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너를 또 나를 응원하라

나의 소소한 제주일상 : 애니 ‘향기로운 꽃은 늠름하게 핀다‘그리고

by 고미

[향기로운 꽃은 늠름하게 핀다] [진작 이렇게 책을 읽었더라면]


언젠가 얘기한 적이 있지만, 난 만화 덕후다. 애니도 좋아한다. 생각과 감정을 쉬고 싶을 때 선택하는 3순위 안에 ‘애니‘가 있다.

한 해에서 다른 한해로 옮겨가는 즈음에 한 애니를 봤다. <향기로운 꽃은 늠름하게 핀다>라는 독특한 제목에 끌려 무작정 보기 시작했다. 성장 스토리나 소녀 취향 로코물 정도로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어쩐지 늠름해졌다고나 할까.


강해보이는 외모와 달리 여리고 착한 소년과 매사에 긍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소녀가 주인공이다. 명문 여학교와 보통보다 조금 떨어지는 남학교라는 다음이 들여다 보이는 설정까지 빤할 것 같던 이야기는 ’조금만 더’하는 응원으로 바뀌었다.


외부 자극이나 극적인 사건을 통해 ‘단순히 강해지는’ 전개였다면 쉽게 질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조용하고 내밀한 과정을 택한다. 각자가 지닌 자신 내면의 약점을 조금씩 들춰내고, 그 약점과 마주 보게 만든다.


‘이래도 될까‘하고 망설이던 일들에서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로 바뀌는 순간의 뭉클함이라니. 순수하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들이 그래서 더 정감있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대에 맞춘 성장이 아니다. 오롯이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변화가 마치 나와 우리의 이야기처럼 조용히 스며들었다.


등장인물들이 스스로를 옭아맸던 불안과 회의를 넘어,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감과 중심을 잡아가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됐다.


그렇다고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말하기엔 어설픈 구석과 빈틈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점 덕분에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현실처럼 조금씩 나아가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마음에 남은 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였다. 아이의 선택을 대신 결정하지 않고, 조급해하지도 않으며, 그저 지지하고 응원하고—무엇보다 믿고 기다려주는 엄마 아빠의 존재.


그 장면들에서 가슴 깊은 곳이 울컥했다. 염색과 피어싱이 하고 싶다는 말에 선뜻 "그래"라고 답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아이가 혼자 튀어 보이지 않게 엄마도 같이 염색하고 피어싱을 해버리는 장면, 그 배려와 지지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어쩌면 이 작품이 과하게 꾸미거나, 의미를 덧붙이거나, 영웅 서사를 만들지 않아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극적인 해결보다, 곁을 지켜주는 태도를 끝까지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역할에 갇히지 않고, 각자의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의 본질을 ‘그저 애니’에서 봤다.

‘관계’라는 이름으로 나 또는 너, 서로를 옥죄거나 평가하려 드는 외부 현실과 대비되며, 우리 안에 내재된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다’는 근원적인 갈망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이러한 관계들은 복잡한 사회 속에서 잊고 지내던 ‘진정한 연결’의 가치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큰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소소한 안도감에 가깝다. 보고 나면 설명하기보다는, 그냥 조금 그윽해진다.

이 애니가 오래 남은 이유를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이 문장이 떠올랐다.

장경철 서울여대 교수의 <진작 이렇게 책을 읽었더라면>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 않습니다. 어떤 문제든 개선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반드시 밟아야 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보다 조금만 더 잘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너무 잘하려고 하면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잘하는 유일한 길은 지금 하는 것보다 조금만 더 잘하고, 그 것이 익숙해지면 조금 더 잘하는 것을 반복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쉬운 방법을 잘 활용하지 못할까요? 자신이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한 정확한 관찰과 평가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허탕치게 되는 것입니다.

#장경철 #진작 이렇게 책을 읽었더라면_중


‘조금 더 잘하는 것을 반복’하는 일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애니 속 두 주인공이 서로의 감정에 솔직해 지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가치 있는 일들을 이루는 과정에는 시간이 개입되어 있습 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은 오래 걸리는 시간 자체가 핵심입니다. 사랑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감정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사랑의 감정이 조금 무뎌도 괜찮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그가 내 곁에 오래 머물도록 할 수 있다면, 그와 나 사이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책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한번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주제는 우리의 지성을 넘어섭니다. 주제가 지성보다 큰 경우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이해하고 내 것으로 삼을 수 있을 까요? 간단합니다. 시간과 횟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단번에 이해하기를 기대하지 말고 그것이 계속 내 경험과 생각 속에 거주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 대상이 더 깊고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을수록 더 많은 시간과 횟수를 허락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대상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장경철 #진작 이렇게 책을 읽었더라면_중


‘향기로운’을 위해 다시 애니를 보게 될 것같다.

단번에 이해하려고 보기보다는, 내 경험과 생각 속에 오래 머물게 할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것을—지금 하는 것보다 조금만 더 해보자는 다짐을 올해 계획에 추가해 볼까 싶다. 늠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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