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제주 살아요 : 애쓰지 않아도 푸른 서귀포 정모시 공원
세상에는 참 많은 집사들이 있다. 중세 시대나 유럽 귀족 가문얘기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나이테를 살짝 살펴보고 슬쩍 돌려놀 필요가 있다. 요즘 집사는 ‘반려’를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애묘인들에서 시작한 표현이 요즘은 그 영역이 확장되며 ‘신경 써 돌봐야 할’것들과 마음을 맞추는 이들의 진심에 왕관처럼 달리고 있다.
그 와중에 마음이 가는 말이 ‘식집사’다. 식집사란 반려동물을 키우듯 식물을 가족같이 돌보며 애정을 쏟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중년층의 취미로 여겨졌던 원예 문화가 코로나팬데믹을 거치며 2030 젊은 세대에게 스며들며 하나의 흐름을 만들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비자발적 단절을 경험하면서 정서적으로 의지하고자 하는 대상이 식물로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의 조사에 따르면 반려 식물을 기르는 목적으로 ‘정서적 교감 및 안정(55%)’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그런 식집사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신경 써’라고 굳이 언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식물을 좋아하지만 한번도 제대로 키워보지 못했던 경험의 축적은 식집사라는 단어를 부럽게 한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초록을, 초록의 공간을, 초록이 스며 번지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은.
수 스튜어트 스미스의 <정원의 쓸모>에는 ‘흙 묻은 손이 마음을 어루만지다’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왠지 가슴이 떨린다. 식물을 가꾸는 정신과 의사가 귀띔하는 식물의 힘이라는 것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책장을 정신없이 넘겼던 지점이 가드닝을 '파괴 행위'와 연결했던 부분이었다는 건 소소한 반전이다. 다만 잡초 뽑기, 가지치기 같은 파괴적인 행위엔 인간 본성을 치유하는 순기능이 있다고 했다. 그 순기능이 필요했던 것일까. 삶은 매일 더 복잡해지고, 세상을 따라잡으려 꾸역꾸역 살다 보니 속은 자주 만신창이가 된다. 누군가 나를 좀 돌봐달라고 하소연하는 과정에서 초록이 싹텄던 건 아니었을까.
정원 일은 반복적인 것이 많아서, 참가자들은 리듬감을 얻는다. 그렇게 되면 정신, 신체, 환경이 하나가 되어 조화롭게 기능할 수 있다. 이른바 ‘몰입 상태(flow state)’는 여러 차원에서 큰 회복력을 갖는다. 이 상태는 부교감신경 기능을 강화하고 엔도르핀, 세로토닌, 도파민 같은 다양한 항우울 신경전달물질과 BDNF 수치를 높여서, 두뇌 건강을 증진한다. 그 결과 쾌적하고도 이완된 집중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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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같은 가상 세계와 가짜 뉴스의 시대에, 정원은 우리를 현실로 되돌려준다. 알려지고 예측가능한 종류의 현실은 아니다. 정원은 늘 우리를 놀라게 하고, 우리는 거기서 다른 종류의 ‘앎’을 경험한다. 감각적이고 물리적이며, 우리 존재의 정서적, 영적, 인지적 측면을 자극하는 앎이다. 이런 의미에서 원예는 오래된 것인 동시에 현대적이다.
그렇다고 정원을 가꿀 수 없어서, 시간을 들여 주변의 초록공간을 찾아 헤맸다. 처음은 내가 살고 있는 곳 주변을, 그리고 누군가의 정보를 듣고 챙겨뒀던 곳을, 꼭 한 번 가보면 좋을 것을 챙기다 도심 공원이라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됐다. 일부러 공을 들여 정비한 공간인 만큼 제대로 잘 이용해줘야겠다 싶었다. 잘했다싶다.
‘겨울나무들의 까칠한 맨살을 통해/ 보았다, 침묵의 두 얼굴을/ 침묵은 참 많은 수다와 잡담을 품고서/ 견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겨울 숲에서’ 중).
올해 정지용문학상을 받은 이재무 시인의 글을 옮겨 봤다.
겨울이라 어딘지 차갑고 가라앉은 느낌을 풀어냈을지 모르겠다, 하면서도 ‘수다’와 ‘잡담’이란 단어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겨울 그리고 숲,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그 안에 머물며 살피는 시간을 노래한 것은 아닐까.
서귀포시 정모시 공원에서 보낸 한나절은 예상하지 못한 공간감을 선사해 주며, ‘바쁘다’를 외치며 달려온 한 해와 다음 해 사이 채워도 좋고 비워도 괜찮을 빈칸이 된다.
