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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좀 죽여주라

여고시절 이야기 

1982년 5월 

18살 이미경

 1978년 해변가요제 인기상을 받은 그룹 <휘버스>의 히트곡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이란 노래를 엄청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여고 3학년 같은 반 친구 이명희다.

  대학 진학을 앞둔 인문계 여고 3학년인 명희는 엄마가 빚 보증을 잘못 서서 쫄딱 망했단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마저 술을 밥 삼아 드시다가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명희는 자기는 구로공단 공돌이인 큰오빠 덕분에 공장에 안 가고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는 것이 축복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학을 가는 건 주제 넘치는 헛바람이기에 공부 따위는 자기와 무관하다나. 

 60명이 정원인 반에서 대학을 가는 학생들은 전문대를 포함해서 20명이 넘지 않는 상황이라 40명 내외의 친구들은 ‘잉여 고3’으로 불리며, 방과 후 교실에서 해질녁까지 놀았다.

 일찌감치 공부에 뜻을 버린 명희는 공부는 우리 반에서 꼴찌였고 싸움은 전교에서학년에서 1등이었다. 

 “휘버스의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이란 노래 너무 멋지잖아, 하얀 날개를 휘저으며 구름사이로 떠오르는 떠나가버린 그사람의 웃는 얼굴, 와우!”

 평소에 명희는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보다 폼나게 죽는 게 더 멋지다고, 자기도 언제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확 죽어버리고 싶다고 선언을 했다. 

 명희는 눈을 지긋이 감고서

“이 노래 가사 죽이지. 애잔하고 애틋하고 서럽고 설레고..또 뭐더라?”

“지랄 죽으며 울 엄마가 기냥 똥거름이래. 무슨”

 명희 짝궁 보나가 이렇게 말하자 명희는 얼척없다는 듯

“저년이 뭐라 씨부려! 니 죽고 싶어 환장한겨?” 하고 눈을 부라렸다.

 전교 쌈짱인 명희는 나의 안전지대다. 전교에서 명희의 베스트 프렌드인 나를 건드릴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다음 날 점심 시간이 지난 뒤, 명희가 매점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펩시콜라병에 빨대 3개를 넣고 짜릿한 몰빵 시음을 하고 있었다. 이게 은근 짜릿하고 스릴있다. 좁은 병목에 3개의 빨대를 박고 단숨에 흡입하면 와우!

  뭐랄까 정수리가 쨍하고 깨지는 듯하고 목구멍이 얼얼하며 뒷목이 뻐근해지고 머리가 몽롱해진다. 그날도 물고 있던 빨대 3개를 공중으로 뿜으며 

“와, 와 죽을 뻔!”하자 명희가 “니 그러다 뇌 혈관이 팍하고 터지면 반신불수된다고 빨대 한 개만 쓰라 했지!”

명희의 지청구에 

“오바 쩔어요, 콜라 먹다 죽었다는 이바구는 난생 처음이네!” 하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를 따라서 눈물을 찔끔거리며 웃던 명희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친구야! 우리 진짜 친구지? 겁나 의리있는 친구!”

“맞다. 맞아 친구. 근데 왜?”

“미경아 나 폼나게 죽고 싶은데 나 좀 도와주구....”

“뭘 도와 주문 되는데?”

“나 좀 죽여주라!

“미친!”

“ 나 정말 죽고 싶어. 제발 도와주라.”

 명희는 자기 아빠가 죽은 10월 10일에 자기도 죽고 싶다고 했다. 대학도 뭇 가고 똥손이라 손에 닿는 건 다 망가뜨리는 자기는 공순이는 적성이 아니라고 했다. 짐승의 썩은 고기를 찾아 산기슭을 서성이는 하이에나로 사느니 폼나게 죽어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될 거라고 했다. 조용필의 노래 가사를 교묘하게 표절하며 명희는 죽어서 눈부신 청춘의 기억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나름대로 자살 방법을 연구해 봤는데 목을 매달면 혀를 빼고 죽는다니 흉물스럽고 단칸방이라 나홀로 연탄가스를 맡고 죽을 수도 없다고 했다. 고통없이 죽으려면 수면제를 구해야 하는데 지 죽을 약을 스스로 사 모을 자신도 없단다. 그래서 친구 중 공부를 젤 잘하고 야무진 미경이라면 약을 구해줄 수 있으 거란 생각이 들었단다.  

