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도 세뱃돈 문화가 있다. 작고 예쁜 디자인의 빨간 봉투(홍바오, 红包)에 세뱃돈을 넣은 것을 라이씨(Lai See, 利是)라고 부른다. 라이씨는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직장 상사가 직원들에게, 결혼한 사람이 싱글인 사람에게 주는 것이 관례이다.
한국과 다른 점은 아파트나 회사 건물의 경비원분들, 청소하는 분들, 식당이나 슈퍼마켓, 미용실에서 서비스를 해주시는 분들에게도 라이씨를 드린다는 것이다. 가족들 사이에서는 라이씨에 더 많은 돈을 넣어 주기도 하지만, 서비스직에 계신 분들께는 한국 돈으로 3천 원 정도를 넣어 새해 인사를 나눈다.
홍콩에서 처음 설을 맞이했을 때, 일 년을 편하게 지내려면 경비원분들에게 라이씨를 잘 전달해야 한다고 지인에게 조언을 듣기도 했다. 경비원분들과 관계가 좋아야 불편한 일들도 잘 처리해준다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낯선 풍경이기도 했으나, 참 좋은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경비원분들에게 라이씨를 건네며 평범한 일상이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나와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관계들도 실은 함께 삶을 이루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홀로' 살아가는 듯해도, 각자의 자리를 어김없이 지키고 있는 누군가의 성실함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매일 마주치고 얼굴을 아는 사이임에도 다정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따뜻한 인사 한 마디 나누지 못했던 적도 많았구나 싶다.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는 애달파하면서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낯빛은 살피지 못했던 적도 많은 듯하다.
어쩌면 온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 더 쉽지 않나 싶다. 대개 관념 속에 갇혀 있는 인류애적인 사랑을 하며,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던 것은 아닌지. 느낌만 있고 구체적인 실천은 없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를 돌아보게 된다.
설 연휴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라이씨를 건네며 눈을 마주치고, 말을 섞고, 덕담을 나누는 순간들이 참 좋았다. 작고 빨간 봉투를 주고받으며 따뜻한 마음이 오간다. 낯선 타지 생활에 매일 마주치는 익숙한 얼굴들로 인해 많은 안정감을 누렸었구나 싶다. 내 곁에 있는 구체적인 타자의 존재가 참 감사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