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Alcoholic Anonymous
“내 친구들이랑 같이 저녁에 바비큐 파티할래? AA친구들이야.”
혼자 LA로 여행을 떠난 지난 3월. 우연히 친구가 된 에린과 브라이언.
AA가 뭐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축약어.
Alcoholic Anonymous.
나도 잘 모르겠다. 외국인들을 생각하면 무조건 우리나라보다 술과 마약을 더 심하게 하고, 강하게 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alcoholic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거부감이 생겼다. 한국에서도 술 마시는 걸 즐겨하지 않는데, 왜인지 여기서 술을 마신다면 정말 무섭도록 심하게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는 장면이 떠올라서였을까. 그래서 몰래 구글에 aa를 검색해봤다.
그렇게 나는 AA를 처음 알게 되었고, 지금은 누구보다도 AA사람들에게 많이 기대고, 친구가 되었다.
술과 마약 중독으로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SOBER' 건강하고 투명한 정신으로 사는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인 공동체.
그래서 내가 우려했던 것과는 정 반대로, AA사람들은 술을 손에도 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 사람들은 술이, 마약이 그들에게 얼마나 힘들고 비참했던 삶을 주었는지 그들의 온 삶으로 느끼고 그 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에, 술 한모금도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실 난 잘 모르겠다.
상상을 할 수 조차도 없다. 내가 만나고 있는 이 사람들이 한 때는 모두, 알콜중독자, 마약중독자였다는 사실을. 내 마음 속에 형성된 알콜중독자의 모습은, 폭력과 배타적인 모습들로 가득하니까. 어떻게 물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내가 내 친구들에게, 과거를 묻는 게 실례는 아닐까, 아픈 상처를 들춰내는 과정이라 무례하진 않을까?
다행이도 내 친구들은, 흔쾌히 그들의 인생을 공유해줬다.
정현종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명 환대가 될 것이다.”
친구들이 모닥불 앞에 앉아,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 들려준 이야기는 실로 어마어마 했고, 정말 내가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 인생의 이야기를 들으니, 영화 속 한 장면 장면들을 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눈뜨고 보니 난 거리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어느 날은 빌딩 안의 엘리베이터에서, 또 어떤 날은 주인 없는 폐가에서. 어느 날 정신차리고 보니, 하고 있는 일이라곤, 먹는 것 자는 것 구걸하는 것 마약하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가족도 잃고, 자존감도 잃고 모든 걸 잃었다. 그랬기에 그 힘든 현실을 잊기 위해 마약이 더 필요해졌다. 그래서 감히 일반 사람들이 이름 들어서 알 수 없는 온갖 종류의 마약을 다 했다.
그렇게 5년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food bank에 가게 되었고, 거기서 정말 필요한 음식들을 얻어 하루 하루를 겨우 겨우 살아갔다. 그리고 약물들이 나를 더 이상 지탱해줄 수 없는 날이 와버렸다. 죽음 밖에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마약을 해도 해도, 공허함과 허전함, 외로움, 내게 아무것도 없다는 그런 사실들을 잊을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와버렸다.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삶이 너무나 간절했고 그리웠다.
그러나 정말 하나같이 다 모조리 잊어버렸다. 어떻게 사람들과 어울리는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돈은 어떻게 벌 수 있고, 내가 지낼 집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지. 정말 ‘사회생활’하는 방법, 그 자체를 모두 잊어버렸다. 갓 태어난 아이처럼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래도 여전히, 죽음을 택할 때 맞서야 하는 두려움보다 사회생활을 다시 배울 때 느낄 무기력함과 좌절감이 훨씬 쉬워보였다. 그렇게 AA에 마지막 희망을 잡아보려는 마음으로 갔다. 그랬기에 거기서 가르쳐준 12가지 스텝을 정말 온 힘을 다해 따랐다. 그리고 지금은 배관공으로 일을 하고, 내 가족들에게 부양비도 달달이 보내주고, 내 집도 있고, 이렇게 친구들이랑 캠핑을 다닐 여유도 생겼다. AA는 내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준 사람들이다.
그래, 난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특권을 쥐어 잡은 백인이야. 근데 난 내가 백인이라는 게 참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 난 백인이니까 다른 인종 사람들보다 직업을 얻기 쉽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도 면죄부를 받는 게 절대 아닌데, 나 같은 평범한 백인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일탈을 했어. 매일 울타리 너머, 지금은 로스앤젤레스 번화가가 되어버린, 하지만 그때는 넓게 펼쳐진 밭에서 매일 밤마다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고, 술을 마시고, 마약을 했어. 그렇게 내 아픔들을 치유했어. 아니, 사실 지금 생각하면 치유가 아니지. 일시적인 망각 상태를 만들려고 했던 거지. 내가 입양아라는 사실, 또 깨져버린 가정, 엄마의 2번의 재혼, 그리고 부모님의 알콜 중독. 어린 내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큰 짐들이었으니, 해결책을 찾기보다 일시적인 탈출구를 찾았던 거지. 그렇게 나는 마약에 내성이 생겼고,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양들이 필요해졌어. 그렇게 내 삶은 마약으로 채워진 날들로 가득했고, 어느 날 마약으로 내 삶을 지탱할 수 없는 날이 왔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행복해지고 싶었어.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기를 간절히 원했어. 그런데 어떻게 하는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더라. 그러다 우연히 AA사람들을 만났고, 그 중에 내가 알던 친구 한명이 마약 중독이었을 때 그 얼굴 표정과는 너무나 다른 환한 얼굴로 웃음을 띄고 있을 때, 결심했어, 나도 할 수 있다고, 그리고 꼭 해야만 한다고. 내 남은 인생을 위해. 그리고 술과 마약을 그만해야겠다는 강한 신념으로 AA 12가지 스텝을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따랐어. 그리고 술과 마약 안 한지 21년이 되었어.