 난 명희의 황당한 부탁에 불쾌하고 짜증이 났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자살 방조자로 나를 선택할만한 개연성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어설픈 염세주의자 코스프레를 했던 거 같다. “나의 인생은 처음부터 저주받았음이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운명은 평생 계속되었지요.”라는 보들레르의 명언을 입에 달고 다니며 그의 시집 <악의 꽃>을 달달 외워서 친구들에게 들려줬다. 뿐만 아니라 유태인을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읽고 히틀러 덕후임을 자처하는 나를 명희는 독특하고 유별난년이라 부르면서도 책 많이 읽는 친구인 나를 추앙했다.

  그날 3시간 가까이 눈물반 콧물반을 버무려 내 교복 상의를 흥건히 적신 명희의 죽어야 하는 넋두리에 항복을 한 나는 약속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약을 구해줄테니, 유서같은 조잡한 흔적 남기지 않을 것, 그리고 혹시 쓰더라도 내 얘기는 적지 말라며 자필 사인 각서도 받았다.

  명희를 죽여준다고 약속한 그날 밤 신촌에서 약국을 하는 사촌 언니를 찾아갔다. 

 언니는 “너 미친기가 뭔 개소리야!” 처방전도 없이 수면제를 어떻게 구하려고? 난 못 준다. 쓸데 없는 소리 말고 언능 가 공부나 해!“라고 하며  나를 밀어냈다.

 나는 수면제를 달라는 게 아니라, 명희를 말릴 수 없으니 도와주는 척하고 혼내주려고 한다고 부탁을 했다. 언니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노란 캡슬 설사약 31알을 줬다. 그리고는 수면제의 일종인 '세코날'처럼 새빨간 항생제 캡슬 31개 속 노란 분말 가루를 털어냈다. 

 언니는 뒤 설사약의 분말을 '세코날' 갭슬에 담아 31개에 죽음의 캡슬을 만들어 줬다. 그런 뒤 정사각형 종이에 한알씩 놓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접어 나에게  주었다. 

 친구가  의심할 수도  있으니  주변 약국을 돌며 서로 다른 상호의 약봉투를 구해 담아 주라 했다. 3일 간격 또는 일주일 간격으로 약국 상호가 다른 봉투에 날짜를 쓰고 한 알씩 전해주었다. 처음엔 장난인가 싶어하다가 23개째의 세코날 캡슬 봉투를 받는 얼굴이 새파랬던 거 같다. 

약속한 날짜가 다가올수록 명희는 말수가 줄었고, 자살 D데이가 다가오자, 그녀가 공약처럼 내뱉은 자살을 긴가민가하던 따르던 '잉여 고3' 친구들은 난색을 표하며 명희를 달래고 있었다. 

 이제와서 멋드러진 자살 공약을 되물르기도 곤란한 그녀는 31알째 약 봉투를 받아든 날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말했다.

 ''고맙다, 내 성공하면 귀신이 되서라도 이 은혜 갚으마.''다음 날 명희는 무단 결석을 했다. 그 친구를 따르던 친구들은 쉬는 시간 종이 울릴 때마다 훌쩍이며 울었고. 나만 웃음을 참느라 혀를 씹으며 그날따라 엄청 긴 하교를 기다렸다.

 그날 저녁 동네 의원에서 탈수가 와서 링거를 맞고 누운 명희를 만났다. 울며 불며 자살 미수로 시체처럼 누운 그녀를 보며 친구들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명희를 이케 살려줘서.“라고 하며 목 놓아 울었다. 

 그날 저녁 늦게 명희한테 전화가 왔다. 처음엔 평생 들어본 적도 없는 쌍욕을 1분간 발사했다. 그러더니 한참 뒤 숨을 고르고 ''이틀 낮밤으로 설사하다 죽을 뻔했다. 니 죽여뿌릴라 했는데, 쪽 팔려 죽겠다. 내가 세코날 아니고, 설사약 먹고 탈진했단 거 비밀이다. 니 그거만 지키면 이번 일로 앙심 품는 일 없다. 약속해라 아님 니 주고 나 죽느기라!'

 명희는 그날 이후 다시는 자살을 꿈꾸지 않았고 나는 그녀가 나에게 진 빛을 보험처럼 안전하게 즐기며,  전교 쌈짱인  성희에 무소불위의 권력 그늘에서 행복했다. 

  졸업 후 명희는 똥손인데도 불구하고 명동에 있는 미용실에 미용사로 취직했다. 손아구 힘이 엄청나서 고객님들 머리 감기고 마사지하며 받는 팁으로 경차도 샀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만난 명희는 같은 미용사인 남자와 동거를 하다가 지 닮은 몬 생긴 남자 아이를 낳았다.  너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서 천만다행이라며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성희를 보며,  나는 고소를 금치 못했다. 내가 그 때 명희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과연 명희는 자살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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