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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주 Apr 13. 2024

지하철의 노인

지하철에서 한 노인이 옆자리에 앉자마자 불쑥 물었다. “여기가 무슨 역이에요?” 합정역이라고 대답했다. “디지털역까지 얼마나 가야 돼요?” 디지털역이라는 곳은 없지만 멀지 않은 데에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이 있으니 그곳을 가리키는 것이겠지. 나는 출입문 위에 걸린 노선도를 쳐다보며 네 정거장 남았다고 대답했다.


“디지털역에서 인천으로 가야 되는데.” 인천까지 가는 길을 알려달라는 뜻인가 해서 지하철 앱을 열어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인천 방향으로 갈아타는 노선이 있는지 확인했다. 일단 맞는 것 같았다. “아까 디지털역을 깜빡 지나쳤지 뭐야.” 길을 모르시는 건 아니었고. “디지털역에서 제때 내렸으면 벌써 갈아탔을 건데.” 대답을 하기도 안 하기도 애매한 말을 노인은 계속했다. 나는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정거장 더 가자 다시 질문이 날아왔다. “다음이 디지털역이에요?“ 노인의 상체가 내게 바짝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좀 전에 네 정거장 남았다고 말씀드렸지 않나. ”아뇨, 아직이요.“ 노인을 쳐다보지 않고 대답했다. 대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이런 경우, 낯선 이에게 불쑥 무언가를 (맡겨놓은 듯) 묻고는 한 번 대답을 들으면 계속 더 물어봐도 된다고 여기는 어떤 느슨함에 대한, 그러면서도 아무 인사조차 없이 돌아서는 무심함에 대한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이 스친다.


”요즘 지하철이 복잡해서.“ 혼잣말인 듯 아닌 듯. “그래도 지하철이 빨라.” 뭔가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편하지 않아서 나는 “역에 도착하면 제가 알려드릴게요” 하고 다시 핸드폰을 봤다.


굽은 등, 짧게 자른 하얀 머리, 짐이 가득 든 배낭. 쉽지 않으실 것 같다. 여기서 인천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노인의 육체적 고단함에 생각이 미치자 가벼운 후회가 일었다. 좀 더 친절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떤 매너의 문제에 대해 꼭 예민할 필요 없었을 텐데. 내릴 역을 한 번 놓쳤으니 조바심이 나셨을 수도 있다. 그러니 자꾸 반복해서 물어보셨을 수 있다. 아니면 그저 먼 길이 좀 무료해서, 옆에 앉은 사람과 몇 마디 주고받고 싶으셨을 수도 있다. 그런 마음이 요즘엔 보통 '무례'가 되는 것 같지만, 언제나, 100퍼센트 무례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 증거를 본 적이 있다.


기억하고 싶어서 핸드폰에 메모까지 해두었던 장면이다. 그러고 보니 이 또한 지하철에서의 일이었다. 다음은 메모 내용.


<서로 모르는 할머니 두 분의 대화>

“(대뜸) 볼터치도 하시고 젊으시네.”

“(반색) 젊어 보여요?”

“고우셔 아주.”

“몇 살로 보여요?”

“칠십다섯?”

“여든둘이에요. 호호.”

“젊으시네.”

“고생을 안 해서 그래요.”

“바깥양반이 속 안 쎅이구?”

“응응, 잘해주구.”

“그래서 젊으시구먼.”

“생전 속 안 썩였지.”

“에구, 나 내려야 되네.”

”에구, 가셔야 되네.“


세상에는 느닷없이 시작되고, 또 느닷없이 끝나는 대화가 존재한다. 배낭 멘 노인도 그저, 저런 대화법에 익숙한 분일지도 모른다.


‘디지털역‘이 한 정거장 남았을 때 노인에게 말했다. “다음에 내리시면 돼요.” 노인은 출입문 쪽을 쳐다보며 배낭을 고쳐 멨다. 어쨌든 이분에게, 실례했다거나 감사하다는 말 같은 건 듣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때 노인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예상은 틀렸다.

 

심지어 행복을 당부받았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내가 아는 것을 몇 개 대답해주었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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