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의 <금씨책방> 53 - '나는 고백한다' 1, 2, 3
'올해의 책' 후보 - "나는 고백한다 1,2,3"
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 민음사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드리아 아르데볼이라는 노 교수가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는 내용의 소설. 전체적인 주제는 '악(惡)이란 무엇인가'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그 자체에 대해서는 대단한 통찰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악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일단 극악한 행위를 저지르고 나면 그 이후에 오래 선행을 하거나 혹은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더라도 구원은 없다는 정도.
이 소설의 매력은 그보다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다. 화자(話者)가 알츠하이머 환자인만큼 주어가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은 기본이고, 시점도 14세기 종교재판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2차 대전을 거쳐 현재로 이동하곤 한다. 대화 중에도 시대가 바뀌기도 하고, 심지어 한 문장 안에서도 첫 부분은 A라는 사람이 말하다가 뒷 부분은 B가 말하는 것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런 모든 이야기에 악이 등장한다. 마지막에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물도 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고, 결국 독자는 자연스럽게 악의 편재성을 느끼게 된다.
거장의 깊이 있는 사유를 엿볼 수 있다기보다는 소설적 기교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책. 1764년에 만들어진 스토리오니라는 바이올린, 종교재판과 홀로코스트 등 몇 가지 모티프를 따라가는 스토리라인도 좋다. 음악, 문학, 철학을 넘나드는 레퍼런스는 감탄스러울 정도. 정말 공을 많이 들여서 쓴 책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인 아드리아는 13개(인가?) 언어를 말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그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작가의 취재가 방대하다. (덕분에 알게 된 여러 가지 언어로 된 '안녕' : 아데우, 챠오, 아 비엥토, 아디오스, 취스, 발레, 다흐, 바이, 안티오, 포카, 라 레베데레, 비슐라트, 헤아드 아에가, 레이트라오트, 챠우, 마 앗살라마, 푸쉬 베쉬라마 : 마지막이 아람어)
카탈루냐어로 쓴 소설인데 이 책이 번역된다는 소식을 들은 카탈루냐 독자들이 옮긴이에게 여러가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번역이 쉽지 않았을텐데 읽기에 매우 깔끔하다. 단순하지 않은 구성이고 3권 합쳐서 1,000페이지가 넘지만 사흘 밤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는 책. 소설 좋아하시는 페친들께 강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