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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초 Jan 24. 2022

무명이란 무섭다

홍콩, 햄스터 2000마리 살처분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 친구네 가족이 코로나 격리 수용소에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키우던 햄스터 때문이란다. 며칠 전, 홍콩 코즈웨이베이의 한 애완동물 가게에서 2명의 직원과 햄스터 11마리가 델타 변이에 감염되었다고 한다. 예방적 조치로 해당 가게에서 지난 7일 이후 동물을 데려간 약 150명이 의무 격리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친구네 가족도 그 150명 중의 속해 있던 모양이다.


   지난해 12월 22일 이후 구매한 햄스터는 모두 당국에 넘기라고 했고, 2,000마리의 햄스터는 안락사를 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햄스터가 사람에게 코로나19를 옮겼는지, 거꾸로 사람이 햄스터에게 전파했는지는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2,000마리의 햄스터가 살처분되어야 한다니. 또한,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온 것이 아님에도 21일을 격리 수용소에서 지내야 한다는 소식은 꽤나 충격적이다. 정부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작은 동물에 대한 부당한 안락사를 막아달라”는 청원에 2만 명 가까이가 동참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로 뉴스나 신문에서 접하게 되는 숫자들은 개인의 고유함을 쉽게 잊게 한다. 오늘도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렸구나 혹은, 죽었구나 덤덤한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내 주변의 지인이 코로나로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든지, 부모님이 위독하셔도 격리 면제를 받기 위해서는 사망진단서를 받아야만 고국에 돌아갈 수 있다든지, 코로나에 걸린 사람과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격리 수용소에 갔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숫자 안에 얼마나 고유한 인생들이 담겨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햄스터를 당국에 인계하고 울음을 터뜨린 시민의 사진이나, ‘끝까지 너를 사랑할게’라는 아이의 쪽지가 함께 놓인 햄스터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말 못 하는 동물이라지만 너무 가혹한 처분이 아닌가 싶다. 반대로, 무서운 마음에 키우던 햄스터를 숲에 유기하는 일들도 생겨나고 있다. 아무리 엄격한 통제 속에서도 끊임없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무명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무명이 되는 순간, 존재의 무게가 쉬이 가벼워지는 듯하다. 무명으로 처리된 수많은 숫자 안에 얼마나 많은 관계들이 얽혀 있으며, 상실의 눈물이 서려 있을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내 삶에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때 문제의식은 생겨난다. 개인의 고유성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일이야말로 ‘생명’과 연결되는 일일 것이다. 지인의 소식이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사건이 내 삶을 멈춰 서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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