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의 한계'를 한 눈에 읽어보자.
이 글은 "데이비드 하비 가장 쉽게 이해하기"(가제)라는 원고의 일부입니다. 추후 책으로 출간될 내용이니 인용은 하지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이전 글에서 우리는 『자본의 한계』의 서문을 살펴보았어요. 지난 글에서 데이비드 하비가 이 책을 통해서 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았다면, 이 글에서는 남은 서문(introduction)과 목차(contents), 그리고 주요 인용구(quote)을 읽어보면서 『자본의 한계』를 주마간산격으로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주의사항이 있어요.
저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이 글은 절대 『자본의 한계』를 다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혹시나 진짜 데이비드 하비 교수의 생각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원본을 읽어야 합니다. 원본을 제대로 읽으려면 마르크스를 읽어야 한다는 충동이 들 거에요. 이처럼 무엇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이 챕터는 어디까지나 제가 이해하는 수준에서 하비와 마르크스를 다룰 거에요. 이 주의사항은 이 챕터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장에도 적용됩니다.
『자본의 한계』는 총 13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한 번 읽어볼게요.
1장에서 상품, 교환가치, 계급관계에 대해서 다루고, 2장은 생산과 분배, 3장은 생산과 소비, 수요와 공급, 잉여가치의 실현에 대해서 다룹니다. 4장은 기술변화 노동과정 그리고 자본의 가치구성, 5장은 자본주의 생산의 조직 변화, 6장은 (자본) 축적의 동학에 대해서 다룹니다. 7장은 과잉축적과 1차 위기 이론, 8장은 고정자본에 대해서 다룹니다. 9장은 화폐, 신용, 그리고 금융, 10장은 금융자본과 모순에 대해서 다루고 11장은 지대 이론에 대해서 다룹니다. 12장은 공간편성의 생산 자본과 노동의 지리적 이동성에 대해서 다루고, 13장은 자본주의 공간경제의 위기에 대해서 다룹니다.
먼저 이 『자본의 한계』라는 녀석을 크게 세 덩어리로 나눠봅니다. 하비 교수는 서문에서 이미 자신이 어떤 의도로 장을 구성해 놓았는지 친절하게 서술해 놓았어요. 1장부터 7장까지는 기존 마르크스 사상을 요약하면서 시작합니다. 사실 말이 1장부터 7장이지 이 책의 절반 이상이 서론인 셈이에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이야기는 영화로 따지면 『자본론』의 속편이 되고 싶어서 쓴 책이기 때문이에요.
하비 교수의 생각은 “마르크스의 생각을 확장하면 화폐, 금융, 공간, 위기 등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인 듯 해요. 그래서 기존 마르크스 이론을 ‘요약’하는 작업이 필요했던 거죠. 이미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하비가 자신감 있게 1장부터 7장까지로 마르크스를 요약할 수 있었던 것은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몇 년동안이나 『자본론』과 『요강』을 강독했기 때문이었어요.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1장부터 7장까지의 결론이 무엇인가요? 하비는 이것을 1차 위기(‘the first cut’ at crisis theory)라고 말합니다. 무슨 영화 제목 같죠? 1편은 여기까지에요.
1편은 마르크스의 생각을 하비가 논리적으로 재정리한 것이고 그 결론은 1차 위기에 도달합니다. 1차 위기의 핵심은 이미 다룬 바 있는 ‘이윤율 저하’(the falling rate of profit)에요. 저번에 셔츠 팔았던 이야기 기억 나시죠? 셔츠를 팔다보면 아무리 많이 팔아도 가격은 낮아지고 이윤은 줄어들 수 밖에 없어요.
자본주의는 이런 위기를 돌파(fix)해야 하는 불안정한 체계라는 것이죠.
8장에서 10장까지 하비 교수가 한 작업은 마르크스 체계의 연장이에요. 하비 교수는 1차 위기의 설명에서 멈추지 않고, 어떻게 고정자본을 통한 순환으로 이어지는지 설명합니다. 그리고 금융이라는 구원투수가 등장하는 과정을 이론화합니다. 금융은 신용체계를 통해서 가짜 자본(fictitious capital)을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합니다. 여기까지가 하비 교수가 설명하는 2차 위기에 해당합니다.
11장에서 13장은 기존의 이론 틀을 활용해서 위기가 어떻게 공간적으로 확산되는지를 설명합니다. 10장까지 논의가 기존 마르크스 이론으로 어느 정도 추론 가능한 영역이라면 11장부터는 하비 교수가 마르크스의 논의를 공간적으로 확장하여 위기 이론을 ‘자기 나름대로’ 완성을 한 것이죠. 사실 이 장의 아이디어는 이미 ‘분석틀’에서 이미 설명했던 바 있습니다.
