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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Dec 22. 2019

왜 안 싸우느냐고? 금태섭의 답변은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23 - 국회의원들의 싸움

정치란 원래 투쟁 아니던가
싸움이 뭐가 문젠가 싶지만
효과 없고, 논의 대상 좁히는
싸움에 동의하기 어려워
협치 위해 참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12월10일 저녁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항의 속에 2020년도 예산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금 의원도 가끔은 소리도 좀 지르고 그래. 한번도 나서질 않네.”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에서 여야가 대립하고 서로 고함을 질러가며 충돌이 벌어질 때면 선배 정치인들로부터 가끔씩 이런 핀잔을 듣곤 한다. 사실 옆에서 보면 좀 답답하다는 마음이 들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욕을 먹어가면서 상대방 의원들과 싸우는데 용감(?)해야 할 초선의원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앉아 있으니. 정치인도 때로는 싸워야 할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 싸우지 말고 일 좀 하라는 말은 지역을 다니다 유권자들과 대화할 때 압도적으로 많이 듣는 얘기다. 사실 반박하기도 어렵다.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이후 과거와 같은 날치기나 몸싸움은 보기 어려워졌지만, 주먹이 오고 가지 않을 뿐 다툼이 그치지 않는 것은 예전과 마찬가지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이미 법정 기한이 훌쩍 지난 내년도 예산안 통과를 놓고 여야가 벼랑 끝 대치를 벌였다. 자유한국당은 시간 끌기 혐의가 짙은 행태를 보이면서 별다른 내용도 없는 수정안을 수십건씩 발의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경위야 어떻든 제1야당을 빼놓고 2020년도 예산을 통과시켰다.


의리를 중시하는 사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꼴불견이었다. “날치기” “세금도둑”이라고 쓴 팻말을 든 야당 의원들은 의사진행은 아예 무시한 채 의장을 향해서 인신공격에 가까운 구호를 외쳤다.(본회의장에서 팻말을 드는 것은 규정 위반이다. 원래는 회의장 안에 가지고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현실적으로 국회 직원들이 의원들 몸수색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옷 속에 슬쩍 숨겨서 들어가면 못 본 척한다. 그러나 반칙인 것은 틀림없다. 이렇든 저렇든 민주당이나 한국당이나 야당이 되면 예외 없이 본회의장에서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한다.) 여당 의원들도 소리를 지르면서 반말로 야당 의원들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표결을 빨리 진행하라고 국회의장에게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아이들이 볼까 봐 무서운 광경. 지난 몇달 동안 국회의 모습이 계속 이랬다. 무슨 목숨 걸 일이 있다고 앞다투어 단식, 삭발을 하는지 아직도 까까머리 의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대한민국 최고의 의사결정기구인 국회의 의장석에서 삭발한 국회부의장이 본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든다. 의사당 주변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 설치 여부를 놓고 각기 반대 입장에 선 정당들이 세운 농성용 천막들이 곳곳에 있다. 제발 그만 좀 싸우라고 야단을 맞아도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싸우는 게 무슨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치란 원래 투쟁이 아니던가. 싸우지 말라는 얘기 못지않게 왜 안 싸우느냐는 말도 많이 듣는다. 그런 주문을 하시는 분들은 대개 열혈 지지자들이다. “○○○ 의원은 한국당과 열심히 싸우는데 왜 당신은 가만히 있느냐” “왜 조국은 비판하면서 나경원 딸 문제는 입도 벙끗 안 하느냐” 등의 내용이 담긴 문자가 매일같이 온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가만히 있는 것보다 싸우는 것이 훨씬 편하다. ‘우리 편’으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을 수 있고, 때로는 진한 소속감도 느끼게 된다. 대한민국만큼 의리를 중시하는 사회가 또 있던가.


머리로는 협치를 생각하지만 실제 정치 현장에서 만나는 ‘적’들의 모습이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곳에 이름을 거명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거친 말투와 강한 전투력으로 상대방으로부터 특별히 미움을 받는 분들이 있다. 지지자들이 “어떻게 ○○○ 의원이나 ○○○ 의원과 한자리에 앉아서 회의를 하세요? 저 같으면 잠시도 못 참을 것 같아요”라고 하는 분들이다. 그런 의원들의 발언 내용을 듣다 보면 애초에 뭔가를 합의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차라리 시원하게 한마디 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계산을 하게 된다. 싸우는 것은 재미도 있다. 본회의장에서 같은 당 의원들과 박자를 맞추어 구호를 외치고 상대방을 조롱하다 보면, 거의 야구장에 가서 응원하는 느낌이 든다. 정치인들이란 원래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라 촌철살인의 야유가 나오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다. 같은 지역구를 놓고 다투는 여야 의원들의 신경전은 손에 땀을 쥐게 흥미진진하다. 칭찬도 받고 재미도 느낄 수 있는데 왜 안 싸우랴.


