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전공한 한 친구는 자기 딸에게 그림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모두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났다며 각자의 개성 넘치는 그림이 얼마나 특별한지에 대해서 열변을 토한다. 입시 미술을 거치고 나면, 고유한 개성이 사라지고 판에 박힌 그림만 남는 것이 씁쓸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미술 선생님으로 레슨을 할 때도 학생의 그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이 교육 방식에 대해서 학부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레슨을 했다고 한다. 당연히 선생님이 학생보다 그림을 잘 그리기 때문에 선생님이 붓칠을 해주고 나면 학생은 자기 붓칠에 자신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대신 그려주면 완성도는 더 높을 수 있지만, 그 학생만 그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리도록 도와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딸의 그림들을 보여줬다.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스타일이었다. 무언가 우스꽝스럽지만 특징을 잘 살린 그림이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들도 입시라든지, 상업적인 구조 속에서 평가받거나, 그 기준에 맞춰 나의 작품이 깎이기 시작하면 즐거움이 많이 감소되는 듯하다. 그래서 어른들은 예체능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취미’로 하라는 조언을 해줬는지도 모르겠다. 예술 활동을 통해 ‘이윤 창출’까지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길이 그리 평탄하지는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말이다.
'아티스트웨이'라는 책을 읽어나가고 있다. 창조성이 막히는 가장 큰 원인은 두려움이라고 한다. 완벽한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부담, 타인의 평가에 위축되는 마음, 재능에 대한 의심 같은 것들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라는 구절을 붙잡는다. 그동안 전공자들 중에서도 예술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반대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꿈을 붙들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들도 봤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나' 자신 자체를 사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타인을 만족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닌, 행위 자체를 사랑하는 모습 말이다.
위대한 결과물을 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겠지만, 그 과정 자체의 재미와 즐거움만으로도 인생이 얼마나 풍요로워지는가. 어른이 되어갈수록 겁이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두려움에 맞설 용기가 필요하다. 나 역시 이렇게 끄적이는 것으로 내 마음에 두려움을 직면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위대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토닥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