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휴대폰에는 한국과 홍콩 SIM 카드 두 개가 꽂혀 있다. 외국에 나와 있어도 한국에서 필요한 업무를 위한 본인 인증은 대부분 휴대폰으로 하기 때문에 한국 번호를 살려 뒀다. 한국 번호로는 도통 전화 오는 일이 없는데 근래 몇 주간, 대통령 후보라며 허경영 씨에게 전화가 왔다. 경쾌한 한국말이 얼마나 낯설게 느껴지던지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살포시 '종료'버튼을 눌렀다.
그 후로, 한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자연스레 받지 않고 있었다. 같은 번호로 몇 차례 오는 전화가 있어서 받으니, 'xx 초등학교'란다. 첫 째 아이가 한국 나이로는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가 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이미 초등학교 2학년인데 입학 관련 전화를 받으니 외국살이가 실감이 난다.
올해 한국에 들어가긴 하지만 다시 출국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하자, 취학 면제 신청서 및 여러 서류를 작성해야 한단다. 그래야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재입학이 가능하다고 한다. 담당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앞으로의 인생이 막연하게 느껴진다.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잘 되질 않는다.
혼자였을 때는, 여행자처럼 사는 인생이 좋았다. 배낭 하나만 있어도 살아지는 인생이라 좋았다. 예측불허의 삶에 나를 맡긴 채, 가볍게 떠나고 쉽게 정착하며, 적당히 회피하고 때로는 책임지며 살았다. 결혼 후, 자녀가 생기니 어디든 뿌리내리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더 강해지는 듯하다. 아이들의 학교 문제, 언어문제에 대한 고민은 어느덧 내 삶의 동반자가 되어 있다.
다시, 길 위에 서 있다. 끝없이 펼쳐진 길을 바라본다.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도 있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풍경과 길 위에서 만날 수많은 만남들에 대한 기대감을 품어본다.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되길 원한다. 방황을 멈추지 않길 원한다. 흔들리지 않는 것에는 '생명'이 없지 않은가.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굳어진 건물을 소유하는 것이 나의 꿈이 되질 않기 원한다. 끊임없이 길 위를 걷는 쪽을 택하고 싶다.
길을 잃더라도 이내 나를 다시 찾아줄 목자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그 너른 품 안에서 마음껏 길을 잃고자 한다. 수많은 변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 또한 길을 걷는 자의 특권이라 여기려 한다. 삶의 고단함도 금세 잊게 해 줄 만큼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