이재무 시인의 시 말미에 ‘나는 보았다/ 너무 많은 말들 품고 있느라 수척해진’이란 표현이 나온다. 정모시 공원의 겨울을 설명하기에 그만한 느낌이 있을까 싶다.
‘정모시’는 정방폭포로 내려가는 물이 모이는 곳, 정방폭포의 못이란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너무 단순해 오히려 더 입에 붙는다.
정모시 공원은 여름이 가장 바쁘다. 자연이 만든, 제주도민이 찾는 숨은 물놀이 명소로 입소문을 탔다. 그것만으로 무슨 매력이 있겠나 싶지만 여름 한철을 벗고 난 모습이 더 좋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이다.
정모시 공원은 제주 도내 도심 공원 중 용천수가 흐르는 친수 공원으로 손꼽힌다. 투명한 초록 물빛 아래에는 지난 계절, 오래된 시간을 누렸던 나뭇잎이나 잔가지 같은 것들이 가라앉아 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 아래 이리저리 치이지 않고 고즈넉이 자신만의 시간을 품은 것들과 눈을 맞추는 사이 ‘유유자적’이라는 단어가 둥둥 날개를 단다. ‘물멍’도, 그렇다고 ‘숲멍’도 아닌 묘한 느낌에 저절로 숨이 깊어진다.
정모시 공원이 가지고 있는 공간의 힘이다.
정모시 공원은 서귀포시 원도심의 비밀 정원이라 불린다.
2005년과 2006년 동홍천 주변을 정비하면서 조성한 공간에는 멀구슬나무, 담팔수, 광나무 등 15종 340여 그루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꽃을 피우거나 그늘을 이룬다. 대표 수목은 이른바 ‘제주 초록’이라 부를 수 있는 자생종들로, 그 사이를 거니는 것만으로 제주 생태 도감 식물편을 살피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산책로와 운동기구, 물놀이 공간 등이 슬기롭게 들어서며 올해 산림청의 ‘아름다운 도시 숲’ 5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정모시 공원의 장점으로 ‘서귀포다운’을 꼽는 이유 역시 비밀 정원을 완성하는 한 요소다. 정모시 공원은 주변 상가‧주거지와 접근성이 좋은 데다 제주올레 6코스와 연결돼 있다. 서귀포 도심의 걷는 길인 ‘하영올레’ 중 녹색 숲길과 시원한 바다 풍광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2코스(약 6㎞)의 주요 포인트이기도 하다.
‘길을 걷다 우연히’, ‘밥을 먹고 살짝’, ‘모임 뒤풀이로 함께’,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같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유만으로도 즐길 수 있다는 것만큼 도심 공원의 역할을 잘 설명하는 말은 없다.
정모시 공원의 매력은 사계절을 품은 초록에 있다.
우리나라 최남단이란 말은 봄이 가장 먼저 온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겨울을 느끼자마자 이제 봄이구나, 하고 콧노래를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는 얘기다. 화사한 꽃들을 배경으로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봄의 그것과 햇살처럼 번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첨벙첨벙 물방울까지 번져 빛나는 여름, 치열했던 더위를 누르고 마음을 가다듬는 농밀한 가을을 지나 다음을 기약하며 숨을 고르는 차분한 색감까지, 그저 ‘초록색’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초록이든 다 지친 일상을 위로하고 건강한 호흡을 유도한다.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은 돌다리를 퐁당퐁당 건너가면 공원 깊숙한 곳에 마음을 눕혀도 좋을 긴 의자가 듬성듬성 놓여 있다. 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걸으면 멀지 않은 숲속에서 작은 연못을 만날 수 있다. 폴짝하고 내는 기척이 계절마다 다른 이 숨은 공간 근처에는 제주 4‧3 학살터 추모비가 있다.
가깝게 찾아갈 수 있는 도심 공원이라는 흔한 안내 외에 정모시 공원에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중용(中庸)의 맛이 있다.
정모시는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었다 샘솟는 용천수라 차갑기는 하지만, 볕과 만나는 부분이 많아 다른 용천수와 비교해 적당히 차갑다. 생태공원이 자랑하는 원시적 생명력 같은 것은 없지만, 도시와 함께 호흡하는 역할로 존재 이유가 충분하다. 제주 섬 어디든 4‧3의 상흔이 없는 곳이 없지만 담담하게 ‘여기도’ 하고 손을 들어 알리는 역할도 한다.
정원 도시를 선언한 서귀포시의 계획을 보면 솜반천에서 시작해 걸매생태공원-서귀포칠십리시공원-새섬공원-천지연폭포-샛기정공원-자구리공원-서복전시관을 잇고, 이곳 정모시 공원을 생태축의 마지막 기착지로 정했다.
다음, 그 다음 만날 정모시 공원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벌써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