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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초 Sep 10. 2021

D.P. 리뷰_스포있음

1953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남자들이 군대 얘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너무도 충격적인 기억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의 해병대 훈련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곤 했다. 그만큼 현실성 없는 얘기 같이 들렸다. 상식을 벗어난 시공간이 현실이 되는 곳이 군대인가 보다.


   D.P란, 탈영범을 잡아오는 역할을 수행하는 군인이라고 한다. 이런 보직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뉴스에서 탈영범들의 기사를 접할 때면, 사회 부적응자이거나 민간인을 해칠 것만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탈영범들의 사연을 보며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D.P>는 탈영범에 대한 인식을 넘어 군대조직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폭력의 문제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계질서 속 과잉충성이 당연시되는 문화와 집단주의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디 군대 조직뿐이겠는가. 군대에서 이런 스킬들을 배워 사회에 나와 적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폭력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곳이 많다.


  드라마에는 엄마를 때리는 아빠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안호준(정해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본인이 직접 맞지 않지 않았어도 지켜보는 입장만으로도 학대를 경험하게 된다. 군대에 특정 피해자가 있겠지만, 그 폭력의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군인들이 방관자이자 피해자가 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유일하게 서열 놀이를 하지 않는 한호열(구효완)의 역할이 없었다면 너무 끔찍해서 보기 힘들었을 것 같다. 숨통이 되어주는 역할에 고마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한호열이 뭔가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야기는 끝까지 처절하게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가혹행위들이 묘사될 때마다 부디 일반적이지 않는 일이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일반적이지는 않을 수 있어도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직시해야 했다. 올해 여군 중사의 자살 사건만 보더라도 할 말을 잃게 된다. 더 분노하게 되는 것은 개인의 안위와 사적인 이유들로 중대한 사건들이 묻히고 있다는 것이다.


  황 병장은 제대 후 사회에 나가서는 본인도 약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편의점 알바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군대에서가 좋았는데'라는 대사를 들으며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한 사람의 삶을 망가뜨려 놓고도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모습에 분노했다.


  평범하다 못해 너무 착한 사람이었던 조석봉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괴물처럼 변해간다.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던 '봉디쌤'(석봉 간디)은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조차 자격이 없다 느낄 만큼 군대에서 깊은 수치심을 경험했다.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을 택한다.


  나라를 지키러 온 군인들이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고 동료도 지키지 못하는 우스운 꼴이 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1953'이 적혀 있는 6.25 때부터 쓰던 수통이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는 지적처럼 어떤 변화도 꿈꿀 수 없는 곳일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의 피가 쌓여야 할까. 안보와 보안은 지켜져야겠지만, 군대 안에서의 인권의 문제가 끊임없이 논의되고 조금 더 투명한 사회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마지막 장면에 모두가 가는 길을 택하지 않는 안호준의 걸음처럼 거꾸로 가고자 하는 용기 있는 선택들이 많아지기를 꿈꿀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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