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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가 났네. 절세 미인 한우와 임제의 겨울 밤

화답시 <북창이 맑다커늘>과 <어이 얼어 자리>

내가 리즈 시절 노래방에서 부르는 <프로포즈 송>에 1위곡은  남성 듀오 '유리상자' 2001년에 발표한 <사랑해도 될까요>다.


조심 스럽게 얘기할래요 용기내 볼래요

나 오늘부터 그대를 사랑해도 될까요


"처음 인걸요 분명한 느낌 놓치고 싶지 않죠

사랑이 오려나봐요 그대에겐 늘 좋은것만 줄께요."

이렇게 젠틀하고  애틋한 노랫말이 있을까?


조심 스럽게 얘기한다고  용기내서 고백하는데, 오늘부터  그대를 사랑해도 되냐고 묻는데, 이 프로포즈를 거절할 여자가 있을까?

 시 잘 짓고 시조창도 잘하는 상남자 임제와 맘으로 허락하지 않은 남자와 썸을 타지 않는다고 소문이 자자한 명기 한우와 주고 받은 <화답시>를 보면  츤데레임을 자처하며 여인의 측은지심을 자극한 임제의 프로포즈송은 절창이다.

 

백호는 기생 한우에게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북창이 맑다 하거늘 우장없이 길을 나서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 온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서 잘까 하노라

 평시조 -임제



 못된 일기예보를 믿고 우산도 없이 길을 나섰는데, 이를 어째 영하 20도 넘은 날씨에 산에는 눈이 내리고, 들에는 겨울비가 추적거리고 내린다, 오늘은 하는 수없 이 찬비 맞고 얼어 자야 겠구나 하고 기녀 한우의 이름에 방점을 찍으며 애원히는 이 노래에서  찬비인 '한우' 는 그녀의 이름이다


기생 한우가 맞아주지 않으면 한겨울에 비 맞고 노숙하겠다는 협박이다

  평소 백호 임제의 글과 명성을 흠모해왔던 한우의 입장에서는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다. 이정도로 몸을 낮추고 들이대니, 귀엽기도 하고 은근 셀렜겠다.

이 겨울에 비를 멎고 노숙이라니 입 돌아 갑니다~제가 모실랍니다 언능 따라 오소.” 한우는 이렇게 화답했으리라.

 설레이는 남정네의 의도와 욕정이 묻어나는 이 노래에 마음을 빼앗긴 기녀 한우와 한량 임제의 썸타는 노래는 21세기 연애 트렌드에  밀리지 않을 둣.

이 때 한우가 임제의 시조에 답하는 노래가 <어이 얼어자리>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鴛鴦枕 翡翠衾)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 까 하노라.


헌우의 시조에 중의적으로 쓰인  얼어 자리는 남녀간 육체적 사랑을 뜻하는 고유어 '얼다'로 재해석 된다. "얼어 자게 두지 않아요 군불 뜨듯하게 덮인 온돌 위에 깔아둔 원앙금침 이불 속에서  제 체온으로 녹여드릴께요"라는 노랫말은 대담하고 솔직하다.

온몸이 노골노골해지는 콧대 높은 기생 한우의 답가에 임제의 진심이 통한 그날  절세 미인  '한우'와 당대 최고의 훈남 싱어송라이터 임제의 불타는 밤은 '아라리가 났'을 것이다.


임제와 한우가 그날 밤을 어떻게 보냈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찬비 맞은 몸을 어디에 맡길까 은근슬쩍 떠보는 임제의 눙침과 원앙금침에 잘 모시겠다는 한우의 화답에 절로 미소가 나온다.

백호 임제( 1549 명종 4년∼1587 선조 20년) 는 700여 편의 시와 한문소설 ‘원생몽유록’ ‘수성지’ ‘화사’ 등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조선이 배출해낸 걸출한 풍류시인이면서  사회비평가였다. 그가 남긴 글은 인문지리에서부터 한문소설에까지 다양하다. 그가 전국산천을 유람하며 방랑하면서 쓴  서정시(敍情詩)는 예술성도 뛰어나다고 인정을 받는다. 여자를 사랑하고, 시와 음악을 즐긴 그의 죽음에 대한 후일담이 유명한데,   근거없는 일화임에도 리얼 스토리로 전해진다. 기록은 유구하고 죽은 자들은 말이 없으니....



그런데 황진이 무덤 앞에서 술 한잔 따르며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시조 한 편 지어 바쳤다고 삭탈관직됐다는 조선시대 가객 임제에 대한   카더라 통신을 나는 믿고 싶다. 당대 사대부들에게 기녀 황진이가 얼마나 뛰어난 천재 시인인지 증명해주는 에피소드라 생각하며.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을 어듸 두고 백골(白骨)만 무쳣난이

잔(盞) 자바 권(勸)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술은 <독작>이 기본인데, 이왕이면 당대 명창  황진이와 시 한 수씩 주고 받으며, 음율에 취하고 싶은 한탄은 싱어송라이터 임제에센 당연한 일이다 임제는 벼슬을 빼앗긴 게 스스로 놓아 버린 것 같다

 살제로는 성격이 호방하고 얽매임을 싫어해 벼슬길에 대한 마음이 차차 없어진 임제는  관리들이 서로를 비방 질시하며 편을 가르는 현실에 깊은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관직에 뜻을 잃은 이후에 이리저리 유람하다 고향인 회진리에서 1587년(선조 20) 39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임제(林悌))]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배경 지식으로도 실린 이 야사를 난 여전히 믿고 싶은 까닭은 뭘까?

남자가 계집애처럼 천한 신분에 기녀에게 눈물을 보인 게 흠이 되는 성리학적 가치관에 발목 묶인 사대부 중에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가객 임제는 조선 시대 최고에  달달한 로맨티스트다

  기녀 '한우'와  '임제'가 주고 받은 <화답시>를 읽다 보면  양반이라는 위계를 내세워 강제로 기녀를 취하는 여타에 남정네들에 비해 백호 임제는 여자의 마음을 얻는데  있어 젠틀한 남성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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