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제주 살아요 : 정동벌립, 진심으로 다음을 잇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7월 대나무 바구니를 짜는 기술을 보유한 ‘구덕장’과 정동(댕댕이 덩굴)을 이용해 제주 전통 모자를 만드는 기술을 지닌 ‘정동벌립장’ 등 3명을 제주도 무형유산으로 고시했다. 무형유산의 기능‧예술을 보유했다는 인정은 당연한 일이지만 구덕이나 정동벌립 모두 수수한 보통 사람들의 용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딘지 뭉클하기까지 하다.
입과 손으로만 전해지던 생활 전통의 맥을 이은 정동벌립장 제3대 기능보유자인 홍양숙 명인의 손을 붙들고, 홍 명인의 삶을 담은 궤를 열었다.
“목숨을 엮는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 일을 왜 하냐, 어떤 기술이 있느냐고 물으면 사실 대답할 말이 별로 없어요. 손이 기억하는 대로 하는 일이죠. 지금은 이 손을 통해 만들어진 기억에 의지해 살고 있어요”
이 말의 의미는 홍 명인의 손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정동벌립은 ‘정동’이라는 댕댕이 덩굴을 엮어 만든 제주도 전통 갓이다. 말총 벌립이 양반들의 영역이라면 정동벌립은 서민들의 것이다. 여름부터 가을에 채취한 정동이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자연 상태에서 말리고, 물을 축여 부드럽게 만든 뒤 엮는 방식으로 만든다. 모든 과정은 오로지 구전으로만 전해진다. 기억과 생각, 그리고 손의 감각만으로 작업을 한다. 남성들이 너나없이 상투를 틀던 시절에는 솜씨 좋은 손을 찾아 수요가 몰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이젠 그만해야 하나’하고 손을 놓으려 할 무렵, 무형문화유산이란 인정을 받았다. 계속하지 않을 이유도 생겼다. ‘놓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이 가슴에 박힌다.
묵직한 나무 궤에서 꺼낸 ‘정동 말총 벌립’은 홍 명인의 각오를 함축한다.
작업기간만 1년하고도 4개월이 걸린 대작이다. 작업을 하는 동안 시력을 잃었고 건강도 나빠졌다. 당시가 떠오르는지 홍 명인은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일이었는데 가늘디가는 말총 가닥과 상대적으로 굵은 정동 줄기를 하나로 만드는 일은 갈수록 부담이 됐어요. 오로지 손끝 감각만으로 작업을 했어요, 어떤 날은 한 바퀴도 잇지 못해 좌절했다가 어떤 날은 무슨 명예를 얻으려고 이 일을 하냐고 푸념도 했다가.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손에 정동을 잡고 있더라고요”
시간은 처음 정동 줄기를 손에 쥐었던 10대의 어느 날로 돌아간다.
병약했던 홍 명인은 어머니가 산에서 캐온 약초로 근근이 목숨을 이었다고 했다. 일찍 혼자가 된 어머니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정동벌립 기술자인 큰아버지 댁에 재료를 납품하는 일을 했다. 몸이 아파 학교에도 가지 못했던 홍 명인은 어머니를 따라 큰아버지 댁을 자주 오갔다. 누가 시킨 것도,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정동 줄기를 엮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못마땅해 했던 어머니와 달리 큰아버지는 홍 명인의 야무진 손끝을 눈여겨봤다. 그리고 ‘가르쳐 달라’는 조카딸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줬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동벌립을 짜면서 홍 명인은 건강을 찾았고, 어머니의 인정도 받게 됐다.
그렇게 탄탄대로가 열렸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근대 이후 상투 문화가 사라지면서 벌립 역시 존재 이유를 잃었다. 대신 모자 형태로 간신히 명맥만 이엇었는데, 1980년대 들어 정동모자가 제주관광기념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벌립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게 된다.
문화재청의 전통 정동벌립 재현 의뢰를 받고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간신히 기억과 감각을 살려냈고, 1986년 제주도 무형문화재 8호 정동벌립장 지정으로 부활했다. 전수자로 정동벌립 작업을 이어가게 됐지만 다음은 정동이 고민거리가 됐다.
제주 중산간 일대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었던 정동 자생지가 개발 바람에 야금야금 사라졌다. 한 때 딸을 위해 어머니가 구해 정성껏 말린 그것과 비길 수는 없지만, 야생에서 자란 것일수록 단단하고 탄력 있는 재료를 지금은 직접 재배해 조달한다. 전국으로 정동 재배 방법을 수소문했고 4번이나 실패한 끝에 지난 2021년 시험재배에 성공하며 숨을 돌렸다. 그 옛날 어머니의 자리는 남편이 대신하고 있다. 덕분에 제주도 관광기념 및 공예품 공모대전 대상(2005)을 포함해 29차례의 수상 경력과 30여 차례 국내외 전시를 통해 정동벌립을 알리고 있다.
“가마귀방석(정동벌립 제작 첫 공정으로 모자를 썼을 때 정수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놓고, 젤벤(모자 위쪽 평평한 부분)을 연결하고. 사갑바위(절벤과 망, 망과 천의 경계 부분)를 꼼꼼히 살피는 걸 잊지 말고, 여기 바위돌림은 더 신경 써야 해”
홍 명인 옆에서 무슨 주문 같은 말들을 주워 담고 있는 이는 며느리 한유리씨다. 한씨는 제주 무형유산을 잇는 2030 청년 전승자로 지난 5월 열린 제주 무형유산 축전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뻣뻣한 재료를 두 손과 몇 개의 소도구로 다루는 작업은 고운 손과는 거리가 있는 험한 일이다. 손가락 마디에서 앓은 소리가 나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가시지 않는 일을 “하고 있으면 행복하다”고 따라하는 모습에서 예전 자신의 모습을 본다고 했다.
홍 명인은 “어떻게든 재료를 찾으니 그 다음은 뒤를 이을 사람이 생겼어요. 다시 정동을 재배할 이유가 생기고. 맥을 잇는다는 것이 이런 것 아니겠냐”고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고마운 지혜를 얻었다.
** 이 글은 <제주도>도정지 가을호에 실은 글의 최종 수정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