좀 더 진지해 보이는, 다른 관점에서 싸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정의를 세우자’라는 구호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상대방을 불의한 집단으로 본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상대방을 친일-군부독재로 이어지는 세력의 후예로 보거나 혹은 이념을 앞세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으로 여기기도 한다. 불의한 세력과 타협하는 것은 정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 이런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정치란 그런 상대방을 물리치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백혜련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4월25일 저녁 국회 의안과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형사소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접수시키려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최소한 과장된 “지금은 싸울 때”


그러나 정치를 싸움으로 보는 시각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실제적인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당이 다수의 힘으로 예산이나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할 때 야당 의원들이 회의장에서 소리를 지르고 단상 앞에 몰려나간다고 해서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 모습을 보고 여당 의원들이 조롱하고 비난을 퍼붓는다고 해도 법안 처리가 더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무심코 막말을 하거나 부적절한 표현을 해서 역공을 당하고 소속 정당에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많다.


삭발이나 단식도 마찬가지다. 군사정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던 와이에스(YS·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이나, 지방자치제 실시를 주장하며 단식했던 디제이(DJ·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등 예외적인 때를 제외하면 극단적인 방식은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물론 당내에서의 입지 확보 등 부수적인 소득을 얻을 때가 있기는 하다.) 처음부터 결과를 얻기보다는 지지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싸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거친 언사로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인신공격을 하면 ‘사이다 발언’으로 칭송을 받는다. 국회에서 상대 당 의원과 몸싸움에 가까운 대거리를 하면 용감한 정치인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이다 발언이나 몸싸움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애초에 같은 편의 응원을 받아가며 소리를 지르는 것은 용기도 아니다.


싸우는 정치에 찬성할 수 없는 둘째 이유는 논의의 대상을 좁힌다는 것이다. 몇가지 이슈를 놓고 여야가 극렬하게 대립하면 나머지 문제들은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된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지금 국회에서 뜨겁게 다투어지는 쟁점은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 검찰 관련 법안이다.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여당과 야당이 모두 여기에 온 힘을 집중하다 보니 정작 유권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문제들은 뒤로 밀린다. 요즘 지역구를 다니다 보면 집값 얘기를 하는 분들이 대단히 많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상상을 넘어설 만큼 과도하게 주택 가격이 올랐다. 그러나 막상 국회에서 집값에 관한 고민을 자주 듣기는 어렵다. 지금 쟁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안이 본회의까지 올라온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용진 의원 등이 발의한 ‘유치원 3법’은 패스트트랙을 거쳐 자동 상정되었다. 이 법안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 관한 문제는 가장 우선적인 논의 순서를 부여받아야 한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이나 언론에서 패스트트랙을 얘기할 때 떠올리는 법안은 유치원 3법보다는 그 뒤에 발의된 선거법이나 공수처법인 경우가 더 많다. 그곳이 가장 심한 충돌이 일어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협상과 타협을 통한 협치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어떤 시기에는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이 그렇다. 총선을 앞두고 패스트트랙 국면을 맞은 상황은 전쟁과 같다고들 한다. 죽느냐 사느냐, 이기느냐 지느냐가 걸린 순간이지 대화를 할 때는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 경험이 길지 않은 나로서는 그런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자신 있게 얘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 봐온 사례를 떠올려 보면 대체로 그런 주장은 최소한 과장되었을 때가 많았다.


소위 ‘조국 사태’ 초반에 민주당에서 많이 나온 얘기가 “지금은 싸울 때”, “여기서 밀리면 총선까지 밀린다” 등이었다.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보자는 목소리는 강경론에 밀려서 묻혀버렸다. 이제 돌이켜보자. 과연 그랬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때야말로 물러설 때였다. 그때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방향을 전환했으면 청와대나 민주당이 그토록 타격을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둘로 나뉘어 극심한 갈등을 겪고 지금까지도 봉합되지 않는 현재의 사태를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에게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치인들의 약속이 그저 빈말은 아니라는 희망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절대다수가 싸워야 할 때라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틀린 얘기였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지나간 시기의 판단이 옳았는지 되새겨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내하면 오히려 관철되기도


싸우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양보하거나 상대방의 주장을 따르자는 뜻은 물론 아니다. 다만 참고 인내하는 과정을 통해서 더 큰 성과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오히려 우리 쪽의 입장을 관철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파행과 말다툼이 많기로 유명한 법사위에 있다 보면 상대방의 주장을 보기 좋게 받아칠 기회가 눈에 보일 때가 있다. 너무나 답답해서 한마디 확 던지고 싶을 때도 많다. 그러나 꾹 참고 그런 찬스들을 그냥 보내다 보면, 언젠가는 상대방도 내가 얘기를 할 때 야유를 보내지 않고 듣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하나씩 하나씩 합의를 이루어내기도 한다. 정치는 자기가 믿는 정의를 단번에 실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선출된 사람에게 그런 일을 할 권한이 주어지지도 않는다. 자신이 대표하는 유권자들을 위해 결과를 만들어내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정치인의 임무다. 왜 안 싸우느냐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 참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치인에게 필요한 용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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