장월노송명사)/

다음 세상에서는 당신과 내가 바꿔 태어나

(來世夫妻易地爲 내세부처역지위)/

내가 죽고 당신이 천리 밖에 살아서

(我死君生千里外 아사군생천리외)/

이 마음 이 슬픔을 당신이 알도록 했으면

(使君知我此心悲 사군지아차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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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월하노인>은  달빛 아래 노인 즉. 부부의 연을 맺어주는 중매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

월하노인은 중국 민간전설중에서 사람들의 혼인을 전문 관리하는 신으로 전해진다. 월하노인이 혼인을 맺어주는 전설은 다양한 버전으로 민간에 널리 전해지고 있다. "부생육기浮生六记)"에서는 월하노인의 모습에 대해 "한 손에는 붉은색 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혼인기록부를 들고 있으며 백발홍안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월하노인의 주머니 안에 있는 붉은 색 실로 부부가 될 사람의 발에 묶는데 아무리 멀리 살더라도 아무리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더라도 일단 실로 한번 묶으면 무 슨 일이 있더라도 맺어지게 된다는 전설 속에 인물이다

 김정희는 부부의 연을 맺어 준 노인을 만나 이 결혼 무효다, 당신이 우리 부부의 발목에 붉는 실을 묶어 평생을 해로 하라 해놓고 이리 황망하게 데려가는 건 말도 안된다고 하소연을 하고 싶다고 한다.

"살려 내라고 내 아내 돌려 달라고 책임지라"고 땡깡이라도 부리면 아내를 혹시라도  되돌려 보낼까. 하는 허망한 바람을 갖고 싶다고 울부짖는다.

그러면서 데려간다고 따라가냐고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 속에 갇혀 고독사할 것을 아내 수발로 간신히 견뎠는데, 매정하게 자기를 두고 어찌 갈 수 있냐며 이건 배신이라고 따져 묻는다. 추사 김정희의

 역지사지의 발상은 차라리 내가 죽고 당신 살아서  처절하게 버려진 내 입장이 한번 되 보라고. 내 입장이 되어 사별의 서러움을 한번 느껴 보라며 원망의 심사를 전한다

 신라 시대 고승 월명사가 요절한 누이의 죽음을 애도하며

 생사에 길이 여기 있는데.   누이 너는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났느냐?  이른 바람에 여기 저기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젊은 나이에 떠난 누이야 너가 가는 길 , 그 저승길을 나는 잘 모르고 있어 애닯구나 라고 노래한 향가는 누이가   <약수>를  건너 <무간지옥>에 갔나, 옥황상제 사시는 <광한루>에 올랐나 알고잡다는  안타까운 혈육의 마음을 노래한다.

 김정희는 <도망시>에서  아내가 간 저승길을 따라 잡을 수만 있다면 자기가 대신 죽어주고 싶다고 쓴다. 어머니를 그리는 노래를  <사모곡>이라고 한다. 이 <도망시> 처를 그리는 노래니, 사처곡(思妻曲)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

 외롭기 그지없는 귀양살이에 온갖 애를 다 써준 아내였으니, 오죽하면 ‘내가 죽고 당신이 나로 살았다면 내 심정을 알아줄 터인데’라고 비통해했을까? 이 대목에선 눈시울이 붉어진다.

추사는 경주 김씨 월성위 가문의 종손이다. 그는 유배된 뒤로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음식이 맞지 않아 아내에게 민어를 연하고 무름한 것으로 가려 사 보내 달라, 겨자도 보내 달라, 어란도 구하여 보내 달라는 등 갖은 요구를 해 하인들이 추사의 본가와 제주도를 부지런히 오가며 편지와 음식, 옷 등을 전달했다고 하니, 죽은 아내는 그에게 있어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추사는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한 뒤 풀려 집으로 돌아간다.

 

 임영웅이 트로트로 부르는  "죽은 아내를 위해 바치는 노래


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의 메인 OST였던 발라드 <사랑은 늘 도망가>는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남자가 부르는 이별 노래다.

이문세의 덤덤한 감성과 쓸쓸한 선율, 절절한 가사말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이 노래는 추억 속에 싸이월드 BGM 으로 많이 듣던  노래는  남자들이 줄겨 부르는 감성 발라드다.

 이 OST을 감성 트로트영웅이 트로트로 편곡울 해서 <신사와 아가씨>란 드라마 OST로 부른다.

<사랑은 늘 도망가>란 노랫말을 듣다 보면 이 노래가 살아서 이별이거나 죽어서 이별 같은 정황 모두 가능한 거 스토리인 거 같다.

