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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현 Dec 04. 2023

마르크스가 주식투자를 장려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자본의 한계 1장: 가치론에 대한 배경지식

이 글은 "데이비드 하비 가장 쉽게 이해하기"(가제)라는 원고의 일부입니다. 추후 책으로 출간될 내용이니 인용은 하지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제목만 보신 분들이라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란 생각이 드실 겁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마르크스가 주식 투자를 장려한 적은 없습니다. 그의 인생을 보면 그다지 돈을 버는 데 큰 재능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경제학자 중에서 주식투자를 통해서 돈을 번 사람은 두 명이 유명한데, 리카아도와 케인즈입니다. 그 외에 경제학을 전공한 수많은 학자 중 그다지 주식투자로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자본의 한계』에서 다루는 가치 문제를 한 번 짚어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서 마르크스 사상의 맛을 한 번 볼 필요가 있겠죠. 물론 그의 심오한 사상을 이 책을 통해서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가치론’과 관련된 몇 가지 내용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사고가 어떻게 뻗어 나가는지 잠깐 따라가 보는 것도 지적인 모험이 될 거에요.


가치(value) 문제는 사실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은 문제입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소설에 쓴 유명한 문구가 있죠. “요즘 사람들은 가격에 대해서는 모두 알지만, 가치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지 못하지.”(Nowadays people know the price of everything and the value of nothing.) 이 문장은 ‘가치’와 ‘가격’ 의 흥미로운 관계를 잘 짚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종 ‘가치’는 ‘가격’으로 표현된다고 알려져 있죠. 그런데 ‘가격’이란 우리에게 숫자로 표시된 ‘교환가치’(exchange value)이지 그것 자체가 가치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위에서 주식 이야기를 꺼냈으니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주식을 잘 하려면, 회사의 ‘가치’를 잘 알아야 한다고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자 중 하나인 워런 버핏의 투자 철학을 한 마디로 ‘가치투자’라고 요약하기도 하죠. 말하자면, 어떤 회사는 가치가 있는데, 주식의 가격이 저평가되어 있다면 그 주식은 살만 하다는 것이죠. 아래 그림과 같이 표현해볼 수 있을 거에요. 여기서 그렇다면 ‘가치’를 어떻게 측정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측정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요?

가치론의 역사는 매우 길고, 또 복잡합니다. 누군가 가치론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 사람은 노벨 경제학상은 물론 아담 스미스보다도 유명한 학자로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마침 노동가치론을 경제학의 이론으로 본격 채택한 것은 아담 스미스였어요. 스미스은 가치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구분했고, 교환가치의 척도는 ‘노동’이라고 주장했으며, 교환가치를 ‘화폐’(money)로 나타낸 것이 가격이라고 정의했어요. 사실 교환가치, 사용가치 등의 사고는 이미 고전(classic) 경제학에서 있었던 사고방식이죠. 마르크스 역시 그 시대 선배 학자들이 만든 개념을 사용했어요. 아담 스미스는 노동가치론이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어요.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를 어떻게 책정해야 할지는 역시 물음표였던 거죠.

리카아도는 가치론을 한 번 더 발전시킵니다. 상품의 가치가 ‘노동’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러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기계나 도구 등 고정자본에 투하된 간접 노동 역시 직접 노동과 함께 상품가치에 포함된다고 분석합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예를 들었던 셔츠를 한 번 생각해보죠.


만약 지금 저에게 원단을 사와서 셔츠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10시간을 주어도 만들지 못할 겁니다. 저는 셔츠를 만드는 데 있어서는 ‘비숙련 노동자’이거든요. 그런데, 만약 옷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3시간이면 셔츠 하나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10명이 일하는 셔츠 공장이라면 어떨까요? 설비가 잘 갖춰져 있다면 한시간에 10장을 만들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각각의 경우에 나는 10시간, 옷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은 세시간, 그리고 셔츠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6분(한시간에 10장이므로)이 걸렸어요.