그래서 더 대학생들, 고등학생들이 파티에서 술 마시고 마약을 하는 게 너무 걱정이 돼. 나랑 관련 없는 사람들이지만, 마약과 술에 중독되면 정말 얼마나 절망적이고, 벗어나기 힘든지 누구보다 정말 뼈저리게 경험했고, 극복해냈으니까.
혹시 너 마약 시도한 적 한 번도 없지??
_응, 한 번도 안 했어. 엄마랑 약속했어. 유학생활 하는 동안 절대로 마약에 손대지 않겠다고.그리고 원래 술이나 마약 무서워서 좋아하는 타입 아니야. 소심해서 손도 못 대.
_나의 소심한 답변.
AA는 총 12단계로 이루어져 있고, 12달까지는 작은 동전(?)처럼 생긴 칩을 준다. 거기에 그 달에 맞는 글귀가 쓰여 있다. 그리고 AA를 시작하면, 나만의 신을 정해야 한다. 하느님/하나님/부처님/알라 혹은 내가 의존할 수 있는 그 무언가 아무거나, 자기 집 강아지여도 좋고 정말 내가 의존할 수 있는 절대적 존재. 그리고 그 신에게 많이 의존하며, (사실 결국엔 자기 의지인 것 같다.) 12스텝을 헤쳐 나간다. 거의 매 주에 한 번씩 모여, 자신의 사례를 공유하고, 또 성공적으로 술과 마약을 끊은 지 오래 된 선배와 이제 갓 들어온 후배를 한명씩 Sponsor관계로 짝을 지어주고, 그렇게 개인적으로 또 도움을 받기도 한다.
AA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년월일로 생일을 지내지 않고, SOBER 즉, 술을 마시지 않은지 얼마나 되었는지, 그 날짜를 기준으로 생일을 샌다. 그들에게 술과 마약으로 가득 채워졌던 삶에서 지금의 삶은 새로 선물 받은 정말 소중한 인생이 되어서였을까.
AA사람들과 지내면서,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우리 사회에는 AA가 없다는 게 아이러니 했다. 있긴 있다. 그러나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주를 이루고, 한국인이 참여한 케이스는 아직 못 보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다른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도, (서울을 여행하고 온 대다수의 내 외국인 친구들이 말하기를,) 술 정말 많이 마시는 사람들, 그리고 그 다음날 정말 멀쩡하게 새벽부터 출근하는 사람들. 이라고 정의 내려져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정말 여기 사람들 못지않게 술을 많이 마시고, 술 중독으로 고민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을텐데 혼자 힘으로 헤쳐 나가기엔 너무나 현실이 가혹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AA사람들이 정말로 멋있는 건, 노숙자에서부터 캘리포니아주 판사까지 정말로 사회 계층에 상관없이 누구나 술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 모여 고충을 나누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그리고 실제로 함께 캠핑을 가는 AA친구들은 정말로 다양하다. 노숙자였던 사람부터 대학교수, 판사, 회사원, 디즈니랜드 친환경 엔지니어 등등 정말로 다양하다. 그리고 정말 서로가 평등하다. 본받고 싶은 점이었다. 고난으로 뭉친 사람들이라 정말로 끈끈하고, 서로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 것 같았다.
미국 사회 내에서도, AA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당연히 존재한다. 몇몇 사람들은 “술 중독과 마약 중독을 사람 중독으로 바꾼 것 일 뿐이지. 중독자는 마찬가지이다.” 라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왜 그런 비판이 나왔는지 이해가 가긴 한다. 술을 끊기 위해 서로 고민을 나누고, 해결 방안을 찾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많이 의존하고, 그래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보통 취미를 공유한다. 내가 만난 친구들은 “캠핑”을 취미로 모여, 술과 마약 생각이 더 이상 나지 않도록 바깥 활동을 많이 한다. 내가 볼 땐 정말 건강한 중독인데. 캠핑 중독이라면. 나도 잘 모르겠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_
AA사람들이 얼마나, 그 용기가, 노숙자에서 평범한 삶을 살기까지 겪어야만 했던 그 난관들을 이겨낸 굳건함이 참 대단해서, 우리 사회에도 AA와 같은 단체가 활성화되고, 서로의 아픔과 고난을 함께 이겨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함께 BIG SUR로 캠핑을 간 날, 난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맥주 한 캔을 들고 갔는데, 맥주 한 캔 마시는 내 모습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 다들 괜찮다고 했지만, AA사람들 앞에서 술을 마시는 내 모습이 참,, 어색했다.
Writer, Gabi Kim, Santa Barbara 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