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날마다 뉴스를 통해 전해진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며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의해 점령되었다. 미처 떠나지 못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탈출러시를 강행하고 있다.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공항의 모습 속에 그 긴박감이 느껴진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던 1996~2001년의 기간은 ‘인권 암흑기’로 불린다. 당시 12세 이상 여성들은 학업, 취업을 비롯한 모든 사회적 활동을 금지당했다. 모든 여학교가 폐쇄됐고, 남자 보호자 없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외출을 할 수 없었다. 외출할 때는 반드시 부르카(눈 부위가 망사로 된 이슬람 여성들의 전신을 덮는 의상)를 착용해야 했다.
애니메이션 <더 브레드위너>에서는 그 당시의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데보라 엘리스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사실에 기초한 소설을 쓰고자 저자는 파키스탄 국경의 아프간 난민촌에서 수개월을 보내며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탈레반 통치 아래 살아가는 11살 소녀 ‘파르바나'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여성과 아동의 인권 침해의 현장을 묘사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진행하는 구조를 지닌다. 파르바나는 부당하게 탈레반에 잡혀간 아버지 대신 남장을 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위험을 무릅쓰고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여정이 펼쳐진다. 파르바나는 가족들과 친구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아름다웠던 땅에 괴물들이 찾아와 씨앗을 빼앗아가지만 그에 용감히 맞서는 소년의 영웅담이 삽입되어 있다.
파르바나의 아버지는 실크로드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딸에게 "하나의 이야기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다른 건 잊어도 이야기는 마음속에 남는다"라는 가르침을 준다. 아버지의 말처럼 현실의 이야기와 상상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맞물려간다. 아버지를 찾게 되는 위험한 순간을 괴물을 맞서 싸우는 장면으로 대비한다. 차마 보기 힘든 괴로운 장면들을 잠시 허구의 이야기로 느낄 수 있는 장치가 있어 숨을 고르게 된다.
괴물과 맞서는 장면에서 소년은 진실한 이야기를 통해 괴물을 달랜다. 반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외치는 소년의 외침 속에서 자유를 빼앗긴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괴물도 결국 그 진실한 이야기 앞에서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역시, 종교와 이념이라는 굴레로 폭력과 억압에 놓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진실한 이야기가 괴물을 달랠 수 있었던 것처럼,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이 폭풍과 같은 이 시간들을 잠재울 수 있기를 바란다. 파르바나가 이야기의 결론을 맺고 있지 않지만 그 소년은 씨앗을 가지고 다시 마을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린 사람이 가장 보물인 땅이다 우리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제국들 사이에 있다 우린 힌두쿠시산맥 기슭 안 균열된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