자, 이제 리카아도가 설명해야 하는 문제는 각각의 노동자가 서로 다른 상황에서 어떤 셔츠를 생산했을 때 노동자의 ‘노동시간’ 혹은 ‘노동량’이 어떻게 가치를 만들어내는지 설명해내야 하는 것이죠. 저는 여기에서 ‘숙련도’와 ‘고정자본’(기계)라는 두 가지 변수만 주었어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건은 많고, 그 물건들은 각자 다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져요. 예를 들어, 미술품이 가치를 가지게 되는 과정을 생각해볼까요?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려요. 사람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화가가 죽고 나서, 어떤 유튜버가 기가 막힌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조회수가 폭발한 덕분에 그 화가가 유명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림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림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갑니다. 그림은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서 가치가 올라간 거에요. 그리고 그러한 가치가 생기면서 ‘가격’이 올라간 것이죠. 노동가치론에서 이 상황을 설명하기는 난해해요. 왜냐하면 이미 미술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노동’을 투입했기 때문이에요. 나중에 어떤 사건으로 그림의 가격이 올라간다는 것은 ‘노동’이 아닌 다른 요인으로 가치가 올라갔다고 밖에 말할 수 없어요. 나중에 또 얘기하겠지만, ‘골동품’이 어떻게 가치를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마르크스를 괴롭혔던 문제이기도 해요.


사실 위 사례를 현대 주류 경제학으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현대 경제학의 주류인 ‘한계효용학파’(marginal utility)는 물건의 가치가 소비자에게 주는 ‘한계 효용’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합니다. 사실 한계 효용이라고 하면 말이 어렵지만, 재화 하나가 줄 수 있는 즐거움 라고 생각해보세요(사실 그래서 현대 경제학의 기반은 쾌락주의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에피쿠로스 학파). 그림은 가만히 있었지만, ‘화가의 죽음’, 그리고 ‘다큐멘터리’라는 사건을 만나서 ‘사람의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니 그 물건을 가지고 싶어집니다. ‘효용’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리고 그 ‘효용’은 ‘수요’(demand)를 만들어냅니다.


자, 이 정도면 거의 KO 승 아닌가요? 하지만, 효용학파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사실 ‘가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도 유사해요. 왜냐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사람들의 변화하는 필요에 따라서 가치가 결정된다고 말하는 셈이거든요. 아까 말했던 ‘화가의 죽음’이나 ‘다큐멘터리의 성공’이라는 우연적인 사건으로 가치를 설명해야만 하는 것이죠.


『자본의 한계』 1장은 바로 이 '가치' 문제를 다룹니다. 각주에서 데이비드 하비는 리카아도를 살짝 언급해요. 리카아도는 당대 위대한 경제학자로서 또 다른 경제학자인, 우리에게는 『인구론』으로 유명한 ‘맬서스’와 여러 논쟁을 합니다.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 이후 영국이 대륙으로부터 곡물을 수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곡물법’ 논쟁 이 아주 유명합니다. 이 ‘곡물법’ 논쟁은 추후 리카아도가 세상에 남긴 역대급 이론인 ‘비교우위론’을 만든 계기도 됩니다. 게다가 나중에 데이비드 하비 『자본의 한계』에도 등장하는 지대 이론 역시 맬서스와의 논쟁을 통해서 가다듬어집니다. 대단한 학자들의 토론이었죠!


데이비드 하비에 따르면, 리카아도에게 맬서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당신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가치가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 그건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You say demand and supply regulates value, this, I think, is saying nothing’(quote Meek, 1977, p.158)이라고 말했다고 해요. 하비교수가 이 말을 한 이유는 마르크스가 수요와 공급 법칙을 ‘가치’와 무관한 것처럼 묘사했기 때문이에요. 『자본론』 3권을 인용하면서 마르크스는 수요와 공급 법칙을 부정해 버려요. 수요와 공급만 가지고 자본주의의 생산 법칙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이죠. 사실 이건 과도한 주장이에요. 마르크스는 조금 단언적으로(assertive) 말하는 성격 이었어요. 만약 더 신중했더라면, “수요와 공급도 일부 자본주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지만, 노동가치론이 어떤 측면에서 낫다” 라고 썼을 거에요.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구사하는 화법이죠.


여기에서 데이비드 하비는 마르크스가 리카아도의 의견을 따랐다고 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건 사실과 조금 다릅니다. 리카아도는 이렇게 쓰기도 했어요. “맬서스 선생님(Mr. Malthus)은 상품의 교환가치가 투입된 노동량에 정확히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지금 인정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부정한 적은 없었어요.”(Ricardo, Works, II, 66, 원본) 리카아도는 이미 자신의 노동가치가 상품의 ‘가치’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고 이미 말한 셈이에요. 말하자면,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한계효용학파의 견해를 어느 정도 수용한 셈이죠.