2차 위기이론에서 자본주의는 이윤율 저하의 법칙에 따라서 주기적으로, 혹은 갑작스럽게 위기가 찾아올 수 밖에 없는 숙명을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로 극복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도로나 항만의 건설, 그리고 주택과 오피스빌딩의 건설이 그 사례가 됩니다. 이것을 하비는 건조환경(built environments)라고 표현합니다. 이와 같은 건조환경에 대한 투자가 괜찮은 이유는 일반 상품과 생산과 건설주기가 더 길고 회수기간이 길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민간투자사업으로 건설된 고속도로를 한 번 생각해보세요. 건설되는 시간이 최소 몇 년이 걸리고, 통행료로 고속도로의 건설 비용을 회수하는 데에는 최소 수십년의 시간이 들어갑니다. 티셔츠 만 만들어서 팔면 1차 위기를 맞지만,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는 이윤율 저하에 맞서서 자본가가 선택할 수 있는 그럴 듯한 대안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와 같은 해결책은 뜻밖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즉 도시의 물리적 경관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말하는 건조환경(built environments)가 건설되면 자본의 이동 속도가 빨라집니다. 도로가 건설되고 철도망이 구축되면 보다 상품을 빠르게 효과적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동성(mobility)가 강화되는 것이죠. 여기에서 또 하나의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상품의 이동성은 강화됨과 동시에 인프라스트럭쳐, 즉 건조환경은 도시에 고정(fix)됩니다.
그렇게 형성된 공간은 당분간은 기능을 하지만, 새롭게 나타난 위기에 취약한 구조가 됩니다. 하비가 ‘고향’처럼 생각하는 볼티모어는 원래 제조업 도시로 미국의 역사와 함께하는 도시였어요. 미국에서도 제조업이 어느 정도 쇠락하고, 볼티모어의 인구도 빠져나가면서 일부 지역은 ‘게토’와 같은 성격으로 변화하게 되죠. ‘게토’의 경험은 나중에 ‘인종’ 문제라는 방아쇠로 폭발해 버리게 됩니다.
자본주의는 1차위기, 2차위기를 맞으면서 어느 정도 진화해 왔습니다. 케인즈주의는 대규모 건설사업으로 자본주의가 공황을 극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기도 했죠. 그런데 이런 처방은 1970년대부터는 먹히지 않기 시작해요. 여러분들도 너무나 잘 아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기가 온다구? 그럼 정부가 지출하면 되잖아? 이렇게 편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거죠. 1968년 자본주의 호황이 정점에 도달했다면, 1970년대부터는 석유파동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이 있고, 그 이후 1980년대 소위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는 발판이 되죠.
사실 하비 교수가 이러한 상황을 모두 염두에 두고 『자본의 한계』를 구성했는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법도 합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쓰던 19세기 중반은 이제 막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점이었어요. 말하자면 1차 위기가 막 꽃피우는 시기였다는 것이죠. 1차 위기는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라든지, 빈부격차라는 눈에 보이는 명백한 모순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1929년 대공황은 ‘금융’이라는 조금 더 선진화된 자본의 기법에 의해 발발했죠. 자본시장이 붕괴하고,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어요. 미국은 뉴딜정책으로 조금 빨리 기사회생했다지만, 다른 국가에서 공황의 문제는 심각했어요. 공황은 2차대전의 직접적 원인이 되기도 했죠.
3차 위기에 접어들면서 위기는 점점 만성화가 되기 시작합니다. 대공황 만큼의 파괴력은 아니지만, 위기가 여기 저기 공간적으로 전염되면서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는 고도로 발전된 금융상품, 마르크스가 가짜 자본(fictitious capital)에 의해서 촉발되었습니다. 신용부도스왑(CDS)과 부채담보증권(CDO), 합성 CDO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죠.
‘빅쇼트’에 나오는 표현에 따르면, 합성 CDO는 “고양이 똥으로 포장한 개 똥”이죠. 그리고 이 거대한 믿음의 체계를 구축해주는 것은 신용평가기관입니다. 무디스나 스탠다드앤푸어스가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죠.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유럽에는 대대적인 재정위기가 찾아옵니다. 그 때마다 세계 경제는 휘청휘청거렸죠. 이쯤 되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조금은 불안한 측면을 가지고 달리는 기관차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본의 한계』는 이렇게 3차에 걸친 위기 이론을 통해서 마르크스의 이론을 확장, 재정립합니다.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는 성공했을까요? 하비 교수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발판으로 자신만의 공황 이론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여기서 ‘성공’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이론이 공감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그 이론을 인용하면 ‘성공’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본의 한계』는 성공했습니다. 하비는 전 세계에서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저자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하비의 저서 중 그의 사상을 응축하고 있는 이론서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당연히 『자본의 한계』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비는 꽤 공감을 받는 마르크스주의 학자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물론 반론들도 있어요. 이 반론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