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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Jul 23. 2024

바다 없는 밀양에서 '이어도사나'를 부르다

한바당 해녀 이어도 사나 신(新)물질 로드-우뭇가사리에서 한천으로

해녀 어머니들의 이야기 속에는 ‘설마’와 ‘역시’가 교차한다. 오래 축적된 경험의 영역과 지역과 바다에서 온몸으로 체득한 것들이 문자 이상의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해녀 취재를 하면서 현장 경험 없이 들은 얘기나 다른 이의 자료를 편집해 제 것처럼 취하는 사례와 목적하는 것에 맞춰 좁고 작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를 접했던 까닭에 이런 해녀 어머니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제주바다 ‘우뭇가사리’철


제주 바다에 봄이 들었다는 기척은 우뭇가사리의 몫이다. 뭍보다 한 계절은 늦다는 바다에 우뭇가사리철은 ‘이제 봄’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한해 벌이에 영향을 미치는 데다 다른 작업과 달리 마을 소속 해녀가 모두 나와서 손을 보태는 큰일이다 보니 마을마다, 어촌계마다, 잠수회마다 우뭇가사리 작업에 신경을 쓴다.

‘봄 잠녀(해녀) 건들지 마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는지 모른다.

우뭇가사리 철 가족까지 동원해 바다로 나가는 사정도 있으려니와 무엇보다 단순 동작을 긴 시간 반복하는 ‘우미 물질’은 해녀들의 고질병인 두통과 물멀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맘때 바다로 나간 해녀는 조간대 하부부터 조하대 수심 5m 범위에서 우뭇가사리를 손으로 뜯어 빈 망사리에 담는다. 수십 번 머리와 허리를 숙였다 폈다 하는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그만 핑하고 어지럼증이 생긴다고들 말한다. 처음 상군의 뒤를 곧잘 따라가던 해녀들이 끝내 바다와 부대낄 때마다 한 웅큼 약을 입에 털어 넣는 굴레에 들어서는 시기가 우뭇가사리와 밀접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우뭇가사리는 여름철 임금도 즐겨 먹던 음식 가운데 하나인 한천의 원료로 쓰이는 해초다.

우뭇가사리 등 해조류의 경우 2∼3년 간격으로 해 갈이를 해 연도별로 물량이 크게 늘었다 줄었다 하지만 제주에서 매해 전국 우뭇가사리의 90% 이상이 생산된다. 우뭇가사리는 대부분 일본과 미국으로 수출되는데 특히 제주 동쪽 바다에서 생산되는 것들은 한천 생산량과 소비량 1위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요즘은 그 사정이 예년만 못하다고 한다. 해수온이 오르면서 갈조류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천 소비량도 줄어들면서 해녀들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

제주산 우뭇가사리는 국내에도 유통된다. 그 대부분이 바다라고는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경남 밀양으로 옮겨진다.


 대한민국 수출 효자 품목


밀양 한천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1912년 대구에 한천제조 시험소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3년 일본인 어업가인 카시이 켄다로가 11만 9000㎡(3만6000평) 규모의 카시이 한천 제조소를 밀양에 세웠다. 이것이 밀양 한천 역사의 시작이다.

밀양에 한천 생산 시설이 설립된 것은 한천 제조에 3대 요소인 기온, 지형, 수질 등이 가장 적합한 곳이기 때문이다.

밀양 한천은 대한민국 수출 1호였다. 1950년대 우리나라 5대 수출품목 가운데 두 번째를 차지했다. 6·25 전쟁 이후인 1954년 우리나라 총수출 600만 달러 중 한천은 120만 달러로 전체의 20%를 차지했다. 현재 밀양 한천은 연간 150t를 생산해 이 가운데 80%를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1970년대 동아일보의 ‘땀 흘리는 한국인’시리즈로 해녀가 한 자리를 차지했던 사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심지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인 삼성이 1940년대 후반 한천을 수출(삼성물산상사)했다. 1970년대 들어 롯데물산과 동국제강이, 1980년대에는 대우와 럭키금성도 주요 수출 품목으로 한천을 취급했다.

이전까지 1890년대 후반 제주해녀들이 출가(出稼)물질을 나섰던 이유 중에 등장했던 우뭇가사리는 고급 비단 염색에 쓰여 꽤 가격이 됐다는 내용에 머물렀었다.   


제주 봄 바다에서 밀양 겨울 논으로


제주 우뭇가사리는 채취한 이후 바로 밀양으로 가지 않는다. 바다를 떠난 우뭇가사리가 한천이 되기 까지 1년 정도 소요된다.

봄에 채취한 우뭇가사리는 이 즈음(8월 께) 밀양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맹물로 씻어 소금기를 빼내고 홍색이 없어져서 백색이 될 때까지 햇볕을 쬔다. 이것을 쇠솥에 넣고 눅진눅진해질 때까지 삶아서 거르거나 주머니에 넣어 짜내어 냉각시키면 굳는데 이것이 우무다. 꼬박 35일이 걸리는 작업이다. 말랑말랑한 우뭇가사리는 대나무로 만든 건조장에서 한달 정도 밤에는 얼었다 낮에는 녹았다를 반복한 뒤 한천이 된다. 이때 기온은 영하 5도에서 영상10도 정도가 최적이다. 여름 밀양으로 간 우뭇가사리는 벼를 베어낸 뒤 빈 겨울 논에서 한천이 된다.     

꽤나 긴, 기간과 수고를 담아 낸 작업을 살필 수 있는 공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밀양한천박물관이다. 들어서는 입구에서 ‘이어도사나’가 반겨준다. 시작은 제주 동쪽 구좌에서 공수한 우뭇가사리의 우수성을 알리는 자료다. 우뭇가사리 작업을 할 때 마을 전체가 움직이는 사정도 사진을 소개한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해조류를 먹었는지, 조선 왕실에서 즐겨먹었던 우뭇가사리의 효능이나 한천 제조 역사, 한천 원료 분포도 같은 것들이 빼곡하다.


인연 너머 채워지는 것들


우리나라 제주해녀의 존재와 불턱‧숨비소리,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해녀항일운동의 기록이다. 구좌 하도어촌계 자료가 두 지역의 인연을 대변한다. 오랜 세월 지역을 지탱했던 제작 도구들에는 묵직한 무게에 더해 사용감까지 두꺼운 역사책 이상의 의미를 전하고 있었다.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이제부터 차근차근 채워도 될 것들이다. 그보다 그 전 비어있던 자리가 어느 정도 채워졌다.

밀양이 ‘양’에 해가 들어있다고 했지만, 내게는 밀양 해(海)가 보인다. 그만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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