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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am Jul 28. 2021

자폐성 장애  아이의 자존감 높이기

잘못은 쿨하게 인정하고, 스스로를 토닥여주기

H는  날 했던 학습지, 다음 날도 가져와야 하는 그 학습지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학습지를 가지고 왔느냐는 나의 질문을 아이는 회피하며, 내가 미리 준비해 둔 새 학습지를 가지고 가려고 하는 중이었다.

새 학습지를 슬쩍 멀찍이 옮기며 아이에게 다시 묻는다. 어제 했던 것에 이어서 계속 작성해야 하는 건데 어제 하던 거 어디에 있느냐고. 혹시 잃어버렸거나 집에 두고 온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거짓과 회피, 그 사이 어딘가에서...


'네, 잃어버렸습니다.'라는 답을 기대한 내 마음과는 달리, H는 '반납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의 집요한 추궁이 시작되었다.

반납했다는 것은 받은 곳에 다시 돌려주었다는 것인데 나도, 실무원 선생님도, 강사 선생님도 아무도 받았다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어디에 반납했는지를 차분하게 물었, 그러자 H는 '아~! 젠장!' 등의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급기야는 옆에 있는 의자를 주먹으로 치기도 했다.


실수를 한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요!


왜 화를 내냐는 나의 질문에 대한 H의 답이었다.

누군가는 변명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아이의 말을 믿기로 한다. 그리고 사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이다. 실수한 자신을 탓하지 않아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그 모습이 누군가는 변명이라 할 수도 있을 만큼, 실수나 잘못을 고치고 도와주려는 타인을 향한 분노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기에 그 사실을 알려준다.


H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 모습을 나는 특수학급에 와서 비교적 사회성이 좋은 자폐성 장애 학생들 가운데서 종종 발견한다. 그리고 사실은 나도 그런 면이 많아서 이 부분을 공감하기란 어렵지 않다.


결국 이것은 아이들의 자존감과 관련이 있다. 정해진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을 때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무너지는 느낌. 머리로는 누구나 실수한다는 것을 아무리 이해해도 나 자신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하는 그 상황을 나는 안다(아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
넌 어떤 말이 듣고 싶니?

누구나 이해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비난보다는 격려를 받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주변으로부터 대체로는 지적과 비난을 받는다. 그러니 나는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 그렇게 스스로의 자존감을 잃지 않는 법을 H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 듣고 싶은 말을 써보라고 했다. H가 쓴 말은 주로 스스로를 계속해서 push 하는 말들이었다. 이를테면 '넌 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꿈은 이루어진다!' 이런 말들이었다.


H에게 내가 말하는 걸 받아써보라고 했다.

'실수해도 괜찮아. 누구나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야.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모습이 겸손이고, 당당함이야. 완벽한 사람은 없어. 충분히 잘하고 있어. 지금 네 모습이 멋져.....'


H는 받아쓰기를 할 뿐인데도 굉장히 어색해했다.

다 쓴 후에 읽어보라고 하자, 평소 소리 내어 글을 읽는 것을 즐기면서도 한참을 망설이다가 우물우물 읽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H의 부모님과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실수를 인정하고, 당당하게 사과하는 것을 H에게 요구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어느 상황에서든 타인은 나에게 화를 낼 수도 있고, 짜증을 낼 수도 있다. 타인의 감정은 그것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 정당성을 따지는 것은 나중 일이고 일단은 그저 감당해야 한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자신에게 내가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나는 H가 이것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어쩌면 아주 사소한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도 그것을 기회삼아 H에게 실수를 인정하고 때로는 사과를 하도록 시켜볼 생각이다. 부모님께도 함께 부탁드린 것이 이것이다. 사과를 할수록 아이가 주눅 들고 자존감이 낮아지면 어떻게 하냐고? 아니다. 사과를 하고 잘못을 인정할 때마다 그 정직함과 당당함을 칭찬해 준다면 이야기는 분명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또한 수시로 긍정 확언을 되뇌듯이 스스로를 토닥이며 받아쓰고 읽었던 문장들을 되풀이해서 학교에서도 종종, 집에서도 꾸준히 하기로 부모님과 협의했다.


그리고 오늘, H는 나의 믿음을 더 크게 만들어주었다. H가 다른 친구가 실수하는 모습을 보며 위로를 건넸다.


괜찮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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