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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시절 감서리 사건

나는 보고야 말았다 미자의 토악질을 

1983년 9월 

교내 감서리 사건

 내가 다닌 수도여고 교훈이 “슬기롭고 아름답고 참되어라 진선미”다. 교훈을 증명이라도 하듯 교내에는 유독 감나무가 많았다. 주홍빛 땡감이 진홍빛으로 물들면 까치 먹으라고 단 한 개도 남기지 않고 선생님들이 감을 수확해 가셨다. 

 에덴 동산에 홍옥을 절대로 따 먹으면 안 된다는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벌거숭이로 버려진 아담과 이브가 안 되려고 우리는 달디단 감나무 열매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벌어졌다. 

  고3 9월 교장 선생님 월요일 방송 조회 시간에 지루하고 답답한 훈화 말씀이 거칠게 이어졌다. 

“여러분들 정말 믿기지 않지만, 지난 밤 체육실 입구 감나무에 감을 도독 맞았습니다. 교양있고 준법정신 투철한 본교 학생이 설마 나무를 타고 올라가 감을 따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지난 밤 감서리를 한 흔적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아직 영글지도 않은 감을 7개나 따서 한 입씩 베어 물고 체육관 뒤에 버렸습니다.  오늘 안에 감을 훔친 학생이 누구인지 밝혀 내고자 합니다. 5교시가 끝나기 전에 자발적으로 교장실에 찾아와 용서를 구한다면 선처하겠습니다. ”

 교장선생님의 협박성 훈화 말씀은 삐빅거리는 스피커 소음과 어우러져 공포스러웠다.

수도여고 교정의 자랑거리는 100년 됐다는 은행나무와 감나무 십여 그루다. 역대 교장선생님들은 장학사가 올 때마다 “이렇게 실한 감이 열려도 우리 학생들은 이 감을 절대 탐내지 않는답니다.” 라고 자랑하셨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는 여학생들은 진. 선.미를 갖춘 정숙한 여자들이었다. 그런데 누가 그 감에 손을 댔다고 한다. 게다가 떫고 지린 감을 씹다가 뺕어서 교내에 버리고 갔다니 심란스런 일이었다. 

 그런데 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야 말았다.  겁대가리 없이 그 감을 따 먹고 뱉은 학생은 바로 같은 반 친구 정미자였다. 나는 쉬는 시간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가운데 긴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고 토악질을 하던 미자의 토사물에 내용물에 감 찌꺼기를 봤다. 

  그날 첫 교시 수업인 국어 시간에 학생주임 선생님이 다짜고짜 들어오셔서 교내에 있는 감나무에 감을 따 먹은 학생들은 졸업년도에 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전설을 전하며 삼수를 하고도 대학을 못 간 선배들의 이름을 년도 별로 줄줄 불러 주셨다. 

 2교시를 마치고 미자는 화장실로 달렸고, 격한 토악질을 하고 후즐근한 몰골로 교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의 저주와 달리 그해 미자는 재수를 하지 않고 고교 졸업 후, 사대문 안에 있는 4년제 대학 영문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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