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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Dec 22. 2019

왜 수단 땅에서 이런 전쟁을 벌이는지 의문조차 없다

금태섭의 <금씨책방> 44 - 카르툼

<카르툼>, 마이클 애셔 지음, 최필영 옮김, 일조각


1880년대부터 1890년대에 걸쳐 아프리카 수단에서 벌어진 일련의 전투에 관한 책. (카르툼은 수단의 수도) 당시 수단은 이집트의 식민지였고 이집트는 실질적으로 영국의 보호령이었다. 즉 영국 입장에서 보면 수단은 식민지의 식민지뻘.


줄거리를 매우매우매우 간단히 요약하자면, 무함마드 아흐마드라는 사람이 "마흐디(중의적인 단어인데 대략 구세주 혹은 예언자에 가까운 의미)"를 자칭하면서 수단에 일종의 나라를 세운다.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영국은 찰스 고든 장군을 수단 총독으로 보내는데 그는 마흐디군에 포위당하는 상황이 된다. 영국은 대규모 군대를 보내서 고든을 구출하고 마흐디군을 격멸하려 하지만 오히려 대패하고 고든은 참수당한다.


그 후 마흐디국은 독립을 유지하는데 15년 후 영국은 허버트 키치너를 총사령관으로 다시 군대를 보내서 이번에는 승리한다는 이야기.


이 책에 대해서 저자가 "제국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쓴 책이라고 비판한다면 부당한 일이 될 수 있겠지만, 책 자체가 너무나 제국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로는 등장하는 수많은 영국인들이나 수단인들에 대해 똑같이 잘한 일은 잘했다고 하고 못한 일은 못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도대체 애초에 왜 수단 땅에서 영국, 이집트, 수단 연합군과 수단 부족으로 이루어진 마흐디 군대가 전쟁을 벌이는지에 대해 일말의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냥 당시의 정세를 배경으로 영국이 수단에 관여하게 된 경위를 나열할 뿐.


역사적으로 크게 중요성이 없는 당시 영국 정치인들과 군인들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달아놓은 것도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의 위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의 역사를 종이나 횡으로 잘라서 그 공간을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어느 곳에서나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지나간 과거를 현재의 시각에서 옳고 그름의 잣대로 보는 것도 무리스러운 일이고.


100년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이때 수단에서 벌어진 전쟁은 오늘날의 세계에도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마흐디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하산 알-투라비는 20세기 후반에 수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 1994년 사우디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은 4년간 수단에서 머무는데 그때 후견인이 하산 알-투라비. 그의 영향으로 빈 라덴은 알 카에다를 만들고 9.11을 일으킨다.


저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이 지휘하는 알 카에다가 미국 뉴욕의 쌍동이 무역센터 빌딩과 미 국방성 건물을 향해 일으킨 테러 공격은 100여년 전 마흐디가 등장하면서 주창한 정서와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어떤 의미로는 케라리 전투에서 키치너 원정군의 대포에 스러져간 마흐디군 1만 명의 원한을 갚은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시절 영국인들의 꼼꼼한 기록에 감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상세한 전투 이야기는 거의 삼국지 수준의 재미를 느끼게 하지만 그때의 전후 맥락, 그리고 우리의 상황을 생각하면 가볍게 읽을 수만은 없다. 여러가지 이유로 유난히 여유가 없었던 올해 들어 서른 권째 완독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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