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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Dec 01. 2023

칼포퍼, 밥제솝, 그리고 나의 비판

데이비드 하비에 대한 반론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마르크스가 지식인 사이에 엄청난 인기 스타라는 점이에요. 그의 이론을 정치에 활용하면 공산주의 국가가 되고, 문학에 적용하면 좌파 문학 이론(게오르그 루카치 '소설의 이론' 같은 책이 고전입니다. 일본에는 '가라타니 고진'이 있죠.)이 되고, 철학에 적용하면 비판철학과 같은 근사한 철학(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하버마스)의 체계가 되고, 심지어 최근 현대미술 작품을 활용하는데 있어서도 마르크스의 개념이 곳곳에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예를 들면, 어떤 미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노동’이 ‘소외’되는 현상을 다뤘다고 하는데, 이 내용은 사실 ‘정치경제학 수고’의 요지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는 엄청나게 안티(antagonist)도 많아요. 그리고 냉소주의자도 많죠. 이 책에도 아주 자주 언급되는, 불세출의 천재 경제학자인 케인즈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어보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한 큐에 깔아뭉갰다고 하죠.


칼 포퍼라고 하는 유명한 과학철학자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을 통해서 헤겔, 마르크스를 혹독하게 비판하죠. 과학철학자인 칼 포퍼는 과학이란 비판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하는데 헤겔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비판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공산주의 세상은 ‘닫힌 사회’이고, 그 반대에 비판 가능성이 열려 있는 ‘열린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말합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로 유명한 칼 포퍼(과학철학자, 출처 나무위키)



사실 칼 포퍼의 저서는 과학철학이라는 측면에서 읽어 볼만 합니다. 그의 과학철학에서 과학의 요체는‘반증가능성’(falcifiability)여야 하며, 마르크스의 이론은 반증가능성이 없다고 비판하죠.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에요.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비마르크스주의자와 대화는 때때로 싸움이 되기 쉽습니다. 처음에는 건전한 토론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믿음’의 영역으로 가버리기 때문이에요. 마르크스주의자는 말합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양극화는 해결될 수가 없어. 노동자들에게 급여를 죽지 않을 만큼 조금씩 올려주면서 혁명을 막아낼 뿐이지.” 이런 말을 들은 비마르크스주의자는 발끈합니다.


“네가 좋아하는 공산주의는 현실에서 다 망했잖아. 너 쿠바 가서 살고 싶냐, 아니면 미국 가서 살고 싶냐?”

마르크스주의자가 다시 발끈합니다.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자본가들이 만들어 놓은 철학을 숭배하도록 교과서가 가르쳤기 때문이야. 사실은 가난한 쿠바 사람들이 빈부격차에 시달리는 미국 사람들보다 행복할 수 있어.” 비마르크스주의자는 어이없어 합니다. “이 정도면 종교다, 종교.”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씩씩거립니다. 칼 포퍼는 이런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대화를 해보고,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없다고 직감했던 것 같습니다.


글로 옮겨 놓고 보니 정말 유치하네요. 이런 대화가 현실에 없었을까요? 저는 수십 번 들어봤어요. 때로는 저는 마르크스의 편이 되어 보기도 했고, 반 마르크스의 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만약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고 한 번 상상해보세요. 끔찍한가요? 마르크스주의자는 항상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선입견이 대단하기 때문이죠.


