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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Mar 09. 2021

과거 사연을 과거 시점에서 얘기하는 책들

금태섭의 <금씨책방> 52 - '저우언라이 평전', '이정식 자서전'

<주말 포스팅 - "저우언라이 평전", "이정식 자서전"에 대한 가벼운 서평>


난세가 영웅을 낳는다,는 무협지스러운 말을 믿지 않는다. 어느 시대인들 어지럽지 않은 때가 있을까. 누구의 삶인들 평탄하기만 할까. 다만 이후 여러 세대 동안 유지될 사회의 틀을 만드는 시기(그 틀이 바람직한 것이든 아니든)를 살아낸 사람들은 세계에 대해서, 또 동료들에 대해서 좀 더 너그럽고 여유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되는 듯하다.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이 한순간 스러지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행운은 우연의 우연으로만 설명이 가능한 시절.


항일투쟁과 내전을 겪은 후 마오를 '모시고' 현대 중국의 기초를 닦은 저우언라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1931년에 태어나 만주, 평양을 오가며 살다가 6.25 때 월남, 우연한 기회에 도미해서 결국 미국 대학 교수가 되고 한국의 공산주의에 대한 책을 낸 이정식 교수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이 두 권의 책에서 마음을 끄는 것은 역시 사람들의 사연. 종이 한 장 차이로 '정체성'이 180도 달라지는 이야기가 담담하게 적혀 있다. 일제시대인 1943년 평양, 국민학교에 참관을 온 도청 공무원들 앞에서 이정식(당시 국민학교 6학년)의 은사 요시노 선생님은 일본을 침략하러 온 몽골군의 선박을 침몰시킨 '가미카제'에 대해 열정적인 수업을 한다. 5년 후인 1948년, 이제는 '이효겸'으로 이름이 바뀌고 평양 제2중학교의 교감이 된 요시노 선생은 모처럼 찾아온 제자 이정식 앞에서 공산주의의 우월성과 필연성을 길게 늘어놓는다. 옛 제자는 실망하지만 큰 충격을 받지도 않는다. 일제시대 때 "수십 년간 조선 사람으로 지내면서 핍박과 차별을 받아온 어른들과 달리 두 가지 정체성 간의 갈등을 별로 느끼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온전한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불완전한 존재"였던 국민학생 이정식은 5년 전 바로 그 수업에서 가미카제를 찬양하는 발표를 했었다. (이효겸은 나중에 북한 최고의 엘리트를 양성하는 혁명열사유가족학원, 즉 만경대학원의 교감으로 출세했다가 6.25 당시 치안대의 손에 무참하게 살해된다)


가족을 따라 만주와 평양을 오가며 살던 어린 이정식에게는 장제스가 이끌던 국민당군이나 마오의 팔로군, 조선의용군 아저씨들(원래부터 항일투쟁을 하던 사람들과 일제에 징용되었다가 나중에 합류한 사람들까지), 그리고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이 별로 다르지 않다. 누가 멋진 군복을 입었는지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물론 어느 시절에나 훌륭한 사람은 있다. 일제는 만주에서 일본 사람을 1등 국민, 조선 사람을 2등 국민, 중국 사람을 3등 국민으로 다뤘다(배급통장 색깔을 구별해서 일본인은 흰쌀, 조선인은 누런 좁쌀, 그리고 중국인에게는 수수를 지급했다고 한다).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와중에 2등 국민으로서 중국인을 괴롭힌 조선 사람들이 있었고 일본이 패망하자 중국인들의 보복이 이어진다. 살해와 추방 위협을 피해서 달아나는 조선 사람들은 랴오양을 거쳐서 귀국길에 오르는데 매일 수백 명에 달하는 피난민들을 먹여주고 재워준 사람은 그곳에서 ‘천일제지공사’라는 상호로 제지회사를 운영하던 김창열이라는 사람이다. 이정식 교수의 자서전에서 가장 큰 칭송을 받은 사람 중 한명. 이 교수의 기억은 이렇다. 


“7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내 기억 속에 선연하게 남아 있는 풍경은 천일제지공사 앞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던 어느 빈농의 모습이다. 허술한 바지저고리를 입고 머리띠를 맨 남자는 이불 보따리를 둘둘 싸서 등에 짊어졌고, 색깔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워진 치마 차림의 아내는 때에 절은 흰 수건을 이마에 동여매고 머리에는 무엇인가를 이고 등에는 어린애를 업고 있었다. 대체 그런 몰골로 며칠이나 걸어온 것일까. 남편의 보따리 아래쪽에 대롱대롱 매달린 알루미늄 냄비가 인상적이었는데, 흰색인지 검은색인지 알아볼 수 없는 그 처참한 식기가 그들의 애처로운 처지를 대변해 주었다.”


책에서는 중국 공산당과 조선 공산당이 지주와 기업주를 확실히 구분해서 달리 취급했다고 하는데 김창열씨가 그 후에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선배들이 권해준 책을 읽다보면 주석에 스칼라피노 교수와 함께 등장하던 사람이 이정식 교수였다. 레드 컴플렉스가 극심했던 시절이라 도대체 어떤 경로로 한국 사람이 미국에 가서 ‘한국의 공산주의’ 연구를 하게 되었을지 몹시 궁금했는데 이 책을 발견해서 반갑게 읽었다. ‘과거의 사연을 과거의 시점에서 얘기하는’ 책들. 오늘 어느 칼럼에서 우리 사회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극단적 진영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대목을 읽었는데, 지난 일을 지금의 시각에서 사후적으로 재단하고 정당성을 따지는 것이 얼마나 가벼운 행동일 수 있는지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 “저우언라이 평전”, 정종욱 지금, 민음사 ★★★

* “이정식 자서전”, 이정식 지음, 일조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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