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홍콩에 와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2층 버스였다. 저상버스여서 바닥이 낮고 휠체어 경사판이 있다. 1층 전면에는 휠체어나 유모차를 갖고 탈 수 있고, 1층 후면에는 좌석이 많지 않아 가까운 거리를 가는 사람들이 앉게 된다. 2층에는 멀리 가거나 전망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탄다. 100명가량 탈 수 있어서 정류장에 아무리 긴 줄이 있어도 버스에 타기 시작하면 금방 줄이 사라진다.
한국에서는 버스정류장에 휠체어를 타고 기다리는 사람을 보기가 어려웠다. 전국 시내버스의 28.8%만 저상버스라고 한다. 보급률도 낮지만 탑승 과정이 불편하고 탑승 시간이 오래 걸려 이용률이 낮다. 홍콩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버스로 이동하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때는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20년 전 70대 부부가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리프트를 타고 지상역사를 올라오다 쇠줄이 끊어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오이도역 추락 참사’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본격화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시위를 하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하기가 어려워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지만 그것마저도 출퇴근 시간에는 몇십 분에서 몇 시간을 기다릴 때가 많다고 한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부모가 자식보다 딱 하루만 더 사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데는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너무 퍽퍽한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녀 양육의 최대 목적은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라 했던가. 이 간단한 명제를 실제로 적용하기란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자녀를 세상에 내보내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모든 게 처음인 엄마는 서툴고 불안하다. 그래도 언제까지 부모가 옆에서 도와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스스로 해보도록 끊임없이 연습시킨다.
장애가 없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도 이러한데, 하물며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어떠할까. 제도적으로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장애도 있지만 남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장애도 있다.장애를 갖고 산다는게 사회적 차별로 인한 불편한 삶일 수는 있어도 존재 자체가 불쌍한 삶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에서 장애인을 만날 때면 불쌍하거나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홍콩에서 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보며 인식이 바뀌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특별대우받는 사회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섞여 살아가는 게 어색한 일이 아니었으면 한다.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으로부터, 편의 시설 이용에 있어서 보다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까. 우리 모두가 이전과는 다르게 관계 맺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