하비 교수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Marxist)라고 부를 때 굉장히 불쾌하다고요. 심지어 마르크스도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 바 있어요. 이미 다룬 것처럼, 하비는 몇 년 정도 자신이 마르크스의 이론을 가져와서 볼티모어의 주택 재개발 문제를 해석했다는 사실을 숨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정의와 도시를 읽어보면 제대로 숨기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그는 은근히 엥겔스를 언급하면서 기존 도시경제학을 비판하고, 나아가서 ‘쿠바’를 언급하면서 임대료가 없는 도시를 얘기하거든요. 아마 사람들도 그가 마르크스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는 것을 눈치챘을 겁니다. 어쨌든 볼티모어 게토의 도시문제를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에 기대서 설명한 그의 이론은 그럭저럭 들을만 했습니다. 이 내용은 이미 다뤘었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에요. 한 쪽에는 열렬한 마르크스 팬들이 있습니다. 그를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적절하게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르크스 이론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개량주의자(reformist)도 있고, 마르크스가 남겨놓은 ‘가치론’(value theory)과 ‘지대론’(rent theory)를 해결해보겠다고 나서는 사회과학자들도 넘쳐납니다. 그런데 다른 한 편으로는 마르크스는 어쨌든 금기시되어왔던 사상입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더 그렇죠. 코리아는 냉전의 철저한 대립의 상징과도 같은 나라잖아요. 북에는 철저한 1인 독재에 근거한 공산주의, 그리고 남에는 자유주의에 근거한 민주주의 정부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공산주의 사상은 “위험한” 사상으로 치부되어 왔죠.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시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거? 마르크스의 사상을 ‘위험한’ 사상이라고 정부에서 지정하니 사람들은 그 사상에 더욱 매료됩니다. 마르크스는 평생을 공부했기 때문에 그 사상을 다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마르크스 책 한 두 권 읽고 나서 그 사상에 매료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68년 혁명 때 프랑크푸르트 학파, 앙리 르페브르, 마르쿠제 등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학생이 거리로 나왔던 것처럼, ‘80년대에는 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68년 혁명의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한국에서의 운동 역시 한 마디로 성격을 규정하기는 힘들어요. 학생운동 사이에서도 민족해방(NL)이니 인민민주주의(PD) 등 계열이 존재하고, 또 그 사이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논쟁과 토론이 있었어요.


다시 하비로 돌아와 보죠. 하비는 『자본의 한계』를 통해서 매우 독특한 입지를 선점합니다. 하비 교수는 마르크스의 저작을 따라서 읽어가 보고, 그의 역사유물론적 변증법 시각을 익힌 후, 그것을 자본주의와 도시, 그리고 위기 이론의 체계를 정립합니다. 여기에서는 정립(establish)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하비는 마르크스가 써놓지 않은 부분을 그의 시각으로 이론화(theorize) 했기 때문이에요. 이 아이디어가 바로 『자본의 한계』 12장과 13장에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의 요체는 1978년에 하비 교수가 쓴 ‘분석틀’이라는 논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잠깐 떠올려 보시죠. 그리고 조금은 나중 일이지만, 하비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학자가 됩니다.


1978년 ‘분석틀’을 쓰는 시점은 아직 ‘신자유주의’라는 말 자체가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그 뿐이겠어요? ‘세계화’라는 말 자체도 거의 쓰이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나중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겠지만 ‘시공간 압축’(time-space compression)과 같은 간명한 표현은 ‘세계화’를 단숨에 이해하게 하는 마력이 있죠. “이윤율이 저하됨에 따라 자본주의는 여러 해법을 모색하게 되는데, 그것은 ‘공간적 조정’(spatial fix)이다. 시공간을 압축함으로써 회전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얼마나 단순하고 아름다운가요?


역시 나중의 일이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는 또 어떻구요? 데이비드 하비가 다뤘던 ‘의제자본’(fictitious capital)이 일시적으로 위기를 봉합할 것처럼 보이지만 위기가 오히려 지리적으로 이전하면서 확산된다는 그의 이론은 2008년에 가장 극적으로 맞아 떨어집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 학자들 입장에서는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마르크스의 사상 중에서 공간에 대한 이론은 거의 없거나 매우 작고 소소한 부분에 불과한데, 그 부분으로 저렇게 거대한 이론을 만들다니? 1989년 이후 하비는 엄청나게 유명인사가 되었으니 그의 이론에 대해서 여러 비판이 따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죠.

