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란초 Jan 31. 2023

원어민 교사가 되다

원어민 교사가 되었다. 10년 가까이 외국살이를 하며 한국어 실력과 외국어 실력의 위협을 받아왔다. 한국어 단어는 종종 생각이 나질 않고, 다른 언어의 단어는 당연히 생각이 나질 않는 0개 국어의 위기를 잘 넘겨왔다. 외국에서 두 자녀에게 한국어를 전수했던 노력을 가상히 여겨 준듯, 난 이곳에서 한글학교 교사가 되었다.


   한글학교의 대부분은 한국 학생이다.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한국에서 온 아이들이다. 1세대와 2세대 사이에도 큰 스펙트럼이 있다고 한다. 중학교 때 오면 1.3세대, 고등학교 때 오면 1.2세대,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따라온 자녀들은 1.5세대,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2세대가 된다.


   내가 맡게 된 아이들은 4세~9세 아이들이다. 1세대도 2세대도 아니다. 다문화 가정이거나, 할머니가 한국분이시거나, 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려고 오는 아이들이다. 한마디로, 한국말을 아예 모르는 상태의 아이들이다. 백지와 같은 아이들, 한 번도 밟지 않은 흰 눈이 가득한 풍경같이 한국어의 지식이 새하얗고 깨끗하다.


   똘망똘망했던 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먼 곳을 응시하며 내게서 멀어진다. 내 말이 한 귀로 들어왔다 한 귀로 나가는 것이 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애를 쓰며 재롱을 부리는 나를 불쌍히 여기고 조금씩 따라 해주기도 한다.


   '안녕, 친구들'이라는 말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한참 로딩을 마치고 돌아온 대답은 '안녕하세요, 선생님' 대신에 '안녕, 혜연'. 동방예의지국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말인지라, 웃음이 난다.


   아이들과 같이 그려갈 이번 한 학기가 기대가 된다. 한국말도 열심히 가르치겠지만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즐거운 시간으로, 어떤 말도 용기 내 말해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아이들의 하얗던 종이에 따뜻한 색들이 채워져가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홍콩의 세뱃돈 문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