노래를 일러 가수의 목소리로 연기하는 3분에서 4분짜리 1인 뮤지컬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리는 귀로 듣지만 멜로디로 전하는 노래는 오감으로 다가온다.  임영웅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의 노래는 속에는 드라마적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이다

  가수가 자신의 가창력을 드러내기 위해 욕심을 부르면  노랫말이 묻힌다

 다시 말해 이야기를 잘 전달 할 수 없다.

노래는 가락에 실린 이야기다. 임영웅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조에 가락을 얹은 시조창이나 한시에 음률을 실은 가곡창울 듣는 둣 평온함을 느낀다.

 열심히 부르는 걸 넘어 잘 부른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가사의 의미를 잘 살려 온몸으로 전달해야 한다. 임영웅은 고음 부분에서 악을 쓰거나 떼를 쓰는 느낌을 주지 않고도 심금을 울린다. 임영웅이 부르는 노래를 듣다 보면 노랫말 속의 주인공으로 빙의한 아티스트를 만난다.

고(故) 김광석이 원곡자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⁰는 60대 남편이 인생을 함께 살아온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는 애틋한 마음을 담은 곡이다. 임영웅은 황혼의 헤어짐을 담담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절제된 가삿말의 의미를 전달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노래를 마친  임영웅은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나온 듯 뒤돌아서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당시 마스터 노사연은  "눈물이 난다. 그 나이를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감정 표현을 잘하는 걸 보고 내 마음이 너무 흔들렸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의 OST 노랫말을 듣다 보면 추사 김정희의 <도망시>인 <配所輓妻喪 (배소만처상)>  "유배지에서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란 시가 떠오른


눈물이 난다 이 길을 걸으면

그 사람 손길이 자꾸 생각이 난다

붙잡지 못하고 가슴만 떨었지

내 아름답던 사람아

사랑이란 게 참 쓰린 거더라

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더라

이별이란 게 참 쉬운 거더라

내 잊지 못할 사람아

사랑아 왜 도망가 수줍은 아이처럼

행여 놓아버릴까 봐 꼭 움켜쥐지만

그리움이 쫓아 사랑은 늘 도망가

잠시 쉬어가면 좋을 텐데

바람이 분다 옷깃을 세워도

차가운 이별의 눈물이 차올라

잊지 못해서 가슴에 사무친

내 소중했던 사람아


지만

그리움이 쫓아 사랑은 늘 도망가

잠시 쉬어가면 좋을 텐데

기다림도 애태움도 다 버려야 하는데

무얼 찾아 이 길을 서성일까

무얼 찾아 여기 있나

눈물이 난다 이 길을 걸으면

그 사람 손길이 자꾸 생각이 난다

붙잡지 못하고 가슴만 떨었지

내 아름답던 사람아

사랑이란 게 참 쓰린 거더라

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더라

이별이란 게 참 쉬운 거더라

내 잊지 못할 사람아

--'중략-

기다림도 애태움도 다 버려야 하는데

무얼 찾아 이 길을 서성일까

무얼 찾아 여기 있나


준비하지 못한 이별이 남편 혹인 아내인 경우 그 담한 심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짐작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발도 몸도 묶여 꼼짝도 할 수 없는  <위리안치(圍籬安置)>의 유배 중에 들은 아내의  부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일 게다 거쳐야 하는 이별의 단계가 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이별의 단계를 거치는 것은  아니고 사람마다 거치는 순서도 다르지만 대개 부정, 분노, 원망, 갈망, 고뇌, 슬픔을 겪다가 결국 죽음을 수용하게 된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이란 주례사에  검은 머리가 하얀 파뿌리되는 백년해로는

요즘 세상에 덕담이 아니다.  이미 흰 머리가 성성한 친구들은 “드디어 파뿌리가 됐으니 이제 결혼 생활 졸업해도 되겠다”는  농담을

한 뒤에  배꼽 잡고  웃을 정도로  결혼 풍속도 달라졌다


<도망시>에서 도는 '슬퍼할 도'에 '망할 망'을 쓴다.

유배지에있는 남편 뒷바라지를 하던 중 을 얻은 아내는 불후한 처지의 남편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지 못했으리라. 심부름을 오고 가는 하인들 입단속까지 시키면서 고통 속에서 죽어간 아내를 그리워하며  추사 김정희가 쓴 이 시에는 차마 적지 못한 말이 생략되어 있다.

"여보. 미안하오. 그리고 정말로 고마웠소, 사랑하오 내 곧 따라 가리니,  기다려 주오.

남들 앞에선 강직하고 의연한 문사 김정희에게 아내와의 사별은 망할 놈의 슬픔이었던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누구라도 감당하기 힘든  운명의 장난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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