국가 이론의 대가, 밥 제솝(출처: 한국경제)


영국의 유명한 사회학자인 밥 제솝의 『자본의 한계』 리뷰를 간략히 보겠습니다. 참고로 밥 제솝은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국가 이론’의 세계적 대가입니다. 그는 “하비는 마르크스의 방법을 토대로 경제 범주와 위기 메커니즘을 재구성하고 발전시키며, 자본주의적 경제 비판의 중요한 영역을 더 확장하는 데 노력했다.”고 말하면서, 몇 가지 한계를 지적합니다. 첫째는 ‘임금’ 문제에 대한 고찰, 둘째는 국가이론의 부재, 셋째는 무역과 세계시장이론의 간과 등을 지적합니다. 밥 제솝 교수는 국가이론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두번째 지적은 이해할 만 합니다. 무역과 세계시장 이론 역시 하비가 국제경제학자가 아니니 다소 모호한 서술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그런데 ‘임금’에 대한 비판은 다소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비에 대한 비판을 듣다 보면 “이것을 간과했다”, “저것을 간과했다”는 류의 비판이 유독 많아 보입니다. 또한 “마르크스를 오해했다”는 비판도 있죠. 이 글에 싣기 어려울 만큼 날선 언어로 마르크스에 대한 하비의 ‘오해’를 지적하는 글도 제법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누가 제대로 마르크스를 이해했는지 판정을 내려줄 수는 없습니다. 그 판정을 내려줄 사람은 이미 19세기에 하늘나라로 가셨거든요.


하비 교수의 이론은 별처럼 많은 사회과학 이론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설명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이론을 상상한다는것 자체가 오만에 가까워요. 그가 쓰고 있듯이 마르크스는 모든 문제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이 마르크스의 사상 체계를 믿을 수 없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비 교수는 그것을 조금 더 선명하게 정리하고, 선명하게 정리한 체계를 금융, 공간, 위기라는 주제로 가져온 것이죠. 저는 이 시도 자체가 훌륭하고 아름다웠으며, 부분적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저는 데이비드 하비의 이론을 정면으로 내세워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까지 했으니까 하비의 팔로워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전 세계 저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하비를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소비하는 셈이죠.


사실 일반 사람들에게 하비가 비판받는 지점은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경제 교과서에는 마르크스도 나오지 않고, 하비도 나오지 않거든요. 하비 교수의 글이 어렵기는 하지만(본인이 너무 박식해서 그런 점도 있습니다), 논지는 명확하다고 생각해요. 그의 논지는 마르크스주의로 공간정치경제이론을 재정립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다른 마르크스주의자가 성취하지 못한 수준으로 마르크스식의 공간경제이론을 만들고, 대중적으로도 비교적 유명한 스타 학자 반열에 올랐으니 그의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죠.


저는 이런 점을 지적하고 싶어요. 하비 교수의 이론은 부분적으로 앙리 르페브르의 공간생산론에 기대고 있어요. 이것은 하비 교수가 직접 언급하기도 했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1973년 『사회문제와 도시』 때부터 하비의 사상에 대한 르페브르의 영향은 굉장했습니다. 그런데 앙리 르페브르의 공간 생산은 다소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느낌이라면, 하비는 ‘공간 생산’ 개념을 경제에 적용을 시켰어요. 이것도 약간은 쿨한 점이기는 합니다. 그리고 평생 70권에 가까운 책을 쓴 앙리 르페브르보다도 하비의 이론이 많이 인용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 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어요. ‘공간 생산’은 다소 철학적이고 모호한 아이디어였는데, 하비는 다소 과감하게 공간생산의 아이디어를 자본주의 경제를 해석하는 툴로 활용한 것은 아닐까? 덕분에 우리는 공간적 조정(spatial fix)라는 유명한 문구를 알게 된 것이죠. 그런데 유명한 것과 “잘 설명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앞으로 이 이론이 얼마나 설명력이 더 있을지 두고 봐야겠죠.


하비의 저작 중 『자본의 한계』는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중요한 저작입니다. 하비 교수의 사상을 이해하고 싶고, 딱 한달 정도를 투자하고 싶다면 이 책을 한 번 정독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하비 교수의 전성기는 오지 않았어요. 하비 교수의 불세출의 저작이 나오기 까지는 아직 7년의 시간이 더 남아있거든요. 이 이야기는 다음에 더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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