마르크스는 ‘노동가치론’을 밀고 나갑니다. 그래서 그는 노동자로부터 투입된 노동량이 상품의 가치를 형성하고 자본가가 여기에 ‘잉여가치’(surplus value)를 붙여서 상품을 판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어요. 말하자면, ‘공급’(supply) 측면에서 이미 가치가 결정된다고 보았던 것이죠. 사실 이 문제는 마르크스의 저작 전체를 뒤흔드는 문제에요.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이 ‘가치’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노동량과 ‘가치’가 상관이 없다면, 즉 노동가치론이 틀린 이론이라면, 제가 설명했던 이윤율 저하라든지, 착취율 증가라든지 그런 모든 것들을 설명하는 기준이 틀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여기에는 역시 이 짧은 글에서 다 다룰 수 없는 엄청나게 많은 배경과 이슈가 있어요. 하나만 예를 들어 보죠. 농경사회에서 ‘노동가치론’은 그럭저럭 맞았을 수 있어요. 집에 두 명의 노동력이 있는 것과 열 명의 노동력이 있는 것은 아무래도 생산력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죠. 그래서 “사람이 재산이다”라는 다소 낭만적인 설명이 가능해요. 그런데 지금은 실리콘 밸리에 가보면 불과 몇 십명이 일하고 있는 회사가 수백만달러의 매출을 만들어내기도 해요. 그 기업의 가치는 단순히 사람 10명의 노동력 값이 아닌 것이죠. 그래서 노동가치론은 산업사회 이전에나 성립하는 논리라는 말도 있습니다. 물론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은 이 논의를 반론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을 요약하기 위해서 C-M-C라는 짧은 도식을 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가 돌아가는 원리는, 상품(commodity)-화폐(commodity)-상품(commodity) 이라는 것이죠. 여기에서 마르크스는 마법이 일어난다고 생각했어요. 자본가는 C-M-C를 하는 과정에서 슬쩍 ‘잉여가치’(surplus value)라는 것을 통해서 노동자를 착취하고, 그 가치를 자신의 배를 불리는데 쓴다고 생각을 한 것이에요. 그래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이것은 『자본의 한계』 1장에 들어있는 인용구에요.

부자가 되고 싶은 끝없는 욕심은 자본가나 구두쇠(miser)가 동일하다. 그러나 구두쇠는 얼빠진 ‘자본가’이고, 사실 자본가는 현명한 ‘구두쇠’이다. 교환가치가 끝없이 증강(augmentation)하는 과정에서, 구두쇠는 자신의 돈을 ‘순환’에서 꺼내서 저장하면서 부자가 되려고 하지만, 자본가는 끊임없이 ‘순환’에 던져 넣어서 진짜 부자가 된다 (Capital, 1. pp. 152-3, 자본의 한계에서 재인용, 저자 의역).

마르크스가 보기에 ‘화폐’(money)를 그냥 가지고 있으면 손해이고, 자본가는 현명하기 때문에 돈을 자본주의적 생산이라는 ‘순환’(C-M-C)에 집어 넣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죠? 교환가치가 증식하면서, 자본가는 더 부자가 될 수 있죠. 화폐를 사재기처럼 쌓아놓는 사람은 부자가 되지 못해요.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는 끝없이 자본가의 부를 증식시키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생산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어요. 그가 평생 대영도서관에서 『자본론』을 쓴 이유이기도 하죠.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여러분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식에 투자를 하는 것이에요. 마르크스 말에 따르면, 돈을 은행 계좌에 넣어놓고 있는 것은 “부자가 되고 싶지만, 사실 부자가 되는 방법을 모르는 얼빠진 구두쇠”이고, 자금이 생겼을 때 그것을 “자본의 순환”에 투입하는 것이 현명한 자본가죠. 여러분이 주식을 사면 그 회사의 “자본”(주식투자란 말 그대로 회사의 '자본'을 사는 거에요.)을 가지게 되는 것이니 여러분은 작은 자본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식을 투자하다보면, 그 회사의 경영자들이 노동자들의 잉여가치를 열심히 착취해서 나중에 그 주식의 가치가 올라가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자본의 한계』의 내용을 모두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진짜 그 책의 내용을 알고 싶으면 직접 읽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하지만, 직접 읽으면 ‘가치론’에서 하비 교수가 마르크스의 어떤 부분을 방어하고 싶어하는지 잘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에요. 그래서 ‘가치론’ 부분은 약간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요약하자면, 마르크스는 고전학파 경제학에서 ‘노동가치론’을 가져와서 자본주의 생산구조를 설명하려고 노력했고, 그 시도는 충분히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리카아도 조차도 사실은 노동량이 상품의 가치를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노동가치론이 마르크스 경제학 전체를 떠받들고 있기 때문에 노동가치론이 아킬레스건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하비는 가치이론에서 이 내용을 아주 신중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비에 따르면, 마르크스가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이러한 문제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비 교수의 마르크스 가치 해설이 여러분에게 와닿을 수 있을지는 진짜로 읽어봐야 알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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